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을 다루는 것을 업으로 삼는 철학자가, 아니면 시인이나 작가의 경우도 비슷하겠으나, 아무튼 글로 뭔가를 도모하는 이들이, 언어 또는 개념에 민감한 것은 당연지사다.
정치인들의 말싸움이야 별개로 치고, 결국 철학은 언어 또는 개념의 전쟁이다. 언어의 차이, 또는 번역의 차이(이는 해석의 차이를 전제한다)를 둘러싼 충돌은 철학활동의 본질에 닿아 있다.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결정적 문제이다. (일부 관객들이 잘 화해해 보라고 제안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의 선택을 사소하게 치부하는 경우라면, 둘 중 하나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거나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거나.
언어에 동의하기 어렵다면, 다른 사상의 길에 있는 것이고,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건 필연적이다.
그렇다고 우연한 재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결국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이들만이 재회할 기회라도 갖게 되리라.
* 참고: 고유명사(전문용어)로 말하기, 그 위선의 극치
주변에 5분 정도에 10여 개의 고유명사(‘전문용어’여도 마찬가지다)를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이런 화법이 싫을뿐더러, 그런 사람을 신뢰할 수도 없다.
정작 더 설명을 부탁하면 다른 고유명사들로 답하기 신공을 발휘한다. 정말 강적이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그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그냥 무시하는 게 현명하다. 실속이 전혀 없으니까. 그 사람은 고유명사(전문용어)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사람이니까.
(2017.5 마지막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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