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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 일본의 들뢰즈, 과타리 연구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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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들뢰즈·가타리 연구 동향 (상)

대학원신문 [242호]

승인 2007.09.11  02:18:42

이득재 / 대구효성카톨릭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사카이 다카시에 따르면 1980년대에 유행했던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은 현재의 일본에서는 마이너 중의 마이너에 해당하는 사상이다. 우리와는 정반대되는 경향이다. 물론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연구 폭은 대단히 넓다. 그렇다면 서양사상으로서의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은 그동안 일본에서 어떤 맥락에서 수용되어 왔을까.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에 교토학파에 속하는 일본의 미키 기요시는 <파스칼에 있어서 인간의 연구> 등의 저서를 통해 하이데거의 철학을 받아들인다. 또한 도쿄제국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와쓰지 데쓰로는 잡지 <사상>에 <풍토>를 연재해 주목을 받는다. 니시다 기타로의 제자인 미키 기요시와 와쓰지 데쓰로가 이렇듯 하이데거의 철학에 심취한 것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사카이 나오키가 ‘대(對)―형상화의 도식’이라고 불렀던 이항대립 속에서 일본의 근대/근대성을 고민하기 위한 것이었다. 니시다 기타로의 경우처럼 미키 기요시와 와쓰지 데쓰로는 인간 존재를 각각 ‘시간성’과 ‘관계’의 관점에서 파악해 스스로의 발화 위치를 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와쓰지 데쓰로는 스스로의 철학을 서양과 동일화했고, 미키 기요시는 서양 철학을 뚫고 나아가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가타리를 소개한 1987년 4월 27일자 <일본경제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일본인은 서양인을 흉내 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확실히 그러한 점이 있다. 거꾸로 봐도 또한 참이다.” 고모리 요이치가 호미 바바의 논의를 빌려 욕망의 모방에 대해 말했듯이, 일본은 철저하게 서양과 닮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사카이 나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양’은 단순히 세계 안에 나타나는 하나의 특수성일 뿐만 아니라 ‘일본’ 등의 특수성을 처음부터 성립시키는 편재성으로서의 보편성의 위치를 부여받고 있다. 즉 일본에서 철학의 결여는 ‘서양’과의 비교에서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편재화에 동반하여 ‘절대적인 결여’로서 지각된다. 그것은 ‘일본인’이 그와 같이 편재하는 ‘서양인’의 욕망을 내면화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일본에서 들뢰즈·가타리의 수용은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처럼 서양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본에서 들뢰즈·가타리를 수용하는 층은 사회사상, 철학, 미학, 사진, 정신의학 등으로 그 폭이 넓지만, 프랑스 유학파가 상당히 많다는 것도 앞의 인용문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증거가 된다.

 

들뢰즈 사상의 수용

 

들뢰즈를 일본에 제일 먼저 소개한 사람은 1936년생으로 영화비평가이자 동경대학교 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하스미 시게히코였다. 그러나 일본의 들뢰즈·가타리 수용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이는 우노 쿠니이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48년생으로서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직접 들뢰즈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들뢰즈·가타리의 <푸코>, <천의 고원>을 번역하기도 했다.

 

우노 쿠니이치는 1996년 <현대사상>이 마련한 ‘들뢰즈 특집’에 실린 <질 들뢰즈의 전장>이란 글에서 일본인으로서, 그리고 아시아인으로서 들뢰즈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서 “일본의 독자적인 사상이 어떻게 해서 형성되지 않는지 하는 감상이 여전히 생겨난다”고 토로한다. 우노 쿠니이치는 일본이 유럽과 거의 같은 사상권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묘하게도 그 바깥에 있다는 양의성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마루아먀 마사오가 말한 ‘차례차례 되가는 기운’이라는 말을 들뢰즈의 ‘생성변화’에, 일본 천황제를 들뢰즈의 ‘리좀’ 개념에 포개는 발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마루야마 마사오가 일본적인 사고에서 지적한 ‘되기’란 동일한 융합의 과정인데 반해, 들뢰즈의 되기는 고정화를 피하는 사고라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들뢰즈의 리좀 개념을 천황제에 포개는 발상은 참신하면서도 일본인의 의식이 리좀으로서의 천황제에 의해 엮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사카이 나오키의 말처럼 일본이 절대적인 결여를 극복하는 방식은 유럽도 일본도 아닌 제 3항을 발견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욕망을 생산하는 길이 아닐까.

