최창균 《유전자 지배 사회》 유감

나는 ‘진화 심리학’이라는 접근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진화 심리학이 생물학적 유전자 위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유전자 외에도 문화적 유전자가 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유전자는 오랫동안 거의 변치 않았지만 문화적 유전자는 최소 지난 12,000 년 동안 가파르게 변했다. 인간이 문화를 진화시킨 맥락을 놓치는 한에서 진화 심리학은 인간에 대한 외삽적 재단에 불과하다.

최정규의 《유전자 지배 사회》(2024)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초판 1976)의 최신판이다. 나는 유전자에게 ‘이기적(selfish)’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틀렸다고 본다. 우선 화학물질인 유전자에게는 ‘자아(self, ego)’가 없다. 자아는 화자/인식자/행위자가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놓으면서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발생한다. 즉, 자아는 의식의 산물이다. 유전자가 의식이 없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인간은 의식이 있다. 의식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이 점은 데카르트가 잘 밝혔는데, 의식이 없다고 의심한다 하더라도 의심하는 나는 반드시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의식적 존재다. 인간에게 자아는 자명하다.

나아가 이기(利己)라는 표현도 틀렸다. 유전자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고, 자기를 ‘위한다’고 했을 때의 ‘욕망’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화학 반응에는 선호하는 반응이 있고 그걸 추구(?)한다고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다분히 비유일 뿐이다. 욕망한다면 욕망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데, 화학 반응에 ‘~하지 않으려 함’, 회피 욕망, 혹은 ‘부정(negation)’은 없다.

따라서 유전자를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수사학이다. 그래서 최정규나 도킨스의 작업은 아무리 많은 실증 자료가 동원되었다 하더라도 과학이 아니라 허구다.

내가 저 생물학(을 위장한 이데올로그) 저서와 대립시키는 책이 캐빈 랠런드의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2023, 원서 2017이다. 이 책은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최신 성과를 다룬다. 역자 김준홍은 ‘후기’에서 유사한 접근의 책을 몇 권 소개한다. 피터 J. 리처슨, 로버트 보이드가 지은 《유전자만이 아니다》, 조지프 헨릭이 지은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로버트 보이드가 지은 《다른 종류의 동물A Different Kind of Animal》(한국어 미번역). 나는 여기에 아구스틴 푸엔테스의 《크리에이티브》를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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