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활용한 글쓰기 (2) : LLM 인공지능과 함께 글 짓는 과정 (사례 분석)

LLM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글을 어떻게 쓰게 되는지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직접 해보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는 사례를 통해 이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2.1 인공지능 활용 글쓰기 : 실전 사례

먼저 다음 글을 함께 보자. 이 글은 내 페이스북 친구인 김지윤이 작성했으며,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한 이력이 있다는 점에서 이공계 학생의 본보기로 삼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 과정은 어느 정도는 재현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학생이 직접 입력해 보기 바란다.

“‘장기적인 관점’이라는 게 인간에게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1. 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순간순간의 선택에 치중하게 된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조차 힘든 세상에서, 먼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일까?

  2. 또한, 인간의 본성 역시 장기적인 관점 유지를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즉각적인 보상에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심리학에서 말하는 ‘시간 할인율’이라는 개념은, 먼 미래의 이익보다 당장의 이익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인간의 심리를 설명한다. 이는 진화론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생존을 위해 즉각적인 위험에 반응하고, 당장의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 미래를 대비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생존이 더 절박했던 것이다.

  3.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까? 방법은 있다. 바로 ‘유연성’을 키우는 것이다.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되,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과 과정은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우리는 보다 효과적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4. 또한, 작은 습관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습관을 기르면, 그것이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마치 매일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언젠가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5. 결론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이 인간의 본성이나 요즘 세태에 갖추기 매우 어려운 역량이지만, 유연하고자 끈덕지게 애쓰면서 과거-현재-미래의 스토리라인을 쓰고 수정하길 반복할 때 우리는 (그나마)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인이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짐작하겠지만, 위 포스팅은 놀랍게도 챗GPT가 뽑아낸 내용이다. 이 글을 만들기 위해 인간 에디터 김지윤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업했다. 먼저 업무 차원에서 기사를 작성했고, 이 기사는 ‘내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하고픈 일이 뭐지’라는 최근의 고민과 이어져 개인적으로 공감이 갔다. 그래서 ‘인간에게 장기적인 관점이라는 게 가능하긴 한가’를 포스팅의 아이디어로 정하고, 챗GPT에게 다음과 같이 입력했다. “‘장기적인 관점’이라는 게 인간에게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작성해줘.” 인공지능이 작성해준 초안을 살펴보고, ‘시간 할인율’이 실제로 있는 개념인지, 이 개념이 글에 적절한지, 등 팩트체크를 했다. 그리고 나서 전체 글을 한 차례 퇴고하면서 윤문(문장 가다듬기)을 했다. 마지막 문단은 김지윤 자신의 생각을 담아 재작성했다.

이상의 과정은 LLM을 활용한 글쓰기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김지윤은 자신의 포스팅(정확히는 댓글)에서 ‘인간 에디터’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 표현은 LLM 글쓰기 과정에서 인간의 위상을 잘 드러낸다. 말하자면 인간이 ‘에디터’, 즉 편집자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그림 참조). 편집자는 누구인가? 출판사에 원고가 들어왔을 때 그것을 ‘제어’하는 존재다. 주제를 검토하고, 문장과 표현을 감수하고, 문법과 어법과 어휘를 교정하는 바로 그런 역할이 편집자의 몫이다. LLM을 활용해서 과학 논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편집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2 인간 에디터의 인공지능 활용 글쓰기 사례분석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 에디터가 작업한 과정을 단계별로 분절해 보자. 첫째, 문제의식 혹은 아이디어가 있다. 앞의 사례에서 그것은 ‘내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하고픈 일이 뭐지’ 혹은 ‘인간에게 장기적인 관점이라는 게 가능하긴 한가’라는 물음의 형태를 띤다. 둘째, 인공지능이 작성한 ‘초안’이 있다. 어디까지나 초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요즘도 인공지능이 생성한 글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셋째, 팩트체크 단계다. 표현을 ‘팩트체크’라고 했지만, 인간 에디터가 한 일은 그저 사실 확인에 그치지 않는다. ‘이 개념이 글에 적절한지’ 검토하는 일은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절성’을 평가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아무리 사실일지라도 적절하지 않은 내용은 글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넷째, 글 전체의 내용을 퇴고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 마무리한다. 이 마지막 단계는 최초의 문제의식 혹은 아이디어를 마감하는 단계다. 마무리 혹은 글의 결론이 없다는 글의 존재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LLM은 어떤 기능을 했을까? 저자의 문제의식 혹은 아이디어에 관련된 일반적인 글을 초안으로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시간 할인율’ 같은 개념도 등장시켰다. 중요한 점은 저자가 이 주제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실존적인 고민과 함께 ‘장기적인 관점’이라는 키워드와 관련된 문장들을 생성하게 유도했을 뿐이다. ‘장기적인 관점’이라는 키워드는 반응의 ‘결정핵’ 역할을 했고, ‘시간 할인율’ 같은 개념은 반응의 ‘촉매’가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본인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고 최초 단계에서 갖지 못했던 개념을 얻었으며, 이를 매개로 다시 자신의 문제를 성찰해 작은 결론에 도달했다. 요컨대 위의 사례에서 LLM은 ‘시간 할인율’ 및 그 언저리에 있는 개념들을 저자에게 찾아주었다. 브레인스토밍을 도와주었다고 평가하면 적절하다. 물론 많은 문장을 제안했고 짧은 글을 써주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은 저자 혹은 인간 에디터가 일일이 평가하고 수정하고 마감하는 ‘더 중요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2.3 서로 다른 LLM을 이용해서 글 써보기

