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들뢰즈 연구자 1세대다. 《베르그손주의》를 번역 출간한 게 1996년이다. 그후로도 계속 들뢰즈를 연구했고, 《천 개의 고원》(2001), 《안티 오이디푸스》(2014)을 번역 출간했다. 30년 넘게 들뢰즈를 보면서 항상 주요 개념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고민해왔다.
나는 최근(?)에 들뢰즈의 주요한 세 개념을 번역할 한국어를 찾았다. 실력(puissance), 내공(intensité), 기운(affect). 물론 언제 어느 맥락에서나 이 용어가 맞다고 고집하려는 뜻은 아니다. 일반적 용법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개념으로 가공할 때 이 세 개념의 의미는 위와 같이 옮겨야 한다고 본다.
일감에 이 용어들을 뭔가 신비주의적 용어로 옮긴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철학 용어라고 보기엔 너무 투박하거나 무협지에나 나올 법해서 상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거 아시는가? 무협지야말로 ‘힘’의 여러 측면과 국면을 가장 깊게 사고했다는 것을. 물론 무협지의 판타지 측면은 털어내는 것이 좋다. 하지만 들뢰즈야말로 ‘힘’에 대해 가장 깊게 생각했던 철학자, 혹은 가장 깊게 생각한 저술을 남긴 철학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의 주요 선배인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손보다 더. 따라서 인간 안팎의 힘, 자연과 지구의 힘, 기계의 힘 등을 고루 생각하려 한다면 들뢰즈의 고민과 생각을 함께 하는 것이 유용하다.
특히 《천 개의 고원》 이후의 저작을 고려한다면 이 번역어들은 독해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실력은 ‘잠재적’이지 않고 언제나 ‘현생적’이다. 감각은 내공의 양이다. 진드기는 세 개의 기운을 갖고 있다. 이런 표현들이 더 이상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이다.
경제 사정에 허덕이지 않을 여유가 마련되면, 더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다. 철학자도 돈 벌어야 살 수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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