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생각의 싸움》(2019)의 들어가는 말 ‘그래도 철학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의 일부(16-18쪽)입니다.
삶의 문제가 생각을 통해 다 해결되지도 않고 다 해결될 수도 없지만 ‘생각’은 분명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생각의 학문, 그것이 곧 ‘철학’일진대, 한국에서는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배울 기회가 좀처럼 많지 않다. 더구나 경제적인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사회 분위기에서 철학이라면 왠지 구닥다리 물건 취급받기 십상이 다. 돈 되는 것이 아니면 백안시하는 풍조 자체가 철학의 부재를 방증 한다. 그러나 철학 또는 인문학을 비실용적이라고 판정하는 것은 틀렸다. 철학은 전체적으로 볼 때 삶의 실용성을 추구하는 행위이며, 구체적인 삶에서도 상당히 유용할 수 있다.
철학은 도덕도 국민윤리도 아니다. 그것들은 아직 외부에서 강요된 규율에 불과하다. 스스로 검토하고 걸러내어 받아들인 것이 아닌 이상 그 어떤 규칙도 보류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의 실천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삶을 노예로 만들려는 모든 힘에 대항해서 싸우는 생각의 실천’이다. 생각이란 호흡과 비슷한 활동이다. 우리가 숨 쉬지 않고는 한순간도 살 수 없듯이 생각함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 많은 경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확실히 그것은 진실이다. 철학은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우리가 생각을 하는 모든 순간과 관련을 맺는다.
노예는 스스로 생각을 정돈하지 못하는 자가 아닐까. 그러니까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자기 스스로 생각을 이끌어가지 못할진대 어찌 삶의 주인일 수 있을까. 생각의 주인이 아니라면, 삶의 주인도 아니다. 나아가 더 중요하게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가만히 있으면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 삶의 냉혹한 진실이다.
(중략)
삶의 조건이 변하고 있으니 이제 철학은 별 소용이 없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철학은 특수한 영역에 제한된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와 동의어인 ‘생각 활동’과 관련된다. 실패한 연애, 친구와의 다툼, 사업의 어려움, 성적 저하, 부모의 죽음, 현실의 불만 등 우리의 삶은 생각을 동반한다. 우리는 느끼고 따지고 결심한다. 이 모든 것이 다 생각 활동이다. 당연히 철학은 이 모든 것들과 관계한다.
예민한 독자는 눈치챘겠지만 나는 ‘생각 활동’이라는 말을 썼다. 생각은 활동이고, 그것은 달리기나 던지기 또는 계산하기나 먹고 싸기 또는 연애나 다툼 같은 몸의 활동이다. 생각을 무슨 그림자나 허깨비 취급하고, 행동의 준비 단계나 도구 정도로만 여기는 경우도 많지만 나는 이 오래된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다. 생각은 정말 위대한 실천 활동이다. 생각은 자신과 세계를 바꾸는 힘일 뿐 아니라 나아가 자신과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다.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힘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생각은 훈련을 통해 충분히 성숙해야 하고, 무지에서 오는 순진함은 찬양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에는 저열한 것과 고귀한 것이 있는데, 철학이란 우리가 저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술이다. 저열한 생각은 삶을 저열하게 인도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저열한 생각을 극복하고 고귀한 생각으로 향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하여 철학은 ‘생각의 싸움’이다. 저열한 것에 맞서고, 자기 자신의 문제에 답하기 위한, 생각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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