 

한편 우노 쿠니이치는 초월론을 피하려는 들뢰즈의 사상이 불교와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하면서, 들뢰즈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철학과 우정’을 일본적인 ‘간(間)’이라는 관념에 연결시킨다. 들뢰즈는 그리스에서는 우정이라는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철학이 형성되고 실천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제관계라는 것이 존재하고, 학문적인 서열관계가 분명하며, 또한 그것이 동시에 권력으로 작동하는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동양에서는 들뢰즈의 표현대로라면 철학이 ‘사막’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노 쿠니이치가 언급한 것처럼 동양에는 극도로 세련된 내재성의 사고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재적인 동양’, ‘잠재적인 일본’ 같은 개념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더 고려해봐야 할 문제로 보인다. 우노 쿠니이치도 일본의 ‘간’이라는 관념이 중심을 피하고 강고한 계층적인 질서를 피하려는 미학임과 동시에 수직적인 사제관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들뢰즈의 <카프카>, <베르그송의 철학>, <프루스트와 기호>, <니체와 철학>이 번역되었고, 80년대에는 <푸코>, <앙티 오이디푸스>, <의미의 논리학>이 번역되었으며, 90년대에 <천의 고원>의 번역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가타리보다 들뢰즈 연구자가 더 많고, 들뢰즈를 실천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철학사가로 자리매김하는 경향을 보인다. 마츠모토 쥰이치로가 들뢰즈의 철학이 흄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의미의 논리학>이나 <차이와 반복>을 들뢰즈의 주저로 파악하는 것이 그 한 가지 예다.

 

들뢰즈와 정치

 

주지하다시피 <차이와 반복>이 나왔던 1969년은 들뢰즈의 철학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지점이다. 1969년 자넷 콜롬벨은 들뢰즈와의 인터뷰에서 들뢰즈의 헤겔변증법에 대한 부인, 맑스에 대한 언급의 부재 등에 대해 질문한다. 요컨대 들뢰즈 당신의 철학이 정치적 차원을 가질 수 있느냐, 또한 혁명적 실천에 공헌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들뢰즈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당시 “위험한 질문”이라고 짤막하게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이 말을 음미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자. “선(禪) 안에는 아주 유효한 것, 위험한 것이 많이 존재합니다. 사회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이러저러한 시대의 철학에는 이러한 심급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개체, 낭만주의 시대에는 인간, 그리고 현대에는 특이성이 있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심급들은 존재하고 역사 안에서 태어나며 스스로 사회관계에 의존합니다. 그러니까 혁명이란 이러저러한 심급들의 발전에 대응하는 이 관계들을 바꾸는 것입니다. 혁명의 현실적인 문제, 관료주의를 갖지 않는 하나의 혁명적인 문제란 새로운 사회관계의 문제인 것이죠.”  

 

 

일본의 들뢰즈·가타리 연구동향 (하)

대학원신문 [243호]

승인 2007.12.11  13:11:34

이득재 / 대구효성카톨릭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우노 쿠니이치와 하스미 시게히코 외에 초창기 들뢰즈·가타리 수용 세대에 속하는 사람으로 1933년생의 우나미 아키라가 있다. 우나미 아키라는 <프루스트와 기호>, <베르그송의 철학>을 번역했으며, <비평하는 기계> 등을 저술했다. 그는 영상미학과 알튀세르의 이론 및<존재와 언어>의 저자이자 소쉬르 연구의 대가인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의 언어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나미 아키라는 또 다른 저서 <말과 영상의 기호론>에서 마루야마 게이자부로를 소쉬르와 연결시키며 그의 관계론적인 언어철학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정작 마루야마 게이자부로가 <존재와 언어>에서 주장하는 ‘카오스모스’에 대한 언급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987년에 이즈쓰 도시히코가 쓴 논문 <카오스와 반코스모스>를 통해 그리스 시대 이후 사용되어 온 카오스/코스모스, 피시스/노모스라는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아사다 아키라는 1983년에 이미 <구조와 힘: 기호론을 넘어서>에서 피시스/노모스 개념을 독창적으로 원용하여 자기 논의를 전개시켰다. 1980년대에 있었던 일본의 이러한 논의는 가타리가 1992년에 <카오스모스>를 쓰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마루야마 게이자부로는 카오스모스를 신화와 언어 문제에 연결시켜 이야기하거나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뿐, 카오스모스를 사회·정치적인 차원으로 발전시킨 것은 가타리의 독창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가타리의 수용

