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예술의 과제는 ‘뇌-눈귀-손’을 활용해 ‘물질’이나 ‘미디어(midium)’로 감각의 건조물을 설립하는 일이다. 이는 장르와 상관없다. 작가가 될 사람은 이 과업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교육 받아야 한다. 그 결과 작가는 수습 딱지를 떼고 자기 이름을 내세우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가장 유의해야 할 사항은, 작가에게 물질이나 미디어는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하는 일이다. 근래의 역사를 보면 텔레비전과 비디오, 컴퓨터, 전자 미디어, 인공지능이 등장한 때마다 ‘요란한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반 세기가 넘는 역사 속에서 과연 몇 명의 작가가 현재적 의미를 갖는가? 대다수가 새로운 미디어에 혹해 기술적 시도에 머문 작업이었던 것은 아닌가? 새로운 미디어조차도 수많은 재료의 일부일 뿐이다. 단지 새롭다는 이유로 새로운 실험이 가능해지는 건 아니다. 사진이 나오고 영화가 나오고 포토샵이 나왔던 역사를 기억하자. 새로운 미디어도 시간이 지나면 여러 미디어 중 하나가 된다. 수습 작가는 ‘모든’ 물질과 미디어를 앞에 놓고 실험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당장 선호하지 않더라도 각 미디어의 특성을 알고는 있어야 한다. 미리부터 자신을 좁은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손의 일이다.
둘째로 풍요로운 경험을 해야 한다. 가급적 많은 실물 작품을 보고, 듣고, 걷고, 이야기해야 한다. 작품을 몸으로 경험하는 일은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 불필요한 일이라고 여기기 쉽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 커지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VR, AR 장비가 뛰어나도 실물 작품을 체험하는 일은 차원을 달리 한다. 예술 감상과 창작에서 몸은 중핵에 있다. 인간은 비슷한 몸을 갖고 있어서 체험을 공유한다. 작가란 남보다 먼저 보고 듣고 느끼는 자다. 먼저 체험하지 못하면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 수 없다. 화가 파울 클레의 말을 빌리면, 작가는 보이는 것을 다시 제시하는 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자다. 이때 보이지 않는 것이란 남들이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는 뜻이다. 수습 작가는 먼저 잘 보고 들었던 이들의 작품을 최대한 체험함으로써 아직 아무도 못 본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눈귀의 일이다.
셋째로 자유롭고 실험적인 생각이 많아야 한다. 특히 ‘실험’과 관련해서 수습 작가가 오해하기 쉬운 점은, 그 실험을 자기가 역사상 최초로 했다는 착각이다. 사실 어지간한 실험은 누군가 다 했다고 봐야 한다. 눈귀로 작품을 경험했다면, 더 나아가 생각의 실험이 펼쳐졌던 또 다른 공간을 탐색해야 한다. 바로 문학, 역사, 철학, 교양과학 등 인문 분야의 독서다. 또한 독서만으로 그치지 말고, 읽으면서 촉발된 생각을 적고 이야기해야 한다. 정작 실습에 전념하느라 실제 아이디어의 바다가 되곤 하는 인문 분야를 무시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자유로운 실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을 자극하는 지식을 최대한 머릿속에 넣고 다녀야, 문득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불똥을 튀며 떠오를 수 있다. 이것이 뇌의 일이다.
‘뇌-눈귀-손’의 일을 구분했다고 해서, 각각 따로 논다고 여기지 않기 바란다. 또한 실제로 창작 작업을 반복해서 시도하는 일도 분명 중요하다. 작가는 작품으로 세상과 만나는 법이다. 재료나 미디어를 잘 다루는 것은 기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때는 무엇보다 생각의 실험이 중요하다. 글쓰기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결과물에만 주목하면 인공지능에게 맡겨도 된다. 하지만 글쓰기는 ‘생각의 근력’ 또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훈련 과정이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힘들고 귀찮아도 손수 해야 체력이 커진다.
사실 글쓰기는 창작 작업과 같은 수순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단계, 그게 출발점이다. 아이디어 없이는 아예 시작도 못한다. 그런데 보통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는 상당히 재밌지만 좀 막연하다.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야 한다. 둘째,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자료와 재료를 조사하고 수집해야 생각이 구체화된다. 셋째, 그것을 종합해야 한다. 즉, 엄청나게 모은 자료를 쓸만한 크기로 줄이고 압축해야 한다. 요약은 자기 식으로 압축하는 작업이다. 여러 참고 자료를을 하나로 압축해서 내 식으로 요리해야 된다. 요약 과정에서 나의 역량이 길러진다. 끝으로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잘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편의 글이 나온다. 글쓰기란 이런 일련의 과정이다.
블로그건 페이스북이건 창작 노트건, 자기 생각과 작업을 꾸준히 기록하라.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면 행운이다. 예술 창작 작업은 결코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술은 사람을 향해 나아갈 때만 힘을 발휘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