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력(literacy)을 둘러싼 세대 간 논란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 간 격차

문자력(literacy) 논란은 기회만 되면 머리를 내밀어 논란을 빚곤 한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으로 이어지는 ‘쯧쯧 담론’과 ‘나이 든 세대도 못지않다’는 ‘꼰대 비판 담론’이 충돌을 빚곤 한다.

사실 이 문제는 두 층으로 나뉜다. 이를 언급하기 전에 내가 ‘언어력’이라고 부르는 것을 짧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언어는 자연어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확장된 언어 상황을 살고 있다. 즉, 자연어에 보태 수학, 자연과학, 기술, 디지털, 예술도 일정한 한도 안에서는 언어이다. 후자의 묶음을 ‘인공어’라 칭할 수도 있으리라. 이러한 확장된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바로 ‘언어력’이다.

문자력 논란의 첫 번째 층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간의 수평적 소통과 관련된다. 언론에 보도되는 사례는 나이 든 세대가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을 젊은 세대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집중된다. ‘시발점’, ‘족보’, ‘사흘’ 등의 사례. 잘 언급되지 않는 상황은, 젊은 세대의 줄임말을 나이 든 세대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요컨대, 세대(?)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군이 다르고, 세대 사이에서 그 어휘군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즉, 문제는 쌍방적이며, 듣는 쪽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를 배려하지 않는 건 물론 젊은 세대도 나이 든 세대를 배려하지 않고 있다. ‘꼰대 비판 담론’ 측에서는 뒤의 문제를 별로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나이 든 세대가 사회 전반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상대적 약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긴 해도, 내 생각엔, 서로를 배려하는 화법이 필요하다. 여기서 다시 어휘력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의 어휘력이 약해 보이는 건 분명하며, 이는 교육과정 때문으로 보인다. 학생 때 얼마나 어휘력을 익혔는지, 나아가 모르는 어휘가 나올 때 얼마나 사전과 용례를 찾아가며 익혔는지가 쟁점일 것이다.

두 번째 층은 역사를 살아가는 수직적-시간적 소통과 관련된다. 뒷 시대는 앞 시대까지 축적한 문명을 계승하며 그것을 수정하고 뭔가 보탠다. 문제는 앞 시대의 어휘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동안 쌓인 문명은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한다는점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끼리야  추가 설명하면 소통이 성사될 수 있지만, 시대 간에는 그것이 어렵다. 앞 시대의 어휘를 익혀야 할 필요와 의무는 뒷 시대에 있다. 현재 문제가 되는 건, 나라를 막론하고, 뒷 시대가 앞 시대를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문명의 퇴락을 의미하며, 인류의 유산 중 하나인 민주주의의 붕괴 징조이기도 하다. 앞 시대의 어휘를 이해하는 자들은 그렇지 못하는 자들을 지배하게 된다. 지식이 권력이라는 베이컨의, 그리고 푸코의 진단은 여기서 효력을 발휘한다.

확장된 언어 능력인 언어력으로 가보면 사정은 다를까? 디지털에 대한 이해는 젊은 세대가 더 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다른 인공어 능력 역시 젊은 세대가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요컨대 젊은 세대는 ‘언어력’ 면에서 나이 든 세대에 뒤처져 있다. 역사를 놓고 볼 때, 젊은 세대는 혈기왕성함과 더불어 나이 든 세대를 ‘언어력’을 통해 극복하며 자신의 시대를 열어왔다. 그렇지 않은 세대는 앞 세대에 흡수되고 말았다. 지금은 나이 든 세대가 권력과 언어력 면에서 우세하다. 나이 든 세대야 ‘쯧쯧 담론’ 한 번 펼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면 되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더욱이 인간의 기대수명이 치솟을 만큼 치솟은 첫 번째 시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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