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gent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사용된다. 크게 두 맥락에서 사용되는데, 하나는 ‘인공지능’을 논의하는 맥락이고 다른 하나는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의 맥락이다.
첫째 맥락과 관련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논의를 이어갔다.
내가 튜링이 사용하지 않은 용어인 에이전트라는 말을 쓴 건, 생각하는 존재가 인간이건 기계건 상관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으로 에이전트라는 얼마간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할 거예요. 이 말은 ‘행하다do’라는 뜻의 라틴어 ‘아게레agere’에서 유래했습니다. ‘행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대리인’이라는 의미로까지 파생되어 사용되기도 하는데 우리 맥락에서는 그런 뜻은 전혀 아니고, (그것이 인간이건 기계이건) ‘생각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2017), 26쪽.
둘째 맥락은 조금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선 최고의 어원 사전 중 하나인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의거하여 agent의 의미를 살피겠다.
영어 agent는 ‘움직이게 하다, 밀어붙이다, 하다, 행하다, 움직임을 유지하다’라는 뜻을 지는 라틴어 아게레(agere)의 현재분사 아겐스(agens)에서 유래했으며, ‘행동하는 자(one who act)’라는 뜻이다.
《로베르 사전》에 따르면 프랑스어에서 agent는 두 가지 뜻으로 나뉜다. 둘째 의미는 ‘개인, 단체 또는 국가의 업무 및 이해관계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이들을 대신하여 행동하는 사람’으로 흔히 ‘대리인’, ‘대행사’, ‘직원’, ‘요원’ 등으로 번역하는 말이다. 아마 ‘대신 행동한다’는 기저 의미는 agent의 첫째 의미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첫째 의미는 이렇게 정의된다.
1. 행동하는 사람 혹은 존재물 (행동을 겪는 수동자(受動者)의 반대). La personne ou l’entité qui agit (opposé au patient qui subit l’action). 2. 현상의 생산에 개입하는 힘, 물체, 실체. Force, corps, substance intervenant dans la production de phénomènes. 3. IT 소프트웨어 에이전트: 자율적으로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Informatique Agent logiciel : logiciel qui exécute certaines tâches de manière autonome.
agent의 용어법을 이해하려면 더 깊은 철학적 배경이 필요하다. 그것은 ‘가함’과 ‘겪음’, ‘능동’과 ‘수동’, ‘작용/행동과 격정/수난’의 개념쌍이다. 전자를 지칭하는 라틴어는 actio (영어/프랑스어 action), 후자는 passio (영어/프랑스어 passion)이다.
이 용어들의 의미는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가함/능동/작용/행동’이란 무엇이며, ‘겪음/수동/격정/수난’이란 무엇인가? 가령 스피노자를 보면, 신은 절대적으로 능동인 반면 피조물은 모두 겪을 뿐이다(수동). 하지만 피조물도 얼마간 능동의 요소를 띠는 경우가 있다. 비유하자면, 100퍼센트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70퍼센트 정도는 관철하는 경우. 스피노자의 윤리적 과제는 피조물로서 최대한 능동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 전자와 후자의 개념쌍과 관련해서는 정말 많은 철학자가 고민했고 제각각 다른 결론을 내렸다(이쯤에서 설명을 멈추겠다는 뜻).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면 agent에 대한 논의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비인간 행위자’라는 표현에서 ‘행위자’의 행위/작용/능동(action)의 실력(puissance) 혹은 정도(degree, 등급)가 관건이다. 행위하는 존재는 통상 동물(animal)이다. 그중에 의식을 가진 동물(특징적으로 인간)은 자기 행위에 대한 얼마간의 조절 능력이 있다. 의식이란 베그르손, 그리고 들뢰즈에 따르면, 감각과 행동 사이의 시간 간극이다. 의식이 없는 동물에겐 그런 간극이 없다.
이를 염두에 두면, 행위 정도는 인간, 동물, 사물(비동물)에서 각각 다르며,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이른바 비인간 행위자의 행위자성을 논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이것이다. 행위 실력이 다르다면, 그 영향력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 얼마나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을까? 가령 인간:동물:사물의 행위 실력이 100:5:1이라면 동물과 사물의 행위자성을 말하는 건 얼마나 유의미할까?
중요한 쟁점이 하나 더 있다. 우주에서 책임질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그렇다면 동물과 사물을 아무리 논하더라도 책임은 고스란히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책임이 인간에게 머물 때 동물과 사물의 행위자성을 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동물과 사물은 책임 있는 존재인 인간의 거울상 혹은 배경에 불과한 건 아닐까? 사물 의회라는 건 돌멩이가 가득한 해변에서 벌이는 인간 의회에 불과한 건 아닐까?
어떤 결론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은 아니고, 이런 논의들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논의가 진행되고 있겠지만, 내가 접하기 어렵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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