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안티 오이디푸스》 강의 009

기관 없는 몸의 생산

그다음에 저 악명 높은 ‘기관 없는 몸’이 나옵니다. 프랑스어로 ‘코르상조르간(Corps sans organes)’, 영어로 ‘Body without organs’입니다. ‘기관들 없는 신체’라고도 번역합니다. 나는 ‘몸’이라고 통일했습니다. 어차피 신체, 물체 등은 ‘코르’를 다 담기 어려우니, 그때그때 언급하겠습니다. 이게 원서 13쪽 아래 새로 시작하는 문단부터 묘사되는데, 여기서 묘사된 내용이 다음에 살필 1장 2절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됩니다. 기관 없는 몸이 탄생하는 이 대목은은 아주 중요합니다. 일단 보죠.

“‘생산하기’, ‘생산물’, ‘생산물과 생산하기의 동일성’…….” 네, 여기까지는 이해됩니다. 지금까지 그걸 설명드렸죠. “바로 이 동일성이 선형 계열 속에서 제3항을, 즉 미분화(未分化)된 거대한 대상을 형성한다.” 앞의 그림[[그림 참조]]을 보면 선형 계열입니다. 생산하기, 생산물, 생산하기, 생산물…, 이것들이 선형(線形)으로, 선처럼 쭉 뻗어나갑니다. 여기서 ‘제3항’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제3항은 생산물도 아니고 생산하기도 아닌 그 무엇이기에, ‘제3항’입니다. 그게 형성되는 거예요. 그건 일단 ‘분화되지 않은 거대한 대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가보죠. “모든 것이 한순간 정지하고, 모든 것이 응고된다(그다음에 모든 것이 재개된다).” 한순간 정지하고 응고된다는 것은 생산의 경과, 그 시간성이 멈춘다는 얘기죠. 아까 말한 강조체 ‘여기’가 그 단면입니다. 멈추는 한순간이, 그런 시간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괄호 안에 “그다음에 모든 것이 재개된다”고 추가됩니다. 그러니깐 결국 이어지기는 이어져요. 다시 계속되는 겁니다. 모든 게 재개된다고 했기 때문에 영원히 멈추는 게 아닙니다. 한순간만 멈춰요. 그래서 계속 보면. “어떤 점에선,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능하지 않는 게 더 나으리라.” 조건법적으로 이랬으면 좋겠다고 진술합니다. ‘조건법’은 프랑스어 문법 용어인데, 영어의 ‘가정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반사실적(counter-factual) 상황에 대한 가정인 거죠. “태어나지 않고, 탄생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고, 젖을 빨 입도 없고, 똥 쌀 항문도 없는 게.” 이 발언들에서 작동하고 기능하는 것에 대한 거부가 느껴지나요? 왜 거부하는 걸까요? 혹 견디기 힘든 걸까요? 이어서 보죠.

“기계들과 부품들을, 그리고 우리를, 무(無)로 돌려보낼 정도로, 기계들이 고장 나고 그 부품 들이 이탈하게 될까? 아직도 에너지의 흐름들은 지나치게 묶여 있고, 아직도 부분대상들은 지나치게 유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지나치게 묶여 있고 지나치게 유기적이어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차라리 고장 나서 작동과 기능을 멈추는 편이 낫다는 거예요. “하지만 하나의 순수한 유체(流體)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절단 없이, 하나의 충만한 몸 위를 가볍게 스쳐 가는 중.” 이 ‘충만한 몸’은 뭘까요? 앞서 말한 ‘미분화된 거대한 대상’이겠죠? 그 위를 가볍게 스쳐 가는 것은 자유롭고 절단 없다고 설명됩니다. 그렇게 스쳐 가는 게 순수한 유체입니다. 절단이 없으므로, 그 어떤 규정에서도 다 탈피한, 규정을 벗어버린 상태일 겁니다. 그런데 “욕망 기계들은 우리를 하나의 유기 체로 만든다.” 그러니까, 욕망 기계들의 작용은 유기체를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대립은 유기체를 만드는 ‘욕망 기계’와 ‘미분화된 거대한 대상, 하나의 충만한 몸’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들뢰즈·과타리가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의 언어를 빌려 ‘유기체’라고 부른 것은 ‘유기적 조직화(organization)’입니다. 유기적인 조직화란 한 기관이 한 가지 정해진 기능만을 수행하는 겁니다. 입이 먹는 기능만을 수행할 때가 예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중앙 집중화도 전제됩니다. 왜냐면, 유기체라는 것은 각 기관들이 복무해야 될 특정한 종합적 목표, 통일된 목표를 가정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기관 없는 몸에 대한 요청은 그런 구속으로부터 다 벗어나고 싶은, 그런 의미에서 자유롭고 싶은, 아무데로나 다 뻗어나가고 싶은 측면을 가리킵니다. 가장 중요한 측면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유기적인 조직의 해체입니다.

그래서, 다시 그 부분을 읽으면서 가면요. “욕망 기계들은 우리를 하나의 유기체로 만든다. 하지만 이 생산 한가운데서, 이 생산의 생산 자체 안에서, 몸은 그렇게 조직화된 것을, 달리 조직화되지 않는 것을, 또는 아무 조직화도 없이 있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한다. 경과가 한창일 때, 제3의 시간으로서, <불가사의하고 완전히 뻣뻣한 멈춤.>” 이 마지막 문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경과가 한창일 때’란 생산물, 생산하기, 생산물, 생산하기…의 관계가 쭉 이어진다, 그 선형 계열이 계속된다는 뜻이죠. ‘제3의 시간’은 경과의 ‘바깥’에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즉 ‘멈춘 시간’이기 때문에, 제3의 시간이라고 하는 거죠. 꺽은 괄호는 아르토의 인용입니다. 아르토는 기관들의 분화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그 느낌을 겪는 거예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칩니다. 인용을 보면. “즉 <입 없음. 혀 없음. 이없음. 목구멍 없음. 식도 없음. 위 없음. 배 없음. 항문 없음.> 자동 장치들은 정지하고 전에 절합(節合)했던 비(非)유기체 덩어리를 등장시킨다.” 전에 절합했던 비유기체 덩어리이니까 ‘기관 없는 몸’이죠. 여기서 절합(articulation)이란 관절처럼 끊으면서 잇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채취-절단이죠. 자동 장치는 욕망 기계를 가리키겠죠.

“기관 없는 충만한 몸은 비생산적인 것, 불임인 것, 출산되지 않은 것, 소비 불가능한 것이다. 앙토냉 아르토는, 그것이 형태도 모습도 없는 채로 있던 그곳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이제부터 잘 구별해야 합니다. 생산의 생산의 일부로 등장하는 게 바로 기관 없는 몸입니다. ‘생산의 생산’이라고 하면 생산만을, 다른 것을 만들어나가는 것만을 염두에 두기 쉬운데요. 사실 다른 것이 만들어지려면, 다른 생산이 재개되려면, 기존의 생산과의 단절이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똑같은 생산의 계속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유기적 조직화라고 부르는 게 일순간 해체되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르는 거고요. 기존의 조직화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이죠. 그리고 재탄생이 필요하다고 얘기될 수 있는 겁니다. 죽음은 탄생의 전제조건이에요. 다른 말로하면, 죽음과 탄생은, 양자 모두가 생산의 필수적인 부품입니다. 여기서 얘기되는 국면이 바로 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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