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개념은 언제 써야 하나

철학 개념이 남용되는 글은 읽기 어렵다. 물론 내가 ‘남용’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이미 부정적인 선입견이 들어있긴 하다. 그렇긴 해도 그리 길지 않은 글(가령 신문 칼럼이나 페북 글)에 여러 개의 개념이 등장하면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는 건 물론이거니와, 글쓴이가 그렇게 한 이유를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독자에게 읽히자고 글을 쓴 건지,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애쓰는 과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건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권위를 빌려 남발하는 건지.

나는 철학 개념이 쉬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다. 사태가 어렵고 문제가 어려울진대 어찌 개념만 홀로 쉬울 수 있으랴? 특히 철학 개념들로 체계를 구성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한 글에 지뢰찾기에서처럼 매설되어 있는 개념들은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특히 라캉이나 데리다의 개념들이 등장할 땐 더욱 당혹스럽다.

우선 라캉은 자신만의 도식이 분명한 사람이어서, 그 도식에 동의할 수 없거나 그 도식을 이해할 수 없는 이에겐 전혀 소통 불가이다. 상징계니 상상계니 실재니 이런 말을 한들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 아닐까? 아무 설명 없이 이런 개념을 들먹이며 대중에게 글을 쓴는 건 권위주의에 기초한 폭력이다. ‘너 이거 알아?’ 그 동안 많은 학자들이 써온 수법 중 하나다. (하나 더 보태면 ‘내가 유학 시절에’로 시작하는 수법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데리다는 개념에 멈춤이 없는 사람이다. 개념을 완결 짓지 않고 열어두어서, (전문 연구자에게도 그렇긴 하지만) 일반 독자에겐 무책임한 사람이다. 나는 재미 삼아 철학사(철학이 아니다!)를 알고 싶은 이에겐 데리다가 가장 위대한 길잡이라고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철학은 아니다. 너무 유보가 많고 유예가 길다. 철학은 ‘단칼에’가 필요하다. 직관 없는 철학은 무용지물이다.

문득 생각난 김에 말을 꺼냈는데, 어떻게 수습하고 맺을까? 들뢰즈의 경우 책과 강의(인터뷰 포함)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책은 너무나 어렵고 강의는 아주 쉽고 친절하다. 라캉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자신을 비판했다는 걸 알고 미리 초고를 보여달라고 했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3류 ‘정치’이다. 엥? 그러면 내가 라캉이 부담스러운 게 정치라서야 3류라서야?

 

(2020.03.29 마지막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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