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과 박홍규는 내가 직접 배우지 못한/않은 두 대가이다. 더 어리던 시절에는 그 점이 못내 아쉬웠고 내가 몇 살만 더 많았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는데, 그들에게 직접적인 부채감 없이 글로만 그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몹시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조금이라도 더 철학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의도했건 아니건, 권위는 비판을 비켜가기 쉬운 법이므로.
내가 대학 시절, 시류를 벗어나 살았다는 것 또한 나를 더 자유롭게 해 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젊음은 종종 그 열정만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자신의 전모를 과대평가하게 만들곤 한한다.당시를 돌아보면, 가령 이성의 결핍을 일종의 무능력으로 파악하지 않고 용기로 파악한다든가 하는 식 말이다. 다행이도 나는 80년대 말부터 니체와 직접 접하면서 살았고 (이는 시기상조, 즉 시류를 벗어난 일이었다) 사회구성체 논쟁 같은 시덥잖은 관념론적 싸움에 휩쓸리지도 않았다.
사실 나는 좀 더 자연과학자의 체질을 지니고 있었고 즉물적이고 제작하기를 좋아하는 공돌이에 가까왔다. 전형적인 이과생이 그러했듯이 나는 수학과 물리학, 화학을 좋아하고 잘 했으며 수학, 과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철저히 배격하려 애썼다. 그래서 플라톤을 몹시도 따랐고 (심지어) 트락타투스에 심취하기도 했다.
내게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은 첫째가 변증법이고 둘째가 현상학이었다. 그것들은 아귀가 맞지 않는, 뭔가 거짓말 같았다. 차라리 문학은 “진리”를 주장하지 않았기에 편안했다. 사회과학(물론, 당시의)은 체질적으로 역겨웠고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사기 같았다.
나는 그 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력의 부족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이해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 것이다.
당시 이 글에 어느 분이 단 댓글도 기록하고 싶네요.
80년대 전반에 대학을 다닌 사람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대학 생활은 한심했지요.운동을 하건 공부를 하건 그 때는 대화가 부족했지요. 저는 데모는 별로 안 했는데, 운동권 친구들과 묘한 긴장감이 있었던 듯 합니다. 그들이 나에게 먼저 접근 안하고, 나도 그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엇죠… 그렇다고 서로 싫어한 것도 아닌데, 괜히 서로 부담을 가지고….그 만큼 그 시절은 적대감이 팽배한 때였다는 것이죠… 주위 사람에게도 신뢰를 갖기 어려운…가난한 시대였다는 거죠… 80년대는 모든것이 가난한 스산한 시대였죠. 저도 체질적으로 시대와 잘 맞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초에 한번에 구입한 니체전집 10권(청하)가 그후 10여년에 걸친 지적 탐구의 출발점이 되었죠. 그지금 회상해 보면 당시에 운동권도 파쇼적인 면이 많았습니다. 시대의 한계라고 할까…그 시절 친구들이 저를 “자유인”이라고 부르곤 했죠… 지금 세태에서는 우스운 말이지만…ㅋㅋㅋ
20년 전 메모했던 내용입니다. 모든 권위에서 사상적으로 독립하려고 발버둥치던 그 때가 떠오르네요.
1980년대는 거대한 적과 싸우느라 소진되어 모두 함게 공부를 게을리 했던 시대입니다. 모두의 미래에 불행을 초래한 것이지요. 이후, 한국에서 학문은 미국유학으로 경도되며 소진되었고, 지금은 학자의 싹조차 찾기 어려워져 버렸습니다. 이 늪지대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가능할까요?
(6년 전 글을 지금 시점에 맞게 되풀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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