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니체, ‘거짓의 역량’? 아니, ‘가짜의 역량’

들뢰즈의 《시네마2. 시간-이미지》의 6장은 ‘Les puissances du faux’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영어로는 ‘The powers of the false’라고 옮겨져 있다. 한국어 번역에서는 ‘거짓의 역량’으로 옮겼고, 이 때문인지 국내의 연구자는 모두 ‘거짓의 역량’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다(역자 이정하 선배께 미안하게도).

일단 이 표현이 니체의 것이라는 점에서 시작하자. 들뢰즈는 이 점을 명시한다. 그렇다면 니체한테 the false ; le faux는 어떤 의미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1873년 니체가 쓴 짧은 글 ‘초도덕적 의미에서 진실과 거짓말에 대해(Über Wahrheit und Lüge im außermoralischen Sinne)’에서 출발하곤 한다(이진우의 한국어 번역은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로, 영어로는 ‘On Truth and Lies in a Nonmoral Sense’, 프랑스어로는 ‘Vérité et mensonge au sens extra-moral’로 옮김). 여기서 ‘진실’과 ‘거짓말’의 대비가 등장한다. 니체의 주장은 거짓말이 거짓말임을 잊게 되면 진실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 번역처럼 니체의 주제는 ‘진리’와 ‘거짓’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관건은 ‘진짜’와 ‘가짜’의 대립이며, 이는 인식론을 넘어 존재론의 문제다. 흔히 ‘진품’과 ‘짝퉁’을 대비할 때의 그 맥락과 닿아 있다. 명품 백이 진품인지 짝퉁(가짜)인지를 구별하는 건, 존재론의 문제다. 이건 ‘진리’와 ‘거짓’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 보자. 아주 정교하게 위조해서 진품과 구별할 수 없는 명품 백이 있다 치자. 그렇다면 이 명품 백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진품과 가짜를 섞어놓았을 때 가려낼 수 없다는 모두가 진품이다. 그러면 진품보다 더 멋진 가짜라면 어떨까? 니체가 다루려 하는 주제는 이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짜의 역량’, ‘가짜의 힘’이다.

들뢰즈는 니체의 이 주제를 영화와 관련짓는다. 특히 오슨 웰스, 장 루슈, 셜리 클라크, 피에르 페로, 존 카사베티스, 장뤽 고다르의 작업에서 이를 발견한다. “허구(la fiction)와 대립하는 것은 현실(le réel)이 아니다. 그건 항상 지배자들 혹은 식민 통치자들의 진실인 진실도 아니다. 그건 가짜를 기억, 전설, 기형으로 만드는 역량을 가짜에 부여하는 한에서, 가난한 자들의 지어내기 기능(la fonction fabulatrice; story-telling function)이다.”(Fr. p. 196; En. p. 150) 요컨대, ‘가짜의 역량’이란 새로운 세계를 꾸며내는 힘이다. 그것은 저항이며, 혁명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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