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안티 오이디푸스》 강의 013

들뢰즈·과타리가 말한 억압이 세 가지로 구분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말하려는 게 뭐냐? 우선 ‘대체-투자’라는 개념을 보겠습니다. 에너지를 억압할 때, 그냥 눌러버리면 견뎌내지 못해요. 그래서 대체물을 보여줘야 합니다. 강아지에게 뼈다귀를 줬다가 뺏으면 주인을 물죠. 뼈다귀 대신에 나무토막이라도 물려줘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방식이 대체-투자입니다. 이것이 전이라든지 과정하고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요. 치료에서도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어쨌건 들뢰즈·과타리는 ‘본원적 억압, 원초적 억압, 원억압’을 뭐라고 규정하고 있냐? 바로 이 문장이 규정에 해당합니다. “일종의 <대체-투자>가 아니라 기관 없는 몸에 의한 욕망 기계들의 이 밀쳐 냄(répulsion)이다.” 밀쳐 냄은 ‘혐오감, 척력(斥力)’이라는 뜻도 있어요. 말 그대로 싫어서 밀쳐내는 거예요. 아까도 나왔죠? 역겨운 애벌레나 기생충 같이 느낀다고. 그래서 차라리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싫다는 건 상당히 인간적인 표현이긴 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국면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을 다 거부하는, 밀쳐내는 것이죠. 그게 바로 원초적 억압, 본원적 억압입니다. 그러니까 작동옹하는 기계, 욕망 기계들을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게끔 하는 일종의 반작용이 원억압이 뜻하는 바입니다. 그러니까 원억압은 좁은 의미에서 생산의 계기와 생산이 멈추는 반생산의 계기, 이 둘이 딱 만나서 생산이 중지하게 되는 그 국면, 중지해서 사실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서 재개되는, 딱 멈추는 국면에 욕망 기계들의 작동을 밀쳐내서 매끄러운 유체를 가진 흐름뿐인 상태로 만드는 역작용입니다. 밀쳐낸다는 건 더 이상 욕망 기계들을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죠. 그러니깐 당연히 양자 사이에는 명백한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뭔가를 만들려고 하고, 하나는 그걸 만들지 못하게 하려고 하니까.

다시 원래로 돌아가서, 문단 중간 쯤 ‘밀쳐 냄’ 다음 문장입니다. “그리고 편집증 기계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욕망 기계들의 기관 없는 몸으로의 불법 침입 작용 및 욕망 기계들을 전반적으로 박해 장치로 느끼는 기관 없는 몸의 밀쳐 내는 반작용이다.” 그러니까 편집증이 뭐냐? 한마디로 더 이상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게끔 하는 반작용입니다. 역으로, 욕망 기계들이 계속 작동하려고 하는 국면이 분열증입니다. 분열증의 국면과 편집증의 국면은 이렇게 갈라집니다.

원서 335쪽에 도식이 나오는데요. 이 그림에서 오른쪽 분열증의 축이 있고, 왼쪽 편집증의 축이 있습니다. 편집증의 축과 분열증의 축. 가로 방향의 점선을 보면, 각 시대마다 양극에 있습니다. 《안티 오이디푸스》 3장에서 다루게 될 세 시대입니다. 한쪽은 계속 생산하려고 뻗어나가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보았던 ‘과정의 완성’을 추구하려는 방향 혹은 극(極)입니다. 다른 한쪽에는 그것을 하지 않으려는 극이 있습니다. 그 양극이 항상 함께 갑니다. 그래서 맨 아래 바탕을을 보면, 양쪽의 특징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분자적 요소들 대 그램분자적 집합체들. 분열증의 방향 혹은 경향성은 분자적인 요소들과 관련을 맺는 겁니다. 계속 생산이 가동되는 거예요. 그에 반해 편집증의 방향 혹은 경향성은 그랜분자적인 집합체, 덩어리와 관계됩니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모래알갱이들과 바위덩어리 사이의 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모래알갱이는 항상 모였다 흩어졌다 합니다. 바위덩어리는 꿈쩍도 안해요. 각 국면이 분열증의 극과 편집증의 극 각각을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마치고 앞으로 돌아가죠.

생산을 추종하는 힘은 분열증적인 극에 있다고, 지금까지 등장한 용어로 하자면, 생산의 생산과 욕망 기계들의 측면에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문장 건너뛰고. 각주 다음 문장을 봅니다. “편집증 기계의 발생은, 욕망 기계들의 생산의 경과와 기관 없는 몸의 비생산적 멈춤의 대립 속에서, 그 즉시 생겨난다. 편집증 기계의 익명적 성격과 그 표면의 미분화(未分化)가 그 증거이다.” 그러니까 익명적 성격, 미분화 상태, 이런 건 모든 게 다시 해체된 국면, 페허죠. 하지만 편집증 기계는 욕망 기계들 없이 생겨나진 않습니다. 그래서 편집증 기계를 “욕망 기계들의 아바타〔化身〕”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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