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안티 오이디푸스》 강의 003

이어서 예가 나옵니다. “젖가슴은 젖을 생산하는 기계이고, 입은 이 기계에 짝지어진 기계이다.” 여기서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부분대상(partial object)’ 개념이 개입합니다. 내가 논문을 하나 썼으니까, 자세한 건 논문을 참고하세요(김재인(2014), “들뢰즈의 부분대상l 이론. 그 존재론적 미학적 의의의 탐색”, 《미학예술학연구》 41).

멜라니 클라인의 분석에 따르면, 아주 어린시기, 대략 18개월 전입니다, 어린 시기의 유아 단계에서는 아이가 분열증 자리 또는 분열증적 위치라는 시기를 겪게 됩니다. 영어로 ‘스키조이드 포지션(schizoid position)’이라고 합니다. 분열증 위치에서는 인물(이 경우에는 엄마입니다)이 통합되지 않고 자기의 충동이 가해지는 어떤 대상, 충동을 채워주는 어떤 대상하고만 관계를 맺습니다. 가령 입이 먹을 거를 원하죠. 그럴 때, 입의 충동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인 엄마의 젖가슴, 그것만 아이에게 드러납니다. 이런 시기를 일정기간 겪게 됩니다. 이럴 입에 해당하는 대상이 부분대상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가면, 아이는 발달함에 따라 통합적인 엄마를 알게 됩니다. 그 엄마가 나에게 맛있는 거를 주는 그 엄마이자 동시에 나로부터 멀어지기도 하는, 자기의 충동을 좌절시키기도 하는 엄마이기도 한 그 엄마, 그 두 엄마가 같은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울증 위치(depressive position)라고 부르는 시기에 진입합니다. 아이는 발달하면서 잘 통합해야 합니다. 통합된 인물(integrated person)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지점까지 가야 이른바 정상적인 인간으로 발달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과타리는 클라인의 부분대상이라는 개념을 빌려와서, 본래 대상의 존재 방식이 부분대상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통합된 전체로서의 인물, 이런 걸 상정하지 말아야한다는 거죠. 단지, 이를테면, ‘절단하는 기계’에 대응하는 ‘그 흐름, 그 관계’만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기계의 기능에서 가장 핵심입니.

여기서 사례가 되는 것은 젖을 원하는 입과 엄마의 젖가슴인데, 이 둘의 관계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서 유일하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그 지점입니다. 이 입은, 이 경우에는 먹는 입으로 기능합니다. 젖을 먹는 입으로 기능하는 거죠. 지금 이 기관은 입이 수행할 수 있는 다른 기능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기능만이, 이를 정신분석가들은 ‘충동’이라고 불렀는데, 한 가지 기능만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지 기능에 대응되는 대상만 존재하게 됩니다.

입이 행하는 충동, 그게 ‘채취’라는 기능입니다. ‘채취-절단’이라고 부릅니다. 절단의 가장 중요하고 일차적인 기능이 채취입니다. 첫 번째 절단인데, 채취 절단은 조금 뒤에 설명됩니다. ‘채취’는 프랑스어로 ‘prélèvement’, 영어로 ‘selection’, 독일어로 ‘Entnahme’, 일본어로 ‘採取’라고 옮겼습니다. 채취란, 마치 입이 갖고 있는 아주 다양한 기능들을 다 제거해 버리고 한 가지 기능만 발휘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럼으로써 거기에 대응되는 쌍으로서의 상대편이 함께 만들어집니다. 그것을 ‘짝짓기’ 혹은 ‘연결’이라고 합니다. 젖가슴과 입의 짝짓기 혹은 연결은 기계 일반의 기능을 하나의 사례로 집약한 겁니다.

들뢰즈·과타리가 여기서 입을 예로 든 까닭은, 조금 전에 말씀드린 멜라니 클라인이 부분대상을 이야기할 때 입이 특권적인 사례였기 때문입니다. 입은 가장 중요한 사례입니다. 그 입으로 엄마 젖가슴을 깨물기도 합니다. 그 입으로 울기도 하고요. 입은 여러 기능들을 함께 수용할 역량이 있습니다. 그게 맨 첫 문장에 열거된 기능들입니다. 고정된 한 가지 기능만을 수행하는, 아니면 예정된 기능만을 수행하는 ‘입’이라는 기관이 있는 게 아닙니다. 입이라는 것은 언제건 다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잠정적인 기관이라는 거죠. 실제로 보면 세상에 입만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자도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아무튼 숨 쉬고 열 내고 먹고 똥 싸고 씹 하고 하는 게 입입니다. 마지막 두 개는 익숙하죠. 오바이트랑 구강 성교죠.

