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을 보겠습니다. “형태와 형식을 벗어 던진 순수하고 생생한 내공 상태들이로다.” ‘내공 상태(états d’intensité)’라고 했는데, 이 상태가 당연히 멈춰있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갑니다. 내공 상태는 ‘환각’ 혹은 ‘망상’보다 더 깊은 차원에 있는 ‘나는 느낀다’입니다. 여기서 ‘나’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건 형식상 주어에 불과하고, 그냥 느낌이에요. ‘나’가 먼저 있고 그것이 느끼는 게 아니라, 생성되는 느낌들의 연쇄가 ‘나’, 즉 주체입니다. 세 번째 종합의 생산물이죠.
생각이 좀 더 정리되었다면 아펙트(affect)라는 말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이 개념이 다듬어진 건 1978년 쯤으로 추정됩니다. 이 해에 “스피노자와 우리”라는 글을 발표하고, 또 앞에서 소개한 강의도 진행했으니까요(1월 24일). 문헌들을 보면 1970년까지 거슬러갈 수 있는데, 《안티 오이디푸스》의 이 대목과 연결시킬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내공들, 생성들, 이행들만을 체험하는 참으로 1차적인 감정에 비하면, 망상과 환각은 2차적이다.” 이 문장에 달린 각주를 보면, 비온(W. R. Bion) ‘나는 느낀다’의 중요성을 최초로 역설했지만, 여전히 환상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비온은 ‘나는 생각한다’를 지성적 영역에, ‘나는 느낀다’를 정감의 영역에 할당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들뢰즈·과타리는 망상과 환각조차 ‘나는 느낀다’에 기반한다고 봅니다. ‘내공, 생성, 이행’ 같은 용어로 지칭되었지요.
이제 이 순수 내공들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질문이 뒤따릅니다. “이것들은 밀쳐 냄과 끌어당김이라는 앞서의 두 힘에서, 이 두 힘의 대립에서 유래한다.” 밀쳐 냄과 끌어당김이라는 두 힘의 길항관계에서 유래한다는 겁니다. 이 대립은 중립적인 평형 상태를 이루고 있지 않고, 바닥 상태인 내공=0에서 출발해서 항상 플러스 값을 갖는다고 합니다. 칸트가 했던 얘기랑 똑같지요? 이 얘기가 뭐냐면, 아무 느낌도 없는 상태인 0이 기준점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아무리 사소한 변동 혹은 일지라도 플러스의 양으로 감지됩니다. 외적으로 발산되는 것이 아니고, 느낌이나 기분 형태로 안에서 계속 증폭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펙트가 더 적절하다고 보는 거예요. 그리고 끌어당김과 밀쳐 냄의 비율에 따라 값이 오르락 내리락합니다. 시간 축을 따라가면서, 단면도를 그려 보면, 위아래로 변동하는 운동이 있는 거예요.
용어는 조금 다르지만,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해석하면서 ‘위도’라는 말로도 표현합니다. 하나의 몸/물체를 경도와 위도로 구분됩니다. 경도는 다른 몸/물체들과의 관계이고, 위도는 그 관계 속에서 몸 안에서 일어나는 힘의 크기의 등락이에요. 외적인 게 아니라 내적인 거죠. 내공의 등락입니다. 경도와 위도는 들뢰즈가 단독 저술 및 《천 개의 고원》처럼 과타리와 쓴 저술에서, 그러니까 해설서나 주석서가 아닌 저술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원서 26쪽 맨 아래를 보고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내공들은 기관 없는 충만한 몸을 지칭하는 내공=0에서 출발해서 모두 플러스 값을 갖는다. 또한 내공들은 그들 간의 복잡한 관계에 따라 또 그들의 원인이 되는 끌어당김과 밀쳐 냄의 비율에 따라 상대적으로 그 값이 하강 하거나 상승한다. 요컨대 끌어당기는 힘〔引力〕과 밀쳐 내는 힘〔斥力〕의대립은 항상 플러스 값을 갖는 내공 요소들의 열린 계열을 생산하는데, […]” ‘열린 계열’은 계속 진행된다는 말입니다. 아까 그림에서 본 큰 화살표 방향으로 계속 이어져 나간다는 겁니다. “[…] 이 요소들은 한 체계의 최종적 평형상태 말고 한 주체가 경유하는 무수한 준(準)안정적 멈춤 상태들을 표현한다.” 이 준안정적 멈춤 상태라는 게 기관 없는 몸의 계기입니다. 준안정적인 까닭은, 멈췄다 시작했다를 계속 반복하면서 이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칸트를 예로 드는데, 앞에서 보았던 구절에 대한 언급입니다. 같은 구절을 《프란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에서도 인용합다.
