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다룬 두 명의 위대한 철학자가 있다. 하나는 게오르크 W. F. 헤겔이고 다른 하나는 프리드리히 니체다. 전자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후자는 주인과 노예의 탈변증법을 주창했다. 주인과 노예의 주제는 대학생 때부터 관심사이기도 했다.
헤겔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주인은 명령하고 노예는 복종하는데, 막상 노예가 실무를 담당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 주인은 멍청해지고 노예가 주인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는 변증법을 이야기한다. 니체는 (역시 한 문장으로 하면) 본성상 주인은 지배하고 명령하는 자이고 노예는 복종하고 명령에 따르기만 하는 자이기 때문에, 헤겔이 말하는 역전은 일어날 수 없다. 당연히 나는 니체를 지지한다. 지배하고 명령한다는 것의 핵심에는 ‘일의 본질을 알고 있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니체에 따르면 명령을 내리면서 일의 본질을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회사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황을 보자. 여기에는 단지 일을 시킨다는 측면에 덧붙여 일의 성과를 평가(assess)한다는 뜻이 내포된다. 물론 현실에서는 무능한 상사도 있다. 하지만 상사의 상사임은 무능함이 있지 않다. 부하가 일을 더 잘하게 되는 일도 있지 않느냐고? 그렇긴 하지만 그건 상사가 일을 시켜서가 아니라 실력을 잘 쌓아서 그리 된 것이다. 요점은, 명령에는 그저 명령할 뿐 아니라 명령을 잘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이렇다. 인공지능에게 일을 잘 시키려면, 자신의 역량을 유지하거나 증진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 WALL-E(2008)에 나오는 장면처럼, 인간이 명령하지 않고 모든 걸 자동화한다면? 아마도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인공지능 세상을 상상하고 우려하는 한 가지 방식일 것이다. 손쉬운 해법은 항상 인간이 명령/결정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자동화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민주적 의사결정을 거쳐도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다. 다수가 자동화를 원할 수 있다. 결국 WALL-E의 상황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민주주의, 여론, 가치…)의 문제임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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