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81
<이 도주는 무엇인가? 이 낱말은 즐겁기 위해서라면 잘못 선택되었다. 그렇지만 용기는 가짜 피난처에서 조용히 위선적으로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도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치들, 도덕들, 조국들, 종교들, 및 우리 자신의 허영과 자기만족이 우리에게 관대하게 부여하는 이 사적 확실성들은, 안정된 것들 가운데서 이처럼 끄떡없고 정지한 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이 마련해 준 그만큼의 기만적인 체류지들을 갖고 있다. 이들은 거대한 부동의 운동을 통해 각자와 무관하게 이들을 운반하는 항상 더 빨라지는 자신들의 걸음의 단조로운 웅성거림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채 가버리고 마는 저 거대한 패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도주 앞에서의 도주. 신비한 표류의 계시를 받아, 더 이상 체류 비슷한 가짜 속에서 살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우선 그는 자기 식으로 이 운동을 진행해보려고 시도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멀어지기를 바라리라. 그는 방외에서 산다. …… [하지만] 아마도 추락은, 더 이상 개인적 운명일 수 없고 모든 사람 속에 있는 각자의 숙명이다.>(블랑쇼, <우정>, 1971, pp. 232-233.) -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