 

     
     
 

앞서 언급한 우노 쿠니이치가 주로 들뢰즈를 소개했다면, 코가와 테츠오와 스기무라 마사히코는 우노 쿠니이치와 더불어 초창기 들뢰즈·가타리 수용 세대에 속하면서도 들뢰즈보다는 가타리를 소개했다. 1941년생으로 미디어를 전공하는 코가와 테츠오는 현상학적 맑스주의에 경도되어 있던 <주체의 전환>(1978)을 거쳐 1980년에 가타리를 접한 이후로는 가타리의 사상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타리는 1970년대 후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하다가 가타리가 1980년 10월 일본을 방문하고, 아사다 아키라가 <구조와 힘: 기호론을 넘어서>를 내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에피스테메>의 별책인 <리좀>이 번역되었고, 아사다 아키라에 의해 <카프카 - 소수문학을 위하여>가 소개되었으며, 1984년에는 <현대사상>이 들뢰즈·가타리 특집을 꾸미기도 했다. <앙티 오이디푸스>는 일부만 소개되다가 1986년에 정식 출간되었다. 코가와 테츠오는 1980년대 들어 한 편으로 <전자인간의 미래>, <미디어의 감옥> 등의 작업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스기무라 마사아키와 함께 가타리와의 대담집인 <정치에서 기호까지>를 소개했다. 당시 3주간에 걸친 가타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분자혁명, 스키조분석, 자유라디오운동 등의 개념이 <일본독서신문> 등에 소개되었다.

 

코가와 테츠오보다 몇 살 어린 스기무라 마사아키는 가타리가 정신요법을 실천한 프랑스 라보르도 병원을 찾는 등, 코가와 테츠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가타리를 일본에 소개했다. 그는 1988년에 <분자혁명>을, 1991년에 <세 개의 생태학>을 번역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국내의 윤수종 교수가 스기무라 마사아키를 몇 번씩 찾아가 사상의 편력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스기무라 마사아키의 2005년도 저서 <분열공생론>에 나와 있다. 또한 그는 <미래로의 귀환>, <제국>을 번역하면서 가타리가 1970년대에 제시한 ‘통합된 세계자본주의’ 개념이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개념에 미친 영향을 강조했다. 사카이 타카시는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이 일본에서 마이너 중의 마이너라고 말한 바 있는데, 스기무라 마사아키에 따르면 가타리는 늘 마이너이면서 행동은 미크로하게 했던 행동주의자였다. 1981년 5월 가타리는 일본의 어느 심포지엄에 패널로 초청받았는데, 스기무라 마사아키에게 “권위주의적인 국가의 존재를 긍정하는 집회였기 때문에 도중에 패널 역할을 접었다”고 얘기한 일화가 있다. 가타리는 네그리와 <새로운 결합의 선들>이라는 책을 공저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에는 브라질로 날아가 당시 브라질 사민당의 강령 초안을 작성하는데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가타리의 미크로한 행동 영역은 스기무라 마사아키가 2001년에 편역한 <횡단성으로부터 카오스모스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흠 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가타리는 통합된 세계자본주의를 비판했으면서도 일본 대기업이 주최한 심포지엄에 초대되어 몇 번씩이나 기념 강연을 했고, 프랑스 자유라디오운동에서 손을 떼고 미테랑 정권에 전념한 이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타리가 1985년에 아사다 아키라의 주선으로 <포스트 미디어시대에 대한 전망>이라는 심포지엄에 초대되어 제시한 ‘포스트매스미디어적인 미디어’ 같은 개념은 인간의 의식과 신체를 미분적으로 분할 통치하는 현대세계를 인식하는데 매우 적합한 것이었다. 스기무라 마사아키는 그 개념을 프랑스의 자유라디오운동보다는 일본의 미니FM 자유라디오에 더 적합한 것이라 파악했다. 심포지엄이 끝난 후 가타리는 아사다 아키라 등과 함께 일본의 자유라디오국을 방문하여 방송을 하기도 했다. 가타리의 이 당시 활동은 <동경극장 - 가타리, 동경에 가다>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이론의 실천적 수용을 위하여

