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blogin.com/blog/main.php?datX=00664945&keyZ=uvHG8g==원래 친구의 부탁으로 들뢰즈에 관련된 글을 올릴려고 했는데, 마침 권혜원 학형의 글이 있더군요.
글이 난삽하고 역어투가 심해서 읽기 어렵습니다. 또한 들뢰즈를 어느정도 알지 못하면 읽기가 참으로 난감하지요. 설명도 별로 없습니다. 즉 친절한 글은 아닙니다. 또한 일반인을 위한 글도 아닙니다. 그래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것은 이정도 글의 수준이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염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권혜원학형의 이해가 들뢰즈의 입장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상당히 왜곡된 점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개념에 대해서는 확실히 뛰어난 점이 있습니다. 정확한 이해의 지점은 우노 교수의 글을 차후에 소개하는 것으로 하지요.
하지만 이진경씨의 '노마디즘'이나 이정우씨의 '시뮬라크르의 시대'와 같이 종잡을 수 없는 책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이 공부한 바로는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입니다. 진중권씨나 김재인, 이진경, 이종영, 이정우씨의 수준은 일단 넘어섭니다. 일본의 우노 쿠이니치 교수정도는 되기 힘들겠지만, 이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상당한 노력의 대가라고 봅니다. 물론 비철학도의 한계도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점이라고 할까요. 그건 아마 들뢰즈를 도구로 사용하는 학자적 관점에 따른 것이라 봅니다.
전반적으로 서울사회과학연구소와 연구공간 너머 출신들의 한계가 이 글에서도 보입니다. 들뢰즈나 가타리는 결국 그들에게 하나의 도구입니다.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사회를 인식하는데 편한 도구이지요. 그런 이해도를 가지고 글을 쓰면 쓴 글이 명민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탕이 되기 쉽습니다. 결국 깊은 연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요. 그런 것을 바라는 것 조차 무리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냥 잘써먹을 수 있는 도구가 가장 좋은 것이지요. 잘써먹을 수 있는 도구란 적대적 관계자들이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신비한 칼날과 그럴듯한 부풀어 오르는 꿈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소피스테스 쯤 이라고 할까요. 들뢰즈라는 존재론자가 자본주의 적대의 상징처럼 꾸며지기 시작한 것도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업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공자들도 난해하게 여기는 개념을 무리없이 아무 곳나 적용하는 것을 볼 때, 이미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지점이라 봅니다. 이것이 한국적 상황이겠지요.
권혜원학형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과정중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다가 도미, 지금 모대학 박사과정으로 있습니다.
서울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번역한 '천의 고원'의 사실상 실제 번역자입니다. 예전에 서사연에 있을때, 같이 연구한 분야가 안티-오이디푸스와 천의 고원이었지요. 글을 보니 예전 일들이 주마등같이 떠오르는 군요.
그럼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의 내용상 미주는 삭제했습니다.
(내용은 링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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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웹에서 발견한 글인데 김재인, 이진경, 이정우을 넘어선 권혜원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글이 난삽하고 역어투가 심해서 읽기 어렵습니다. 또한 들뢰즈를 어느정도 알지 못하면 읽기가 참으로 난감하지요. 설명도 별로 없습니다. 즉 친절한 글은 아닙니다. 또한 일반인을 위한 글도 아닙니다. 그래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것은 이정도 글의 수준이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염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권혜원학형의 이해가 들뢰즈의 입장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상당히 왜곡된 점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몇몇 개념에 대해서는 확실히 뛰어난 점이 있습니다. 정확한 이해의 지점은 우노 교수의 글을 차후에 소개하는 것으로 하지요.
하지만 이진경씨의 '노마디즘'이나 이정우씨의 '시뮬라크르의 시대'와 같이 종잡을 수 없는 책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이 공부한 바로는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입니다. 진중권씨나 김재인, 이진경, 이종영, 이정우씨의 수준은 일단 넘어섭니다. 일본의 우노 쿠이니치 교수정도는 되기 힘들겠지만, 이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상당한 노력의 대가라고 봅니다. 물론 비철학도의 한계도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점이라고 할까요. 그건 아마 들뢰즈를 도구로 사용하는 학자적 관점에 따른 것이라 봅니다.
전반적으로 서울사회과학연구소와 연구공간 너머 출신들의 한계가 이 글에서도 보입니다. 들뢰즈나 가타리는 결국 그들에게 하나의 도구입니다.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사회를 인식하는데 편한 도구이지요. 그런 이해도를 가지고 글을 쓰면 쓴 글이 명민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탕이 되기 쉽습니다. 결국 깊은 연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요. 그런 것을 바라는 것 조차 무리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냥 잘써먹을 수 있는 도구가 가장 좋은 것이지요. 잘써먹을 수 있는 도구란 적대적 관계자들이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신비한 칼날과 그럴듯한 부풀어 오르는 꿈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소피스테스 쯤 이라고 할까요. 들뢰즈라는 존재론자가 자본주의 적대의 상징처럼 꾸며지기 시작한 것도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업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전공자들도 난해하게 여기는 개념을 무리없이 아무 곳나 적용하는 것을 볼 때, 이미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지점이라 봅니다. 이것이 한국적 상황이겠지요.
권혜원학형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과정중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다가 도미, 지금 모대학 박사과정으로 있습니다.
서울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번역한 '천의 고원'의 사실상 실제 번역자입니다. 예전에 서사연에 있을때, 같이 연구한 분야가 안티-오이디푸스와 천의 고원이었지요. 글을 보니 예전 일들이 주마등같이 떠오르는 군요.
그럼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의 내용상 미주는 삭제했습니다.
(내용은 링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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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웹에서 발견한 글인데 김재인, 이진경, 이정우을 넘어선 권혜원이 누군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