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앞 시대로 돌아가야 할 이유

서양철학 저술들을 읽는 데 있어 가장 방해가 되는 인물은 단언컨대 칸트이다. 물론 칸트(1724~1804)의 어휘가 라이프니츠(1646~1716) 및 볼프(1679∼1754)를 거치며 정립된 독일어 철학 개념의 영향 아래 구성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성립된 독일관념론의 어휘가 일본어로 번역되어 조선/한국에 소개된 이래, 칸트가 빚은 개념 렌즈는 오히려 장벽으로 서게 되었다. 심지어 라이프니츠-볼프 그리고 바움가르텐을 읽는 데도 방해가 될 정도니 말이다. 고싱가 숲 주인장 선생의 글을 참조하면, 더 과거로 갈 땐 말할 것도 없다는 점이 드러난다.

인용(링크가 지워질까봐 주요 대목을 ^C&V했습니다):

“서양철학사 관련 책을 읽은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칸트를 필두로 한 독일관념론은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에서 정립된 철학용어를 바탕으로 성립되었다고 알고 있다. 이런 철학사의 흐름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으나, 일본이 근대화되던 시기에 독일관념론의 용어들을 번역하면서 한자로 조어한 용어들이 현재 우리나라 언어로 고스란히 계승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의 철학용어는 결코 무시할 게 못된다.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서양철학사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할 때 독일관념론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다름아닌 그 번역용어들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한 생각이 아닐 것이다. 가령, “관념”, “객관”, “인식”, “본질”, “오성”, “이성”, “지성”, “현상”, “경험”, “감각”, “감관”, “의미”, “근거”, “인과” 등등의 낱말들은 길게 역사를 추적하면, 일본 번역어를 거슬러올라가 독일관념론,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의 철학용어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그 용어들을 입에 올릴 때 우리의 개념은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우리의 개념은 그 체계와 분리된 의미를 띠기 어렵다. 다름아닌 일본 번역어가 독일관념론에서 정의된 개념에 맞게 번역된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이 칸트라는 저수지로 흘러든 뒤 이후의 철학사를 향해 흘렀다는 칸트주의자들의 평가는 과장된 면이 있겠으나, 적어도 그 용어들의 흐름을 고려해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닐 성싶다. 그만큼 우리는 그 용어들을 독일관념론에서 정의된 개념의 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개념틀은 엄밀히 말해 한 시대의 정신에 불과한 것이다. 하이데거가 그 용어들의 역사성을 밝혀내면서 개념틀을 뿌리채 흔든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라이프니츠-볼프 이래의 개념체계, 즉 몇 세기에 걸쳐 서양철학사를 주조했던 개념체계를 해체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가 현대독일어 문법에 허용되지 않는 희한한 독일어를 남발하는 것은 독일철학 용어로 편입된 언어들을 옛 시대의 의미로 복원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으니까.

 에크하르트는 라이프니츠-볼프보다 약 400년 앞선 세대에 속한다. 따라서 그의 논고에는 “인식”, “이성”, “오성”, “본질”, “현상”, “근거” 등의 독일어가 등장하지만, 라이프니츠-볼프 체계의 개념틀 내지 독일관념론의 개념틀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철학사적 흐름 때문이다. 바꿔 말해, 에크하르트의 글에 등장하는 “인식”, “이성”, “오성”, “본질”, “현상”, “근거” 등의 낱말들은 강단철학에서 협소한 개념체계로 굳어지기 이전의 의미를 갖고 있다. 거기에다 그의 중세고지독일어(Mittelhochdeutsch)는 현대독일어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언어에 접근할 때 매우 조심스럽게 전후좌우를 살피면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인용 끝.

칸트가 왜 문제인고 하니, 그는 자기까지 이른 철학의 역사를 자신의 철학 체계에 맞게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데카르트 이래의 대륙 이성론 전통과 흄에까지 이른 영국 경험론의 전통을 ‘종합’했다는 것이 그 요점이다. 사실 우리가 근대철학사를 배울 때, 그것도 첫인상으로 각인 받을 때, 기본 도식이 이것 아니던가. 그 후로 헤겔에서 완성될 독일관념론과 맑스에 의한 전복 등… 우리의 철학사 읽기는 여기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스피노자의 중요성이 가려진 것도 다 칸트 덕이고, 흄의 철학을 인식론에 국한시킨 것도 다 칸트 덕이다. 맑스와 니체의 공헌이라면, 바로 칸트의 관념론-인식론 중심 철학을 극복하려는 시도 속에서 새 언어들을 도입한 데 있다. 고대 원자론(자연철학)에 대한 학위논문에서 《독일이데올로기》에 이르는 맑스의 철학적 작업의 의의는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 들뢰즈가 니체의 철학이 칸트의 비판 작업을 끝까지 밀고 갔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들뢰즈가 철학사를 새롭게 읽어낸 의의는 칸트와 관련해서 가장 주목되어야 한다.

나는 딱 하나만 예로 들고 싶은데, 그것은 흄의 imagination 개념이다. 가령 들뢰즈는 이를 인간 마음의 능력으로 보지 않는데, 그 근거는 바로 흄 자신의 텍스트(《인성론》)에 있다. 흄에게 imagination은 ‘상들의 제멋대로 형성arbitrary collection of images ( = ideas)’을 가리킬 따름이며, 그것이 또한 mind를 구성한다. 이게 다는 아니지만, 시작은 그러하다. 그런데 칸트는 imagination을 Einbildungskraft(상상력)로 번역해서 그것을 ‘마음의 한 능력’으로 삼는다. 흄에서 수동적 종합의 결과가 칸트에서 종합 능력의 한 부분이 되었다. ‘상상’은 ‘상상력’이 되었다. 들뢰즈의 첫 저작 《경험주의와 주체성》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는 데서 출발했다. 흄에서 imagination은 상상’력’이 아니며, 역으로 마음을 구성하는 모종의 종합이다. 들뢰즈는 철학사적 의의 중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이런 식으로 칸트를 넘어서 철학사를 읽었다는 점이 있겠다.

우리는 어떠한가? 칸트의 렌즈를 벗어던질 능력이 있으며, 훈련이 되어 있나? 아니면 여전히 칸트의 에피고넨으로 머물러 있나? 바움가르텐(1714~1762)에 대해 몇 가지 조사를 하면서 든 강한 의문이다(이 주제는 별도 포스팅 예정).

 

(2018.2.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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