김지윤의 포스팅에 달린 또 다른 페이스북 친구 차우진의 댓글도 흥미롭다. 그는 김지윤이 던진 질문과 똑같은 질문(“‘장기적인 관점’이라는 게 인간에게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작성해줘.”)을 클로드 3.5소네트에 던지고 아래와 같은 짧은 에세이를 결과물로 챙겼다.

“‘장기적인 관점’이라는 게 인간에게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종종 단기적 이익에 집중하게 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정보의 홍수와 SNS의 영향으로, 우리의 주의 집중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금이야말로 장기적 관점이 더욱 중요한 시기다. 기후 변화, 인구 고령화, 경제 불균형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은 단기적 해결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 모두가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지속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단기적 욕구와 장기적 비전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장기적 사고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정책 입안자들은 당장의 인기보다는 미래의 이익을 고려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일상에서 작은 결정들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고민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 관점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키워나가야 할 능력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후 보정을 하지 않은 이 결과물은 김지윤이 얻은 글과는 사뭇 다른 내용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유연성을 기르고 작은 습관부터 만들어가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김지윤 생성 글의 결론과 달리, 차우진이 생성한 글은 미래를 위해 단기적 욕구와 당장의 인기를 제한하고 장기적 비전의 달성을 위해 매순간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같은 질문을 제미니 1.5프로에 입력해서 아래와 같은 결과를 얻었다.

“‘장기적인 관점’이라는 게 인간에게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눈앞에 놓인 달콤한 사탕을 마다하고 씁쓸한 약을 삼키는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지 않다. 당장의 만족을 뒤로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하는 일은 얼마나 큰 인내심을 요구하는가.

우리는 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만나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성공한 삶’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다.

물론 장기적인 안목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미래만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공허함만을 남길 수 있다. 오히려 현재의 행복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판 삼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더욱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어쩌면 ‘장기적인 관점’이란 거 grand plan처럼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의 햇살, 좋아하는 노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처럼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현재의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장기적인 관점’일지도 모른다.

결국 삶은 현재의 순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테니까.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결과물은 한 글자도 손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생성물이다. 이 글은 장기적인 안목이라는 거창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매 순간을 누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장기적인 관점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위에서 본 두 사례와 또 다른 글이 탄생한 것이다.

 

2.4 비판적 고찰

지금 이 책을 읽는 학생은 어떤 글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자신이 저자 혹은 인간 에디터라면 어떤 글을 선택하고 싶은가? 어떤 주제로 글이 쓰고 싶어지는가? 아니면 뭔가 불만족스러운가?

예시로 언급된 정도의 주제에 대해 LLM마다 서로 글을 출력하지만, 질문을 반복하더라도 대체로 수렴된 결과, 즉 비슷비슷한 글로 수렴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각 LLM이 학습한 내용이 ‘수렴된 평균치’ 근처에서 동작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세부사항을 물을수록 답변은 불만족스럽다. 어떤 때는 마치 초등학생에게 들려주는 설명을 듣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학술적인 글은 지금껏 본 글과 비교해서 주제도 전문적이며 복잡하고 분량도 훨씬 길다. 예로 든 세 편의 글은 1,000자가 안 되는 짧은 분량이며 내용의 깊이도 얕다. 분량과 깊이는 반드시 정비례하는 건 아닐지라도, 일정한 깊이를 갖춘 글이 되려면 분량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사실 학술 논문 수준의 꽤 긴 글을 인공지능이 작성하는 것은 어렵다.

실제로 실험해 보면, 학술 논문이 아니더라도 내용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긴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앞의 사례에서 던졌던 질문을 10,000자 분량으로 쓰라고 요청하면, 요점 없는 글, 반복되는 내용, 의미 없는 열거 등으로 가득 차 있으며 분량도 채우지 못한다. 위의 그림을 보면 ‘한국어로 약 2,700자’라고 답하는데, 실제로 세어 보면 4,860자다(글자 수 세는 것도 틀리다니!). 그나마 GPT-4o나 제미니 1.5프로에서는 훨씬 짧은 분량밖에는 만들지 못했다. 이런 사실은 분명 학술적 글쓰기에 LLM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유발한다.

더 중요한 물음이 있다. 이렇게 LLM을 활용해 글을 쓰면 ‘나의 역량’은 증가하는가? 나의 글쓰기 역량, 나의 학술적 전문성, 나의 평가 안목, 나의 소통 능력, 나의 발표 능력, 나의 설득력 등 ‘나의’ 역량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가? 이런 물음들을 뒤에 남기고 이번 장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Comments

Leave a Reply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