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철학 상식] 스피노자가 사용한 언어는? 사과나무 이야기의 진실은?

오늘은 스피노자와 관련된 몇 개의 에피소드를 익혀 보아요. 스피노자는 어떤 말을 사용했을까? 네덜란드 사람이니 당연히 네덜란드어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포르투갈어였다. “물론 스피노자 가족이 사용했던 말은 포르투갈어였다. 최소한 그 집안의 남자들은 문학적 언어인 에스파냐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히브리어로 기도했다.”(스티븐 내들러, 『스피노자.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 김호경 옮김, 텍스트, p. 116)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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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와 뭉크 – 고통을 살아낸 자리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기 때문에, 라든지 유독 많은 生의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라는 근거에 기대 해석해서는 안 되는 삶과 作品이 있다. 고통과 절망을 얘기하는 것들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기형도와 뭉크를 보자. 기형도의 「가는 비 온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과 함께, “「휴일」이란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인질극을 벌이다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던 지강헌이 시의 소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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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과타리가 말하는 a people은 ‘민중’이 아니라 ‘민족’이다

들뢰즈·과타리가 말하는 ‘un peuple / ein Volk / a people’은 결코 ‘민중(民衆)’이 아니다. 민중의 정의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통 피지배층을 이루는 노동자, 농민 등을 이르는 말’이라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라는 풀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197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그런 의미로 사용해왔던 건 분명하다. 민중이 이런 뜻이라면, 들뢰즈과타리는 민중을 말하지 않는다. 들뢰즈·과타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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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과 느낌의 차이 (움베르토 마투라나를 읽기 위한 자세)

보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관찰하는 것은 관찰자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진술이다. 관찰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느낌이다. 또한 느낌은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포함한다. 따라서 느낌은 바깥에서 시작할지라도 안에서 완성된다. 종의 진화 과정에서, 또 개인 체험의 역사 속에서, 느낌은 바깥과 안의 ‘짝짓기(coupling)’의 결과다. 몸 바깥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얼마간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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