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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427836* 최근에 알라딘에서 우연히 발견한 글입니다. 동의할 수 있는 대목과 없는 대목이 섞인 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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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책읽기 > 오역을 말하다: <천개의 고원>의 경우  
2004-03-08 19:17

<천개의 고원>(새물결) 3장을 읽기 전에 내가 읽은 건 4장의 1절이다(147-167쪽). ‘화용론적 전회’라고 할 만한 새로운 언어철학을 들뢰즈/가타리는 제시하고 있는데, <분자혁명>(푸른숲)이나 <기계적 무의식>(푸른숲)에서 반복적으로 이 주제가 다루어지는 걸로 미루어 여기엔 가타리의 몫이 더 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이 부분이 들뢰즈/가타리와 관련하여 나의 일차적인 관심사항이다.

<천개의 고원>은 분명 공들인 번역이다. 나는 거기에 대해선 이의를 달지 않겠다. 하지만, 유려하거나 세심한 번역은 아니다. 나는 새물결판과 함께 수유연구실판도 같이 읽었는데, 전자가 후자보다는 더 가독성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다른 자리에서 지적했듯이, ‘화용론’을 ‘화행론’으로, ‘의미작용’을 ‘기표작용’으로 번역한 것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수유연구실판은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그런 걸 제외하면, 내가 읽은 범위 내에서 수유연구실판보다 더 나은 번역이다.

가령, 수유판에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 ‘샤를뤼스’를 ‘카를루스’로, 연속살인범의 닉네임인 ‘샘의 아들’을 무슨 영화나 소설의 작품명으로 옮겨놓았다(85쪽). ‘끔찍스런 능력’(수유, 80쪽)이란 말보다는 ‘가공할 만한 능력’(새물결, 148쪽)이 더 적절하다. 그리고 수유판에서는 ‘간접화법’을 무리하게 전부 ‘간접적 담론’이라고 옮겼다. 물론, 예외는 있다. 나는 ‘작은 사형선고(sentence de mort)가 있다’(새물결, 149쪽)보다는 ‘어느 정도는 사형선고가... 있다’(수유, 81쪽)가, ‘집단적 배치’(새물결)보다는 ‘집합적 배치’(수유)가 더 적합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리스도’는 왜 ‘크리스트’(158쪽)라고 옮기는가?

먼저, 두 번역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오역. 영어의 shifter를 모두 ‘연동소’(수유, 83쪽/새물결, 153쪽)라고 한 건, 불한사전에 그렇게 돼 있는지는 몰라도, 적절하지 않다. 언어학 용어로서 ‘전환사’라고 옮겨져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 subject란 말은 철학에서는 ‘주체’이지만, 언어학에서는 ‘주어’를 뜻하는 단어이다. 영어나 불어에서는 통일해서 쓰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이걸 우리말로 번역할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이 4장에서는 언어학적 문맥에서 쓰이고 있기 때문에 항상 subject에는 ‘주체’란 뜻 외에도 ‘주어’라는 뉘앙스가 들어가고, 또 명백하게 ‘주어’로 옮겨져야 하는 대목도 있다. 참고로, 이진경은 <노마디즘1>(휴머니스트)에서 ‘주체(주어)’ 혹은 ‘주어(주체)’로 표기하고 있다(266-7쪽).

예컨대, “이런 것들은 주체화의 과정 또는 주체의 소환을 랑그 속에 배분한다. 이것들이 랑그에 의존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소리이다.”(154쪽)에서 ‘주체의 소환’은 ‘주어의 할당’의 오역이다(수유, 84쪽도 마찬가지이다). ‘주체-주어’의 혼용이 혼동의 여지가 있다면, 적어도 ‘주체(주어)의 할당’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맛수미(Massumi)의 영역본에서 이 대목은 “which, far from depending on subjectification proceedings or assignations of subjects in language, in fact determine their distribution.”(78쪽)이다. 새물결판은 끊어서 번역했는데, 이 문장의 전체주어는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 등이다. 해서 다시 옮기면, “[이 배치 등은] 언어(랑그) 속에서의 주체화(주어화) 과정이나 주체(주어)의 할당에 의존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사실상 그들의 배분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이 [배치 등]이다.”

언어학적 문맥을 간과해서 나온 코믹한 오역이 그 다음에 이어진다. “각 랑그에서 주체 형태소들의 역할과 몫을 측정하는 이런 ‘행위-언표’ 배치물을 설명하는 데 있어 의사소통이 정보보다 더 좋은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상호 주관성이 의미생성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같은 쪽) 여기서 ‘주체 형태소들’라고 옮긴 것은 영어로는 subject morphemes이다. 즉 ‘주어 형태소’이다(이걸 수유판에선 한술 더 떠서 ‘주관적 형태소’라고 옮겼다. 그럼 객관적 형태소도 있나?). 그리고 ‘역할과 몫’(역할과 몫은 뭐가 다른가?)이라고 한 건 수유판을 따라서 ‘역할과 범위’(role and range)라고 해야 하고, ‘측정하는’이라고 한 건 ‘한정하는’(delimit)으로 고쳐야 한다. 역자가 이 대목의 문맥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한 대목만 더 들겠다: “물론 우리는 집단적 배치물을 정의해 볼 수는 있다. 행위와 언표의 잉여복합체라고, 또 이 복합체는 필연적으로 집단적 배치물을 얻어낸다고 말이다.”(157쪽) 이 대목의 수유판 번역: “물론 우리는 집합적 배치를 행위와 언표의 잉여적 복합체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 언표는 필연적으로 행위를 완성한다.”(85쪽)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관계대명사의 선행사를 각기 다르게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맛수미의 영역: “We can no doubt define the collective assemblage as the redundant complex of the act and the statement that necessarily accomplishes it.”(80쪽) 불어나 영어나 비슷할 텐데, 새물결판은 관계사 that의 선행사를 complex로 봤고, 수유판은 statement로 봤다. 또 그에 따른 목적어 it을 새물결판은 collective assemblage로 수유판은 act로 봤다. 어느 쪽이 타당한가? 당신은 어느 쪽에 판돈을 걸겠는가?

내가 영문법에 조예가 있는 건 아니지만, that의 선행사는 당연히 statement이다. 만약에 다른 걸 받으려면, statement 다음에 쉼표(,)라도 붙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정의의 문형은 “A를 B로 정의한다”인데, 지저분하게 뒤에 뭐가 붙는다는 건 문장의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문맥상으로도 들뢰즈/가타리가 앞에서 강조한 것이 모든 언표가 행위-담지적이라는 점이었으므로, 그런 내용을 고려한다면, 수유판의 번역이 타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단, 나라면 ‘완성하다’는 ‘실행하다’로 옮기겠다. 해서 다시 옮기면, “물론 우리는 집합적 배치라는 것을 행위와 반드시 그를 실행하는 언표와의 잉여적인 복합체라고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다.” 혹시 의견이 다르신 분은 반박해 주시기 바란다...

덧붙임: 앞의 문장에서 왜 행위와 언표의 '복합체'가 아니라 '잉여적인 복합체'일까? 그건 언표 또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거기엔 중복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잉여적'이란 말은 '(불필요한) 중복'이란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대목의 새물결판 번역은 그런 의미 또한 설명할 수 없기에 확실한 오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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