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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 철학 서적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또한 꽤 많은 학생들 및 시민들을 상대로 철학 강의를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철학과 일상적 삶의 괴리였다. 무슨 말이냐 하면, 철학이 삶의 문젯거리들을 대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용어들은 지나치게 현실의 삶과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령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는 철학을 접하다 보면 상당히 초기에 만나게 되는 유명한 명제다. 또한 두 번째 <성찰>을 읽다 보면 이 명제가 얼마간은 상식적인 독해 속에서 이해가 가곤 한다. 허나, 철학 용어 중에 '생각'이라는 말은 없다. 아니, 나의 실존이 '생각하는 존재'로 규정되는데도 불구하고, 철학 개념 중에 '생각'이라는 게 없다니? 아마 이런 의문에 대해 철학을 조금 더 접한 사람은 아니 '사유'가 곧 '생각' 아니냐 하고 되물으리라. 그렇지만 '사유'는 '생각'과는 달리 우리 일상에서 떨어진, 뭔가 특별한 사람들의 행위인 것으로, 아니면 일상인에게라면 특별한 계기에나 찾아오는 그 무엇으로 느껴질 뿐, 우리가 늘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점을 가리는 독특한 '가리개 효과'를 낳는다. 철학 전문어(jargon)들은, 아마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그런 면모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이런 식으로 생각과 현실 삶을 분리시키곤 했다. 서양에서 수입한 전문어이건 옛 동양에서 유래한 전문어이건, 이런 전문어들은 철학을 삶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에 반해 서양어에서는 설사 철학 전문어일지라도 일상 용어와 그 겉모습에선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앞의 데카르트의 말을 영어 식으로 옮기자면, 'I think, therefore I am'이 되는데, 이 중 어느 것도 익숙한 말이 아닌 것이 없다. 나아가 나의 존재를 'thinking I'로 설명할 때도 내지는 'thought'로 설명할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thought를 '사유'라고 옮기느냐 '생각'이라고 옮기느냐 하는 문제는, 최소한 한국어에서는 큰 차이를 낳을뿐더러 중요한 엄폐 효과를 낳는다. 즉 '사유'는 '생각'을 가린다. 물론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를 쓰는 것이 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일지라도 그 말이 얼마나 깊은 생각을 담을 수 있는가, 얼마나 낯선 생각에 이르도록 자극하느냐 하는 따위의 문제는 별개의 노력과 어려움을 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독일 관념론의 일본어 번역 용어를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철학 용어는 지극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기존의 철학 용어를 사용해야 깊은 생각에 이르는 것도 아니며 일상어를 통해 그럴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최소한 이왕의 철학적 작업이 이룬 성취를 최대한 일상 용어로 표현할 때에만,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기만 하다면  일상어를 통해서도 철학적 성취의 열매를 나눠가질 수 있을 것 아닌가. 데카르트는 생각이라는 실체와 연장(펼쳐짐)이라는 실체, 그리고 신이라는 실체를 상정했다고 말하는 것은, 나아가 스피노자는 신이라는 유일 실체가 있고 생각과 연장은 그 속성에 불과하다고 데카르트를 비판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유'와 '연장'이라는 말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보다 우월하다. 철학 서적을 기왕에 굳어진 철학 전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어를 활용해서 접하거나 번역해야 한다는 말이 철학적 작업의 어려움을 폄하하겠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당연히 철학 개념에도 탄생과 역사가 있고 그것들은 길고 복잡하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꼭 그것들을 다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말아야 하리라. 또한, 최소한 한국의 철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일상어와 전문어 사이의 어긋남을 주목하지 않은다면, 전문어는 그저 암기해야 하는 말에 그치고 말 뿐, 그로부터 중요한 삶의 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생각이 펼쳐지기는 분명 어려우리라. 기껏해야 서양어로 생각하는 과정의 결과를 일부 한국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리라.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내가 한국이라는 경계에 집착하겠다는 것도, 서양어의 우수함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한국이나 서양어는 하나의 예일 뿐인 것이다.

 

내가 방금 든 '사유'와 '생각'의 관계에 해당하는 것은 우리네 철학 전문어에 너무도 많다. 그래서 철학 연구자마다 서로 다른 개념 내지 개념 번역을 해야 하게 되고, 서로의 생각의 결실을 공유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아, 철학적 협업, 나아가 학문적 협업이 어려워지게끔 하고 있다. 서로가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는 셈이므로. 당분간, 서구 철학 연구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지 않을까 여겨진다. 철학함은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철학과는 제도이기 때문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