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중이염을 앓고 있다. 병이라는 것이 앓고 있을 그 시기 동안은 무척이나 중요한 관심사요, 어쩌면 당시로서는 유일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시시각각 그 고통 또는 어떤 기분 나쁜 상태가 지속적으로 환기되어 다른 일에 도무지 관심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병이 나으면 씻은 듯이 그 기간의 기억은 희미해지거나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그렇기에 철학자들은 병의 존재에 대해 씻은 듯이 망각하여 건강한 상태에서의 의식의 활동에만 주목하면서 정신 현상을 서술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작은 상처에도 쉽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인간일진대 어찌 잊는 것이 쉽사리 허용될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식으로 의식 차원에서, 또는 기록 차원에서 쉽게 잊히는 것이리라. 아마 나도 곧 잊게 되리라...
의사가 환자의 고통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말은 다 거짓이다. 환자의 병에 공감하게 되면, 다시 말해 환자의 병을 함께(共) 느끼게(感) 되면 의사로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으리라. 차라리 환장의 병에 대해 가장 거리를 두고 냉담한 편이 낫다. 닥터 하우스처럼. 공감의 철학은 이렇게 힘을 잃게 된다. 중요한 것은 공감보다는 냉정함과 거리감이리라. 거리감을 상실하게 되면, 의사는 이내 환자와 함께 고통하는 데서 멈추고 말 것이다. 고통을 겪는 자(patient)로서의 의사, 아마도 이 앞에 있는 환자를 치료하기보다 우선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게 되리라. 이런 의미에서라면 자기 치유 말고는 도무지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아픔은 아팠던 기억보다는 아픔의 현재로 모든 아픔을 데려온다. 사실상 과거에 아팠던 경험이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 어찌어찌 하다가 나았지. 그런데 어떻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 아프다. 감각이 좁아지고,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자꾸만 주의가 흐트러진다. 쉬어라,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의식과 의도와 의지는 자꾸만 멀어진다. 적어도 인간에 대해 알려고 할 때, 인간의 현실태를 정확히 서술하고자 노력할 때, 이처럼 병에 대해, 또는 니체가 열거했듯이, 몸과 건강과 그 부류에 속하는 것들을 놓치게 되면 안 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자연스러웠던 것들은, 오직 비정상적인 상태 또는 병의 상태의 예외일 뿐이고, 그 예외를 통해 전모를 서술한 양 굴어서는 곤란하리라. 병을 잊지 말라, 무의식을 잊지 말라.
24시간 내내 영화 채널만 켜놓고 지난 한 주가 지겨웠고, 강호동 아니면 유재석 뿐인 티브이도 재미 없고, 서울방송만 독점 중계하는 동계 올림픽도 관제 행사인 듯하여 시큰둥할제, 무엇보다 나보다 늦게 새배 드리고 곧바로 티브이를 켜고 누운 동생 내외가 밉살스러워 정초 아침부터 생각난 차에 선생님께 문안 인사나 드리러 나왔습니다. 그 흔한 제수거리 생선 낱마리조차 부치지 못했음에, 염치 불구하고 이러이 전자통신으로나 새배 올립니다.
술김이었고, 술김이라는 핑계로 거의 습관성으로 올린, 말도 안 되는 글 따위를 언제고 지워야지 하면서도 나깟놈 누가 봐서 욕할 것이며, 삿대질 좀 하면 어때하며 방기하다, 때가 되어 겨우 지우려 하면, 차마 지울 수도 없게 속내 환하게 들여다 보는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빤한 말씀으로 저를 헤아려 주시니 결국 해가 바뀌어도 이도저도 대꾸없이 수긍하는 도리밖에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병적임을 수반한 무의식적 작태들이 선생님껜 그저 하릴없는 자의 유희가 아닌, 분명한 병적 징후로 감지되었단 것인데, 저 아닌 또 다른 환자들이 진정한 철학자들에게 바랐던 것이 그런 정확한 판단과 진단 조치가 아니었을까요. 혹자는 갈수록 정신분석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강력히 주장하던데, 그럴 만한 이유가 사실 철학자 내부의 병폐에도 있었으니, 선생님처럼 빤하면서도 시원하게 저리 말씀하신다면, 가장 두려워 급작스레 정신분열을 초래하게 될 자는 정신분석가들 자신이겠지요. 오늘의 철학이 어찌 심리학과 제과학적 학문과 격을 둘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어떤 제학문에서 말해질 수 없는 저런 담담하면서도 격조 있고,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자신에게 냉정한 듯한 어조의 문법은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철학자의 철학이라고 하니, 그저 상담받고 의지하는 저와 같은 환자 입장으로서는 수긍하는 수밖에요. 스스로 치유해야겠지만, 바로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이므로, 지난 번처럼 과격하진 않더라도 간간이 찾아 뵙고 병에 관해 상담 여쭈겠습니다. 올해부터는 저번과는 달리 진료비 확실히 수납하겠습니다. 중이염에는 뭐가 좋은지 모르겠습니다만, 철따라 나는 갖가지 팔도의 좋은 식재료나 간간이 부칠 수 있었으면 바랍니다.
마음이 자주 아프다는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생각 많이 말라" 고 해놓고는, 실은 그 반대로 말해야지 않았을까 제가 더 많이 고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보기에 너는 아직 충분히 아프지 않은 것 같고, 아프더라도 견디고 더 많이 고민하다 보면 내성이라도 생기지 않겠냐고 하고 싶은데, 사실보다 더 문제시 되는 정감의 문제에 있어, 쉽지가 않죠. 그런데 철학자는 잘도 우회하여 그렇게, 기분 상하지 않고, 오히려 정감있게 말할 수가 있었군요. 철학자의 말씀은 언제 보아도 보기에 좋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더 좋은 말씀들 많이 생산해 주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