그 다음입니다. “법원장 슈레버의 설에 따르면, 끌어당김과 밀쳐 냄은 기관 없는 몸을 잡다한 정도로 채우고 있는 강렬한 신경 상태들을 생산하며, […]” 물질과 우리 느낌이 만나는 곳이 신경 상태죠. “[…] 슈 버-주체는 이 상태들을 경유함으로써 영원회귀의 원(圓)에 따라 […]” ‘영원회귀의 원’은 생성의 반복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여자도 되고 어떤 다른 것들도 된다. 법원장의 벌거벗은 상반신에 있는 두 젖가슴은 망상이나 환각이 아니다.” 슈레버는 자신한테서 여성의 젖가슴을 느끼는 데, 그 느낌은 실제 여성의 젖가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서의 젖가슴이라는 겁니다. 다르게 어떻게 표현하기는 어렵네요. 어떤 느낌을 갖고 있다고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이어서 그게 ‘알’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 대목은 생략합니다.
역사의 이름들
사정이 이러므로, 분열자는 방금 얘기한 강렬한 물질적 느낌 또는 자연과 인간의 동일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 느낌에 대한 표현들은 세계사를 망라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잔다르크라고 느낀다, 나는 내가 아메리칸 인디언이라고 느낀다, 나는 내가 징기스칸이라고 느낀다, 등 느낌에 대한 설명이 따라 붙는 겁니다. 그 느낌들은, 1강 시작할 때 말한 것처럼, 가족 속의 엄마, 아빠, 나의 관계와는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역사와 우주와 부족과 민족을 망라합니다. 존재한 모든 일, 일어난 모든 일들이 느낌의 내용으로 번역됩니다.
첫 문장입니다. 그렇기에 “분열자를 현실에서 격리되고 삶에서 절단된 무기력한 자폐증 환자로 그려 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물어볼 수밖에 없겠지요. 원래 분열자는 그런 존재가 아니지요. 이어서 묻습니다. “더 나쁜 일인데, 어떻게 정신의학은 그를 임상적으로 이런 무기력자로 볼 수 있었으며, 죽어 버린 기관 없는 몸의 상태로 환원할 수 있었을까?” ‘죽어버린 기관 없는 몸’은 말 그대로 더 이상 죽지 못하는 겁니다. 죽음은 삶의 전제라고 했지요? 생산의 경과는 죽음을 자신의 일부로써 내포합니다. 계속 죽어야만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그래서 더 이상 죽지 못하는 상태, 그게 진짜 죽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게 그겁니다. 죽어버린 기관 없는 몸, 어떻게 그런 존재, 무기력한 자폐증 환자로 만들 수 있었는가. 그 다음에. “그는 정신이 물질과 접촉하여 물질의 모든 내공을 살고 그것을 소비하는 저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지 않았던가?” 더 나아가 경험의 내용을 엄마, 아빠, 나로 어떻게 축소할 수 있었는지 문제 삼습니다. 쭉 보면, 그 다음에 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 지금까지 말한 내용입니다.
다음 문단의 클로솝스키의 인용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었죠? 원서 28쪽 중간으로 가겠습니다. “갑작스레 이성을 잃어 낯선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될, 문헌학 교수 니체-자아는 없다. 상태들의 계열을 경유하는, “역사의 모든 이름이 나다……”라며 역사의 이름들을 이 상태들에 동일시하는, 니체-주체가 있다.” 이 상태들은 앞서 말한 ‘내공 상태들’이고 느낌들이죠. 이 느낌들은 각각 역사상의 이름에 대응합니다. 징기스칸의 느낌, 아메리칸 인디언의 느낌, 검둥이의 느낌 등. 느낌들이 이어지면 어떤 계열이 생겨나게 됩니다.
“주체는 자아가 그 중심을 저버린 원의 원주 위에서 자신을 펼친다. 중심에는 욕망의 기계가, 영원회귀의 독신 기계가 있다. 그 기계의 잔여 주체, 즉 니체-주체는 그 기계가 돌아가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독자가 니체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작품일 뿐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에서, 행복에 겨운 덤(볼룹타스)을 끌어낸다.” 이어지는 클로솝스키의 인용은 건너뛰고. “자신을 인물들과 동일시하지 말고, 역사의 이름들을 기관 없는 몸 위의 내공 지대들과 동일시하라. 그러면 그때마다 주체는 <이게 나다, 따라서 이게 나다!>라고 외친다.” 아까와 비슷한 표현이 한번 더 나온 겁니다. “분열자만큼 역사를 이용한 자는, 분열자가 하는 방식으로 이용한 자는 없었다. 그는 단번에 세계사를 소비한다. 우리는 분열자를 호모 나투라로 규정하면서 시작했는데, 결국 분열자는 호모 히스토리아(Homo historia)로구나.” 역사상의 인물들을 소비하기 때문에 호모 히스토리아라고 했습니다. 이게 분열자에 대한 두 번째 규정입니다. 분열자는 한편으로 인간과 자연의 동일성으로서의 호모 나투라, 다른 한편 자신의 느낌의 계열을 역사상의 인물들과 동일시하는 호모 히스토리아입니다.
이렇게 해서 굉장히 어려운 내용인 생산의 세 가지 종합을 정리했습니다. 다음 시간은 분량이 좀 많은데, 최대한 가볼 테니까 반드시 읽고 오기 바랍니다. 질문 없으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장 2, 3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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