다음 문장으로 가면 거식증의 입이 나옵니다. 왜 ‘거식증’이라는 말을 굳이 쓰느냐? 입이 가진 가장 일차적인 동물적인 기능인 먹는 기능을 탈각해버린, 먹는 기능이 사라진 입이 바로 거식증에 걸린 입이죠. 그래서 “거식증의 입은 먹는 기계, 항문 기계, 말하는 기계, 호흡 기계 사이에서 주저한다(천식의 발작).” 주저한다는 말은 잠정적인 상태에서 모든 기능들을 언제든 할 수 있는 존재 방식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렇게 모두는 임시변통 재주꾼이다.” ‘임시변통’은 ‘브리콜라주(bricolage)’를 번역한 말입니다. 임시변통 재주꾼은 브리콜라주를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적 사고》(La Pensée sauvage, 1962)에서 쓴 말입니다(한글본 31쪽 각주8 참조). 브리콜라주는 이 책 초반부에 나오는 굉장히 유명한 얘기죠. 갈 길이 머니까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모두는 이렇게저렇게 임시변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여기 ‘모두’라고 했지만 ‘인간’을 가리킨다기보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 있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것들은 다 임시변통을 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어지는 문장. “각자 자신의 작은 기계들이 있다. 에너지-기계에 대해 기관-기계, 언제나 흐름들과 절단들.” 각자는 작은 기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에서도 ‘기계들의 기계들’이라고 했었습니다. ‘에너지-기계’는 방금 전에 봤던 ‘원천-기계’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흐름들과 절단들’, 즉 언제나 ‘짝짓기’ 혹은 ‘연결’이 일어납니다. ‘흐름들’은 뒤에서 더 설명하겠지만, 일단 특정 절단들에 대응합니다. 특정 절단은 특정한 기능 또는 특정한 특성과 관련됩니. 특정 기능을 채취한다고 했으니까, 그 기능을 뽑아낸다는 겁니다. 기능의 관점에서 그 기능과 ‘무관’한 모든 것이 흐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때의 흐름은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가 말하는 ‘만물은 다 흐른다’는 뜻의 그런 흐름이 아닙니다. 흔히 생각하는 ‘흘러간다’는 뜻이 아닌 거죠. 그보다는 ‘무규정자’(apeiron)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무규정자, 즉 규정되지 않은 것, 아무 규정도 부여받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건 특정한 규정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 모든 것이 다 무규정자입니다. 뒤에 바로 사례가 나오겠지만, 시각의 관점에서는 시각 아닌 모든 것은 다 무규정자입니다. 다 똑같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시각 절단에 따르면, 또는 시각의 관점에서는, 청각이건 촉각이건 후각이건 다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들뢰즈·과타리의 ‘흐름’은 아낙시만도르스(Anaximandros)가 말한 아페이론(apeiron)입니다. 아페이론은 ‘끝, 규정, 한정, 한계’라는 뜻의 희랍어 ‘페라스(peras)’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 ‘아(a)’가 합쳐진 말입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들뢰즈·과타리가 ‘아페이론’과 ‘페라스’의 개념 쌍을 이어받았다고 봅니다. ‘흐름’과 ‘채취-절단’인 거죠. 그러니까, 먹는 입은 먹는 것의 관점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무규정자로 봅니다. 그렇게 취급하는 거죠. 그래서 시각은 시각적인 대상들과만 관련을 맺고, 청각은 청각적인 대상들과만 관련을 맺습니다. 다 이런 식입니다. 그렇게 관련 맺는 작용이 ‘짝짓기’ 혹은 ‘연결’입니다. ‘흐름’과 ‘채취-절단’인 거죠.

