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둘로 구분됩니다. 이론적 배경은 건너뛰고, 2절부터 읽으셔도 됩니다.
1. 디지털 기술, 혹은 인공지능, 생산 도구냐 소비 도구냐?
디지털 기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보의 유통에 있다. 흔히 경제의 세 축을 생산-유통(분배)-소비라고 할 때, 유통은 중간에, 즉 ‘매개(mediation)’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은 무엇보다 ‘미디어(medium, 매개자)’다. 디지털 기술 전에 발명된 대표적 미디어로 그림, 음성, 문자, 인쇄가 있었고 잠시 전신, 라디오, 텔레비전, 비디오 같은 아날로그 전기 기술이 있었다. 디지털 기술은 이 모든 미디어를 비트로 변환한다. 비트로 변환하는 것이 불가능한 감각의 화신 예술 작품이나 몸적 체험을 제외하면, 오늘날 대부분의 정보는 디지털 매개되어 있다. 디지털 매개된 정보는 오늘날 새로운 기관 없는 몸(corps sans organes)을 이루고 있다고 진단할 수도 있겠다.
물론 디지털 기술은 생산과 소비의 국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개인이 PC나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구동하는 다양한 앱(응용프로그램)은 대표적인 생산 도구이며, 오늘날에는 여러 종류의 인공지능이 PC나 클라우드에서 돌아가는 상황까지 왔다. 그렇게 문서도, 그림도, 음악도, 동영상도 만들거나 변형하며 계산도, 분류도, 패턴 인식도, 통계 처리도 실행한다. 요컨대 우리는 다른 종류의 기술은 물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생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소비도 디지털 기술 매개되어 있다. 이미지를 보고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시청하는 일뿐 아니라 몸에 부착하는 형태의 디지털 기기로 몸 상태와 건강을 측정하고 관리한다. 교통과 통신을 비롯한 도시 인프라의 상당 부분도 디지털을 경유한다. 결제도 소통도 회의도, 심지어 학교 수업도 마찬가지다. 이제 디지털 매개가 아닌 소비 활동을 찾아보기란 어려워진 듯하다(우리가 GPS와 지도를 통한 지리 정보 시스템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돌아보라).
하지만 디지털 기술과 정보가 이 시대의 기관 없는 몸이 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유통에서 확인된다. 만일 디지털 매개 유통이 성립하지 않았다면 생산된 정보는 예전처럼 디스크나 USB 같은 물리적 매체로 물리적 공간을 거쳐 유통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비도 카세트테이프나 디스크 혹은 USB를 통해 기기에 장착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생산과 소비가 디지털로 가능하더라도, 그 중간을 디지털이 매개하지 않는다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사회로 전개되었음이 분명하다. 디지털 기술 혁명의 정점에는 매개, 미디어, 혹은 유통이 있었다.
2. 인공지능은 소비 도구
이제 이런 전제 아래에서, 생산 도구와 소비 도구로서의 디지털 기술을 분석해 보자. 나아가 인공지능 혹은 생성 인공지능이 어디에 해당하는지도 살펴 보자. 그런데 인구의 대부분에게 디지털 기술이, 그리고 인공지능이, 생산 도구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학생 시절에야 여러 형태로 생산 활동이 강요되지만(문서 작성, 수치 자료 처리, 발표 같은 오피스 도구), 졸업 후에는 그런 일을 할 상황이 많지 않다. 업무에 디지털 도구를 생산 용도로 활용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런 업종이 얼마나 될 것인가? 2023년 하반기 총 취업자 통계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위의 자료에서 볼 수 있듯, 디지털 기술이나 인공지능을 생산 도구로 사용하는 업무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상위권에 속한 요식업, 농업, 운송업 같은 분야(이 셋만 해도 17.1%나 된다)에서 개개인이 인공지능을 사용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공지능 혹은 생성 인공지능이 개개인의 생산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은 과장이다. 게다가 취업하지 않은 자영업자나 가사 노동자는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생산 도구로 사용하는 개인이 전 인구의 몇 퍼센트나 될지 알기 어렵다. B2C로 돈을 벌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사무직과 전문직에 있기 때문에 이런 현실이 외면되어 왔다고 봐야 한다. 이런 사정은 전 세계가 비슷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B2B나 국가 인프라 차원에서 수익이 나야 할 텐데, 이 문제를 깊게 다루는 건 내 몫 밖이다.
또한 인공지능(디지털 기술 말고)을 소비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이 상황은 서비스 업체가 뒷단에서 인공지능을 구동해 소비자에게 앱을 매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대부분일 것이다(게임, 콘텐츠, 교통, 금융, 결제 등). 이걸 소비자가 인공지능을 이용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3. 키오스크는 이용법을 모르는 개인보다 돈 없는 개인을 먼저 밀쳐낸다
소비 도구로서의 디지털 기술은 어떨까? 사실 인공지능은 물론 디지털 기술도 개개인이 생산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 착안하면, 대부분은 소비 도구로 이용된다고 봐야 옳다. PC야 그렇다 쳐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생산 도구로 쓰기는 너무 불편하다. 카메라와 녹음기로 쓰는 것 말고는 PC가 월등하다. (전자책을 읽고 스크린에 필기하는 상황은 논란의 여지가 많으니, 넘어가겠다.)
소비 도구로 쓴다는 것이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쉬고 놀 때도 있어야 하고, 여러 활동의 보조 도구로 쓰는 것도 유의미하다. 하지만 이는 ‘돈을 쓴다’는 쪽에 기울며, ‘돈을 번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이 말은 이미 번 돈이 있을 때만 돈을 쓸 수 있다는 진실과 만난다. 그런데 앞의 통계에서 보듯, 돈을 버는 일에서 디지털 기술의 효용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대다수 인구에게 디지털 기술이 소비 도구라는 것의 의미가 여기 있다. 디지털 기술은 기울어 있는(asymmetric) 기술이다. 그것은 소수의 생산 도구이지만, 대부분의 인구에게 소비 도구다. 생산자도 소비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사회(비단 한국 사회뿐 아니라 선진국 전반에 걸쳐)에는 디지털 기술이 생산에 보탬이 되며 그 경쟁에 뒤쳐지면 안 된다는 담론이 팽배해 있다. 나는 이 담론이 절반 혹은 그 미만만 진실이라고 본다. 디지털 기술을 생산 도구로 이용하는 개인은 극소수고 대부분 소비 도구로 이용한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기업(정부 포함) 주도여야 하며, 모든 개인을 끌어들일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개인들은 디지털 기술을 소비 도구로 이용하며, 이용하기 전에 먼저 돈을 벌어야 한다. 키오스크가 밀쳐내는 개인은 이용법을 모르는 개인도 있지만 그보다 돈이 없는 개인을 먼저 밀쳐낸다.
그렇다면 디지털을 둘러싼 사회 담론은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가? 서울시교육청에서 제시한 인공지능 교육 도식을 보자.
이 도식의 의미 있으려면, 인공지능이 개개인의 소비가 아니라 생산 능력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간략히 살핀 바에 따르면 전체 직업군 중에서 인공지능을 생산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공지능이 주로 소비 도구로 이용된다면, 인공지능 교육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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