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증 환자
2010.02.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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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내내 영화 채널만 켜놓고 지난 한 주가 지겨웠고, 강호동 아니면 유재석 뿐인 티브이도 재미 없고, 서울방송만 독점 중계하는 동계 올림픽도 관제 행사인 듯하여 시큰둥할제, 무엇보다 나보다 늦게 새배 드리고 곧바로 티브이를 켜고 누운 동생 내외가 밉살스러워 정초 아침부터 생각난 차에 선생님께 문안 인사나 드리러 나왔습니다. 그 흔한 제수거리 생선 낱마리조차 부치지 못했음에, 염치 불구하고 이러이 전자통신으로나 새배 올립니다.

술김이었고, 술김이라는 핑계로 거의 습관성으로 올린, 말도 안 되는 글 따위를 언제고 지워야지 하면서도 나깟놈 누가 봐서 욕할 것이며, 삿대질 좀 하면 어때하며 방기하다, 때가 되어 겨우 지우려 하면, 차마 지울 수도 없게 속내 환하게 들여다 보는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빤한 말씀으로 저를 헤아려 주시니 결국 해가 바뀌어도 이도저도 대꾸없이 수긍하는 도리밖에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병적임을 수반한 무의식적 작태들이 선생님껜 그저 하릴없는 자의 유희가 아닌, 분명한 병적 징후로 감지되었단 것인데, 저 아닌 또 다른 환자들이 진정한 철학자들에게 바랐던 것이 그런 정확한 판단과 진단 조치가 아니었을까요. 혹자는 갈수록 정신분석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강력히 주장하던데, 그럴 만한 이유가 사실 철학자 내부의 병폐에도 있었으니, 선생님처럼 빤하면서도 시원하게 저리 말씀하신다면, 가장 두려워 급작스레 정신분열을 초래하게 될 자는 정신분석가들 자신이겠지요. 오늘의 철학이 어찌 심리학과 제과학적 학문과 격을 둘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어떤 제학문에서 말해질 수 없는 저런 담담하면서도 격조 있고,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자신에게 냉정한 듯한 어조의 문법은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철학자의 철학이라고 하니, 그저 상담받고 의지하는 저와 같은 환자 입장으로서는 수긍하는 수밖에요. 스스로 치유해야겠지만, 바로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이므로, 지난 번처럼 과격하진 않더라도 간간이 찾아 뵙고 병에 관해 상담 여쭈겠습니다. 올해부터는 저번과는 달리 진료비 확실히 수납하겠습니다. 중이염에는 뭐가 좋은지 모르겠습니다만, 철따라 나는 갖가지 팔도의 좋은 식재료나 간간이 부칠 수 있었으면 바랍니다.

마음이 자주 아프다는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생각 많이 말라" 고 해놓고는, 실은 그 반대로 말해야지 않았을까 제가 더 많이 고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보기에 너는 아직 충분히 아프지 않은 것 같고, 아프더라도 견디고 더 많이 고민하다 보면 내성이라도 생기지 않겠냐고 하고 싶은데, 사실보다 더 문제시 되는 정감의 문제에 있어, 쉽지가 않죠. 그런데 철학자는 잘도 우회하여 그렇게, 기분 상하지 않고, 오히려 정감있게 말할 수가 있었군요. 철학자의 말씀은 언제 보아도 보기에 좋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더 좋은 말씀들 많이 생산해 주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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