 

일본의 들뢰즈·가타리 수용사에서 중요한 것은 들뢰즈·가타리의 수용이 <주체의 전환> 이후 이론주의로 경도됨으로써, 욕망을 생산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1980년대 이후로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이 점차 인기를 끌었지만 그들의 사상을 단지 서양의 사상으로, 자신들의 욕망의 결여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론가들 이후 카야노 토시히토, 마츠모토 쥰이치로우 등 30대의 젊은 이론가들이 ‘지각불가능한 집단성의 차원’을 고민하며 들뢰즈·가타리를 실천적으로 읽기 위한 이론작업을 하고 있지만, 코가와 테츠오가 1970년대에 고도자본주의사회에 대해 행했던 실천적인 고민, 더 거슬러 올라가 미키 기요시의 자본주의와 계급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98년 <존재론적, 우편적>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일본의 데리다주의자이자 가라타니 고진의 <유머로서의 유물론>의 해설을 맡았던 아즈마 히로키 또한 들뢰즈·가타리 사상의 정치성과 무관하게 이론적인 작업만 하고 있다. 스기무라 마사아키 이후의 젊은 이론가들은 가타리보다는 서양 철학자들의 계보 차원에서 구체적인 실천과 유리된 채 주로 들뢰즈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들뢰즈·가타리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 가라타니 고진이 1990년대에 ‘NAM’ 운동 같은 실천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서양에 대한 욕망 충족을 통해 일본의 사상이 자기 발화의 위치를 찾고,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고민함으로써 욕망생산의 단계에 도달할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스즈키 이즈미의 2002년도 작업처럼 들뢰즈 사상의 초기 생성 과정을 탐구하고, 들뢰즈의 <무인도>, <광인의 두 체제> 등 서양사상을 이 잡듯이 철저하게 수용하는 일본 지식인의 태도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비록 들뢰즈·가타리의 연구자가 극소수이고 연구 범위가 제한적이며 수용 시기 또한 일본에 비해 20년 정도 늦지만, 이제는 우리도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좀 더 제대로 번역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들의 사상을 지금/여기의 현실에 원용함으로써 간접화법이 아니라 나의 발화 위치에서 서양 사상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이다. 우노 쿠니이치가 일본의 독자적인 사상의 형성에 대해 의문부호를 찍었던 것을 우리 현실에 적용시켜보면, 들뢰즈·가타리마저 80년대의 루카치처럼 수용되어서는 서양사상을 뚫고 나아가기 어렵다는 뜻일 터이다. 특히 제국의 침투와 더불어 신자유주의적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는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은 가타리의 실천적인 고민을 더욱 요구하고 있다.

 

 

* 둘째 글에 언급된 '이즈미 스즈키' 교수 방한 강연 기사

http://m.asiae.co.kr/view.htm?no=2016021709384481701#cb

 

전남대 ‘횡단형 철학’사업단, 23일 해외석학 초청 강연

 

최종수정 2016.02.17 09:41기사입력 2016.02.17 09:41노해섭 전국팀

 

“비인간주의 철학은 가능한가?”
 

[아시아경제 노해섭 기자] 반인간주의와 차별되는 ‘비인간주의’철학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학술적 접근이 시도되어 관심을 끈다.

전남대학교 철학과 BK21플러스 횡단형 철학전문인력양성 사업단(단장 노양진 ·철학과 교수)은 오는 23일 오후 4시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 106호 이을호강의실에서 해외석학초청 강연회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일본 도쿄대학교 철학과 스즈키 이즈미 교수가 강사로 나서 ‘비인간주의 철학: 들뢰즈와 리토르넬로’를 주제로 강연한다.

 

스즈키 교수는 이 강연에서 들뢰즈(Gilles Deleuze / 프랑스의 철학자)의 비인간주의 철학 가능성을 반인간주의 철학과의 대조를 통해 드러내줄 예정이다. 

“비인간주의 철학은 인간에 대한 편견 혹은 선입견을 제 점검함으로써 인간의 개념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다른 것과의 구분을 거부하거나 초월적인 것을 제시하는 반인간주의와 뚜렷하게 차별화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스즈키 교수는 파리10대학과 파리4대학 펠로우십을 거쳐 2006년부터 일본 도쿄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주로 서양철학 및 프랑스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노해섭 기자 no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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