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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자본주의와 분열증 지조에 관하여

김재인 2001.07.21 14:12 조회 수 : 10648 추천:27

결국 문제는 지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깡패들의 '의리'와는 다른 그 무엇.
가령 깡패들의 의리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기에 나쁘다.
그런 것은 '친구'도 '우정'도 아니다.
저열한 패거리주의일 뿐.
지조 또는 '의'는 우선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진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승적인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어야 한다.
단지 위험하다는 이유로 피해가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조선일보 같은 신문의 행태가 깡패의 저열한 패거리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요 며칠 특집으로 실린 '위기의 지식인 사회'라는 특집은 정말 가관이다.
우선 기사 전문을 보자.

원문 위치: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107/200107170199.html

07/17(화) 19:31
[위기의 지식인사회] “同志아니면 적” 극단적 편가르기
정권과 거리에 따라 대립-갈등 본격화…일류는 부정-타도대상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작년 4·13 총선 후 지역주의의 폐해를 지적한 신문 기고 덕분에 졸지에 “정치권에 줄을 대 콩고물을 뜯어먹으려한다’는 비난을 뒤집어썼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인물과 사상’에 올린 글에서였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학계에서는 매우 진보적 성향의 학자로 통하지만 강교수로부터 “극우헤게모니를 강화한다”는 낙인과 함께 “큰 일 낼 사람”이란 인신공격까지 받았다. ‘진보학자이서도 조선일보에 기고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H대 L교수는 최근 시국에 관한 신문 기고를 한 후, 험악한 전화공세에 시달렸다. 상대는 “야, 이XX야, 돈 얼마나 받아먹고 그런 글을 썼느냐”고 소리를 질러댔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점잖게 타일러봤지만, 욕설만 하고 끊어버렸다. “집이 어딘 줄 아니까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까지 날아왔다.

작가 이문열씨의 신문기고에 대해 정치인이 “곡학아세한다”고 비아냥거리고 “가당찮은 X”이라는 상욕까지 서슴지않는 요즈음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 작가지만, 그에겐 ‘아마추어 파파로치’, ‘막가파 개그’라는 원색적 비난에 “너같은 X는 문인 축에도 못낀다”는 욕설이 쏟아진다.

한국의 지식사회가 위기에 빠졌다. 이념과 정치적 입장에 따른 양극화는 ‘예스’ 아니면 ‘노’, 동지 아니면 적의 양자택일만 강요할 뿐이다. 정치가 지식인들을 피아로 분류하기 시작하며 공방을 벌이면서 지식인은 설 땅이 없어져간다. 대중주의의 기승에 일류들은 좌절한다. 전상인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지식인 사회의 진영 대립은 좌·우익이 치열하게 맞섰던 광복 직후를 방불케 한다”고 지적한다. 이념 갈등에 덧붙여, 정권과의 거리에 따른 편가르기도 부각된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YS정부 때부터 지식인의 정치 참여가 정당화되면서, 정권창출에 참여한 지식인과 배제된 지식인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DJ정권이 출범하면서 한층 심화됐다”고 진단한다.

지금 한국 지식사회를 위협하는 적들은 양극화 폭력화 천박화 폐쇄화 등 네 가지로 압축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주류를 부정하거나 타도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분위기도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IMF위기를 겪으면서 ‘그동안 사회를 이끌어온 일류들은 무엇을 했느냐’며 그들에 대한 책임추궁과 부정이 강해진 것 같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현 정권 초 불어닥친 ‘신지식인론’은 실용적 지식,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 한마디로 ‘돈되는 지식’을 앞세워 기존 지식인의 가치를 평가절하함으로써 상아탑을 초토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분란에 휩쓸리기를 꺼려하는 지식인들의 자기검열, ‘발언 안하면 되지’ 식의 냉소주의가 싹트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개방성과 탄력성에 대한 논의는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 지성은 50여년 전 광복 직후 상황에 머물 것인가.” 최근 지식사회를 둘러싼 정황들은 이같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

관련 기고문 위치:
http://www.chosun.com/feature/2001/knowledge0718.html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참고로 말하지만 나는 조선일보를 구독하지도 사지도 않는다, 인터넷으로 슬쩍 예리하게 볼 뿐이다) '참으로 조선일보답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번 기획은 조선일보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야말로 조선일보의 '본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관련 기고문들이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본다.
단 하나, 조선일보 자체가 이들이 비판하는 '나쁜 지식인'의 전형(가령 김대중 같은 언론 지식인)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만 빼면.
가령 위 기사에서 "지금 한국 지식사회를 위협하는 적들은 양극화 폭력화 천박화 폐쇄화 등 네 가지로 압축된다"라는 구절은 조선일보가 자행해 온 바로 그 행태가 아니던가.
최근의 반-조선일보 관련 사회 운동이 모조리 긍정적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조선일보가 분명히 나쁘다는 것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기사 또는 기고문들은 제일 먼저 조선일보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아니면 글의 절반 정도는 조선일보 비판에 할애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비판 대상이 바로 조선일보이기 때문에.
단언하건대 조선일보는 깡패의 저열한 패거리주의의 표본이다.

그에 반해 노무현을 지조 있는 사람의 예로 들고 싶다.
나는 그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눈여겨 본다.
특히 최근에 더 그러한데, 그것은 많이 알려진 대로 그가 항상 조선일보의 일차 저격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것은 이유의 전부도 처음도 아니다.
내가 5공 청문회 때 명패를 집어던지던 그 인상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사실 그의 행적이 너무도 특이하게 올곧고 용감하면서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에게 용감하고 지조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붙이고 싶다.
그의 '현실정치적 올곧음'은 언론에겐 계속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올곧자고 얘기하는 것은 곧 모든 기득권은 죽어버려라고 얘기하는 것과 거의 동의어이니까. 특히 오늘의 한국에선.
노무현은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즉 전면적 비판.
이 일은 철학자의 최대 임무인데, 그것을 정치인이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심지어 노무현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마저도 눈여겨 보지만,
내가 보기에 잘못된 것은 없었다.
그는 늘 가장 합리적이었다.
뭔가 그에게 비난이 가해질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네 놈도 때가 묻었다는 식의 비난이 아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운동의 성격과 방향이 아닐까.
그것이 처음과 중간과 지금을 모두 짚으면서 얼마나 고른 행적을 보여왔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이유이리라.
국지적 합리화가 아닌 전면적 비판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신이 얼마나 자신에 넘치느냐를 반증한다.

오늘의 결론.
조선일보는 나무의 중요한 사례이고
노무현은 리좀의 중요한 사례이다.
다시 말하지만, 운동의 성격과 방향에만 눈을 집중해보자.
현 시대에 니체와 들뢰즈 식 정치 철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노무현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