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다 해준다는 말이 아무런 성찰 없이 유포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번역을 해준다. 맞다. 딥엘(DeepL)은 탁월하며, 파파고나 구글번역도 못지않다. 그런데 한국어로 번역된 걸 이해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번역이 잘 되었는지 검증하는 것도 또또 다른 문제고. 결국 한국어를 구사하는 능력, 즉 문해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런데 한국어 문해력을 갖춘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이건 코딩, 디자인 같은 영역에도 똑같이 해당하는 상황이다.)
요약도 그렇다. 긴 글을 다 읽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할 수 있는데, 원래 긴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있어서 글이 길어진 거라면 그걸 요약해서 보는 건 의미 없다. 장편소설을 한두 쪽으로 요약해서 봐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한 권의 철학 책을 논증 과정과 사고 경로를 따라가며 읽지 않는다면, 내용을 안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결국 이유가 있어서 길어진 것을 요약하는 행위는 어떤 것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짓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스포츠 경기를 하일라이트만 재편집해 ‘감상’하는 행위에 비견할 만하다. (경제, 시사, 유행을 요약할 수는 있겠다만서도.)
돈 말고 다른 가치가 사라진 시대여서, 오직 ‘잡담’과 ‘과시’를 위해서만 인문, 문화, 예술을 소비하는 일이 낯설진 않다. 그렇지만 그런 어리석음을 대놓고 떠들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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