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집필 중인 책은 지금까지 출간했던 책들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가제는 《다시 몸으로: 읽기, 걷기, 쓰기의 힘》이다. 내용이 짐작되시는지?
현장의 경험과 이론적 사색을 통해 오랫동안 고심해온 이 책의 내용은 오롯이 ‘역량 교육‘의 관점에서 구성되었다.
여기서 교육은 초중등 교육은 물론 고등교육과 평생교육을 아우른다. 즉, 전체로서의 인간 교육을 지향한다. 지금 시점에 교육을 언급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교육을 ‘시험을 통한 평가’ 혹은 ‘입시’로 이해할 뿐 교육이 사람을 기르는 일이라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문제 의식 때문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사람이 망가지는 시스템은 되도록 빨리 뒤엎어야 한다.
또한 역량 개념은 OECD에서 말하는 competency(“역량은 지식, 기술, 태도, 가치를 포함하는 전체론적 개념”으로, 단순한 “기술(skills)”을 넘어서며, 학생은 “미래를 더 낫게 바꾸는 일관되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 기술, 태도, 가치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역량 개념은 지식과 기술의 습득을 넘어선 그 무엇을 함축한다. 그것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복잡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지식, 기술, 태도, 가치를 동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OECD 2019: 25)의 차원을 넘어 스피노자와 들뢰즈 철학에서의 포텐티아(potentia) 혹은 퓌상스(puissance)라는 더 근원적인 의미로 재해석된다. 즉, 역량 교육이 왜 중요한지를 존재론적-인간학적 수준에서 논의한다. 이처럼 역량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역량을 기른다는 것은 곧 윤리 그 자체이다.
왜 ‘몸으로’인가? AI와 디지털 기술이 인간 활동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되는 이 시대에 이런 주장을 반박하며 모든 기술은 몸을 중심으로 공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extentions of man)’이라고 주장했다. AI와 디지털이라는 미디어도 마찬가지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확장이다.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우리는 건물을 짓는다. 그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짓는다(We shape our buildings and then they shape us).” 미디어와의 관계에서도 같은 일이 성립한다. 인간이 미디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디어가 인간을 일방적으로 형성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과 미디어는 공진화한다. 공진화의 축이 바로 몸이다. 이를 위해 우선 디지털에서 몸으로 돌아와야 한다.
읽기란 사고가 가능하도록 뇌의 회로를 재편하는 훈련 과정이다. 사고는 “문서화, 체계화, 분류, 조직화, 언어의 내면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의식, 의식 자체에 대한 의식 등”(매리언 울프, 2009: 298)의 발현이다. 읽기를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면, 읽기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 즉 인류가 사고 역량을 기르기 위해 발명한 가장 중요한 교육 장치를 간과하게 된다. 나아가 역량 강화를 위한 읽기는 ‘종이책’ 읽기로 집중되어야 하며 ‘전자책’ 읽기는 교육 도구로서 권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될 것이다.
걷기란 몸의 활동 전반을 대표한다. 뇌의 존재 이유는 몸의 움직임으로 알려져 있다. 조금 단순화한 예를 들면, 멍게 유충은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는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뇌가 있지만, 일단 정착하고 나면 자신의 뇌를 흡수해버린다. 몸의 활동은 몸 자체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뇌의 기능을 향상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요컨대 몸의 운동은 뇌의 운동이다. 몸의 운동을 공간에서의 운동으로 국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몸의 운동은 감각을 포함한다.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 감상과 창작이 대표적인 예다.
쓰기란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서 표현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한 후 자기 방식으로 조리하고 종합하는 전체 과정이다. 쓰기를 결과물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너무나 협소하다. 쓰기는 ‘생각의 근력‘을 기르는 훈련 과정이자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나아가 쓰기는 인간의 보편 역량을 향상하는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 쓰기는 역량 교육의 정점에 있다.
읽기, 걷기, 쓰기를 구별한다고 해서 교육 과정에서 이들이 분리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셋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엮어야 교육 효과가 극대화될지 실증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인천광역시교육청의 교육 비전인 ‘읽걷쓰’가 바로 읽기, 걷기, 쓰기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읽기, 걷기, 쓰기는 교육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다. 한국의 교육이 입시라는 장벽 앞에서 쩔쩔매는 단계를 지나 좌절하고 있다. 교육은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와 국가의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차대한 의무다. 읽기, 걷기, 쓰기를 통해 역량을 기르는 과정에서 개개인은 소통, 협력, 유대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체감할 것이고, 이는 비판 능력, 공론 형성, 민주적 의사결정의 초석을 세우는 최선의 방법이다.
가을 내내 집필해야 해서 아직 출판사는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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