‘페라스’가 라틴어로 번역되면 ‘피니스(finis)’입니다. 그래서 뒤에 가면 ‘피니스’를 가로지른다(trans)는 뜻의 ‘트랑스피니(transfini)’라는 용어도 등장합니다(원서 44쪽). 어떤 한정된 것을 가로지른다는 뜻입니다. 새로 만들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지요. (라틴어 ‘테르무스(terminus)’도 피니스와 비슷한 뜻입니다. 영어 ‘term’이 여기서 유래했죠.) ‘트랑스피니’라는 용어는 채취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뜻이에요. 방금 시각 절단을 말씀드렸는데, 시각 절단, 시각적 채취의 관점에서는 촉각과 후각 이런 것들이 다 가로질러집니다. 그것들이 갖고 있던 규정들을 상실하는 거죠. 이제 동일한 존재자들의 집합, 가령 이 방을 예로 들자면, 여기서 눈을 감고 청각적인 절단에만 주목하면, 여기 존재하는 것은 온통 소리뿐입니다. 이때, 시각, 후각, 촉각 같은 기존의 규정들을 다 사라집니다. 가로지르고 횡단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여기서 가로지른다는 것은 모두 규정과 관련해서 성립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아시겠지만, 결국 굉장히 예술적인 영감을 줄 수 밖에 없죠. 이런 철학이기 때문에, 갖가지 변이 가능성이 기본적으로 성립랍니다. 이런 작동들의 기본 단위랄까요, 그게 ‘기계’입니다.

그 다음에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나옵니다. “법원장 슈레버는 엉덩이에 태양 광선들을 지니고 있다. 태양 항문. 그리고 그것이 작동한다는 건 틀림없어라.” 작동한다, ‘it works’, 기능한다! 굉장히 중요해요. 계속해서, “법원장 슈레버는 뭔가를 느끼고 뭔가를 생산하며, 또 그것을 이론으로 만들 수 있다.” 다행히도 책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법원장 슈레버의 노트: 어느 신경병자의 회상록》이고, 번역도 훌륭해요. 이 책을 읽어보면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됩니다. 두툼하지만 한 권 갖추고 계신 것도 좋아요.

슈레버는 프로이트에 의해 분석되고, 라캉에 의해 분석되고, 들뢰즈·과타리에 의해 분석되는 묘한 운명을 가진 사람이니까, 원텍스트를 알고 있는 것은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뭔가 생산된다.” 최소한 은유적으로 생산된 게 아닌, 은유적으로 기계작동된 것이 아닌 그 무엇, 그게 뭐냐?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건 느낌입니다. 어떤 느낌이 생산됐을 때, 이 느낌은 은유가 아니라 현실이에요. 바로 그 단계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 “은유들 말고, 기계의 결과들이.” 결과란 말은 영어로 이팩트(effect)입니다. 기계의 결과들은 최종 단계에서는 느낌들로, 영어로 feeling으로 표현됩니다.

이 문단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요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들뢰즈·과타리는 이 무기를 들고 정신분석과 싸우려고 합니다. 오늘 맨 앞에서 본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첫 번째 특성, ‘무의식은 여럿이다, 무의식은 다양체다,’ 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잠정적인 입은 채취-절단에 따라, 즉 특정 기능을 부여받음에 따라, 특정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현행화됩니다.

두 번째 특성, 즉 망상은 세계 망상이지 가족 망상이 아니라는 점도 드러납니다. 지금까지 읽은 대목에서는 ‘망상’이라는 단어가 안 나왔지만, 슈레버의 망상이 거기에 해당합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온갖 인종과 역사적 인물이 다 등장합니다. 세상의 종말까지 다 얘기됩니다. 그게 느낌들, 실제 결과물(effect)로서의 느낌들의 내용입니다. 그게 가족망상이 아니라는 거죠. 그걸 가족 망상으로 축소시킨 건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입니다. 프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슈레버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슈레버의 아버지는 실제로 당시 유력한 교육 개혁자였습니다. 아버지 슈레버는 말 안 듣는 아이들을 묶어놓고 자세를 교정한다고 수갑 같은 것을 채워 허리를 교정하는 기구를 발명해서 실제 학교 현장에 적용한 사람입니다. 책을 보면 도판들이 나옵니다. 아버지 슈레버는 단지 가족 내의 아빠가 아니라 엄청나게 사회적인 활동을 한 인물입니다. 사회적인 기능인인 아버지 슈레버가 아들 슈레버와 어떤 관계를 맺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들뢰즈·과타리의 주장입니다. 사회의 연장선상에서 사회적인 힘이 아들 슈레버에게까지 미쳤다라고 봐야지, 그걸 떼놓고 슈레버의 어린 시절이 어쨌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다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슈레버의 망상은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것이지 가족사적인 것이 아니다. 항상 가족은 사회로 열려 있다. 가족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사회에서 들어온 것이다. 이게 두 번째 요점과 관련됩니다.

세 번째 요점은 무의식은 기계와 공장이지 극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의식은 생산하고 만들어냅니다. 방금 읽은 구절에서는 ‘절단’이라는 기능과 관계됩니다.

여기까지가 원서 7쪽의 첫 문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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