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타자(데리다) vs. 지각체(들뢰즈)

1. 데리다: 동물은 타자다

“동물이 우리를 바라본다. 우리는 그 앞에서 벌거벗고 있다. 그리고 아마 사고(penser)는 거기에서 시작한다.”(자크 데리다, L’animal que donc je suis, Galilée, 2006, p. 50; 영어본 p. 29)

(주석) 김동규 교수가 《철학과 현실》 2023년 겨울호에 쓴 〈타자는 타자가 아니다〉라는 칼럼에서 인용한 데리다의 글 한 구절을 원문을 참조해 수정했다. 필자는 데리다가 하이데거와 레비나스가 타자에서 동물을 배제한 것을 비판했다면서 타자를 타인을 넘어 동물로 확장했다고 한다. 이 맥락에서 데리다의 체험을 담은 앞의 구절을 제시한 것이다.

같은 글의 초반에 데리다는 이렇게 진술한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 오래 전부터, 동물이 우리를 바라본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어떤 동물이? 타자가.”(원서 p. 18; 영어본 p. 3)

김동규는 타자로서의 동물에 개해 이렇게 마무리한다. “동물의 시선은 고루한 고정관념과 번잡한 번뇌를 벗어 던지고 원초적인 영점에서 다시 사유하게끔 강요한다. 그 날카로운 눈맞춤에서 ‘야생의 사고’가 시작된다.”(69쪽)

2. 들뢰즈: 지각체(percept)

나는 데리다의 구절들을 읽으면서 들뢰즈·과타리가 예술을 논하는 대목이 떠올랐다. 내가 쓴 논문(들뢰즈의 미학에서 ‘감각들의 블록’으로서의 예술작품 )을 인용한다.

“들뢰즈는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지각체를 예시한다. 가령 멜빌의 해양 지각체(《모비딕》의 바다)나 버지니아 울프의 도시 지각체(《댈러웨이 부인》의 런던). 그렇지만 이 지각체는 인간 없는 풍경이다.

“풍경은 본다(voit). […] 지각체, 그것은 인간 앞에 있는, 인간의 부재 속에 있는 풍경(le paysage d’avant l’homme, en l’absence de l’homme)이다.”(《철학이란 무엇인가?》 원서 p. 159)

(중략)

인물상은 굳이 인간일 필요는 없다. 회화의 역사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꽃을 보라. 들뢰즈는 라우리(Malcolm Lowry)의 소설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 점을 말한다. “그런데 당신은 침실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저 해바라기를 알지 않는가? 놈은 내 방을 온종일 뚫어져라 응시한다.”(같은 책, p. 166에서 재인용) 바로 이 해바라기가 인물상이다.”(57-58쪽)

들뢰즈·과타리가 예술을 정의하면서 만든 ‘지각체(percept)’는 데리다가 말하는 ‘타자’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더 생각해 볼 주제다. 끝으로, 지각체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대목을 남겨둔다.

“세계에 서식하며, 우리를 변용하고(affecter), 우리를 생성하게 하는 감각할 수 없는 힘들을 감각하게 하는 것 — 이는 몸소 나타난 지각체의 정의가 아닐까?”(《철학이란 무엇인가?》 원서 p.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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