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정신의 존재를 입증한다

음악은 정신(또는 마음)의 존재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생각해 보자. 물리적 측면에서 보면 시간 축을 따라서 음이 나열되는 현상이다. 매 순간, 아주 아주 짧은 순간, 음은 없다가 있고 다시 있다가 없다. 이렇게 매 순간 명멸하는 음파 주파수는 음악을 구성하지 못한다. 고막이 감지하는 소리의 있음과 없음은 그 자체로는 음악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소리의 진행을 느끼고 음의 변화를 감지한다. 이 능력은 릴테이프, 플라스틱 원반, 디지털 포맷 파일 등에 기록된 음원에는 없다. 다만 시간의 앞과 뒤를 ‘함께’ 담아내는 정신에만 있다. 요컨대 정신의 기억 능력이 없다면 음악은 없다.

각 생물 종마다 가청 주파수대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듣는 음악과 다른 생물이 듣는 음악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각 종마다 각자의 음악이 있다. 늦여름 매미의 울음과 가을녘 귀뚜라미의 울음은 그들 자신에겐 우리에게 들리는 음악과 같지 않다.

각 종마다 시각이 어떻고 청각이 어떻고 하는 문제는 동물행동학자들이 많이 연구해왔다(야콥 폰 윅스퀼의 위대한 작업을 보라). 우리는 나비와 꿀벌과 개와 인간이 각각 어떤 파장 대의 빛을 감지하는지 알고 있고, 개와 박쥐와 돌고래와 인간이 또 어떤 주파수 대의 소리를 감지하는지 알고 있다. 모르는 것은 그것이 각 종의 개체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다.

저들에게 인간의 정신에 대응하는 것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최소한 생물로서 자극을 감지하고 운동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까지는 분명하다. 자극과 운동 사이에 ‘해석’이 있다는 것까지도 분명하다. 베르그손이 잘 지적한 것처럼, 인간한테는 이 해석의 계기가 자극과 운동 간의 ‘시간 간격’ 혹은 ‘기억’ 능력과 관련된다.

음악은 인간 정신을 증명해준다. 설사 인간이 소통하지 못하고 알지 못할지라도, 인간 외의 생물에게 음악이 있는 한, 혹은 음악이 있는 그만큼, 정신도 존재한다고 해야 합당할 것이다.

버틀러는 감자는 감자끼리 소통할 수 있을 거고 다만 인간이 알아먹지 못할 뿐이라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는데, 나는 여기에 십분 동의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감자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합체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냠냠, 쩝. 감자는 리좀이다.

 

(2022.02.20.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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