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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자본주의와 분열증 들뢰즈와 푸코의 우정과 결별의 여정

데리다 2005.09.12 00:10 조회 수 : 3801 추천:36

예전에 박정자 교수가 '한국논단'에 쓴 글입니다. 앙리레비,푸코의 저서를 번역한 사람인데 남편이 조선일보 사람이란 것으로 압니다. 들뢰즈는 앙리레비를 '사유의 타락'이라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읽어보면 그는 니체의 권력개념과 푸코의 권력관계, 들뢰즈의 욕망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고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더군요. 알튀세에게서 배운 그가 요즘 술탄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면 사람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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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자살
요즘 우리 나라에도 그 번역이 대 여섯 권이 나와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 철학자 질 들뢰즈가 지난 11월초 자기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충동적으로 죽음을 생각할 사춘기의 청소년도 아닌 70노인이, 그것도 이미 탄탄한 업적과 명성을 가진 세계적인 노철학자가 투신자살이라는 극적 죽음을 택했다는 것은 세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프랑스는 우리와 달리 작가나 지식인의 사생활이 엄격히 지켜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아직 그의 자살동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68년 5월혁명 정신의 이념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앙띠 오이디푸스>의 공동 저자(펠릭스 가타리와 함께)라는 점에서 희미하게나마 그의 자살동기를 점쳐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동년배 철학자인 알뛰세르와 푸코가 이미 68년 이전에 참신한 저서들로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었던데 반해 들뢰즈는 72년에 <앙띠 오이디푸스>로 비로소 새로운 참여적 지식인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앞의 두 사람이 68년 5월 세대의 정신을 형성한 철학자들이라면 들뢰즈는 5월 세대의 이념을 사후 정리한 철학자라 할 수 있다. 이 세 사람의 죽음은 각기 너무나 독특하다. 세 사람 중 제일 먼저 죽은 것은 푸코였다. 동성연애자였던 그는 1984년에 에이즈로 죽었다.


알뛰세르는 1990년에 죽었으나 이미 10년전 고등사범 구내 학교관사에서 자기 아내를 목졸라 죽인 후 10년째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들뢰즈가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세 사람 중에서 특히 들뢰즈와 푸코, 두 세기적 지성의 우정과 결별에는 현대 프랑스 지성사의 굴곡과 주름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니체에 대한 공동 관심 속에서 60년대초부터 맺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서로 상대방이 책을 낼 때마다 그 책을 칭찬하는 기고문들을 교환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들뢰즈의 위대성을 보장하기라도 하는 듯 요즘 자주 인용되고 있는 푸코의 말, "언젠가 아마도 금세기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다."라는 경구도 상대방의 찬사에 찬사로 화답하면서 칭찬의 에스컬레이터를 벌였던 시기의 한 과장적 표현일 뿐이다. 두 사람은 70년대초의 열렬한 사회운동을 통해 더욱 가까워졌다. 71년에 푸코가 죄수들의 인권운동 단체인 '감옥정보그룹'을 결성했을 때 제일 먼저 가입했던 사람도 들뢰즈였다. 이후 그는 푸코가 조직한 여러 진상조사위원회에 빠짐없이 참여하여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72년 아르크지에 실린 두 사람의 대담은 사르트르의 '총체적 지식인'에 맞서 '전문적 지식인'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지식인의 현실 참여를 새롭게 정의했다.


여기서 푸코는 "모든 강제와 통제를 분쇄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운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고, 들뢰즈는 "모든 부분적인 방어와 공격은 노동계급의 투쟁과 합류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1975년 이후 앙드레 글뤽스만, 앙리-레비 등 극좌파 성향의 5월세대들이 소위 신철학파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보수화 경향을 띄게 되자 두 사람의 관계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변화된 정치적 풍경 속에서 두 사람 모두 전에 아르크지의 대담에서 말했던 용어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푸코의 정치적 선택이 달라진 반면 들뢰즈는 여전히 마르크시스트로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의 견해가 크게 갈린 것은 프랑스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독일인 변호사 클로스 크르와상 사건과 신철학파에 대한 평가에서였다. 독일의 극렬한 좌익 운동가 바더의 변호를 맡았던 크르와상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프랑스에서 강제 추방되어 독일에 인도되려 하자 푸코는 피고인의 권리옹호와 범인 인도 거부라는 법률적인 투쟁만을 벌인 반면 들뢰즈는 테러리스트인 바더를 지지하며 근본적으로 서독을 경찰 독재 국가로 규정하는 성명서에 서명했다.


푸코가 들뢰즈에게 반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신철학파에 대한 평가에 이르러 두 사람의 반목은 결정적인 결별로 치달았다. 과격 마오이스트였던 글뤽스만이 사상적으로 급선회하여 1974년에 반 마르크시즘의 저서 <사상의 거장들>을 출간했을 때, 푸코가 즉각 이를 지지하고 나선 것과는 달리 들뢰즈는 'TV에 출연하기만 좋아하는 연예인 철학자'라는 독설로 글뤽스만 진영의 젊은 철학자들을 비판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 이후 두 사람은 죽는 날까지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푸코의 장례식에 들뢰즈가 조사를 읽음으로써 비로소 둘 사이에 사후 화해가 이루어진 셈이다.


68년 5월 이후 광풍처럼 몰아쳤던 사회변혁 운동의 열기가 70년대 중반부터 갑자기 사그라들어 정반대 이념의 시기로 급선회함에 따라 이때까지 열정적으로 투쟁에 참여했던 모든 좌파운동가들이 심한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93년에 디디에 에리봉과의 회견 중 자신의 저서 <천(千)개의 고원>을 언급하는 행간에서 우리는 들뢰즈의 쓸쓸함을 엿볼 수 있다. 80년에 출간된 이 책이 자신의 저서중 가장 잘된 책인데,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미미한 것은 아마도 책이 너무 두껍기 때문이라고 말한 후, 이어서 "게다가 이제는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는 날까지 충실한 마르크시스트로 남아 있었다. 마르크스가 오류를 범했다거나, 이제 마르크스는 죽었다는 말을 자신은 이해할 수 없으며, 현대 사회에서 마르크시즘은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역시 좌절감에 빠져있는 한국의 좌파 성향 독자들은 이 말에서 크게 위안을 받을 듯하다. 들뢰즈가 최근에 와서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93년의 회견에서 들뢰즈는 80년대와 90년대를 긴 사막의 시대로 규정하고, 더 이상 글을 쓸 의욕도 없으나,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의 위대함>을 써낸 후 절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년 후에 그는 약속했던 <마르크스의 위대함>은 쓰지 않은 채 투신자살의 방법을 택했다. "이제는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다."라는 쓸쓸한 어조에서 그의 죽음의 단서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서툰 탐정의 추리일까? (朴貞子)


한국논단 199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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