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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http://www1.seoprise.com/newwork/bbs_menu/nozzang_triana/nozzang_triana_01.php?table=nozzang_triana&query=view&uid=120&pp=1* 서프라이즈에 이진경 교수의 대담이 실렸는데,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주류 권위주의자의 방식을 쓰면서 비공식적으로 상당히 길게, 그것도 자꾸 간접적으로만 답하는군요. 예전의 이종영 씨와 비슷하게, 대단히 정치적입니다. 어떤 분들은 환호성을 올리겠지만, 뭐, 함 읽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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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편집실
“이제 다시 맑스에게 돌아간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인터뷰
  
등록 : 지승호 조회 : 5,386   점수 : 437      날짜 : 2004년 07월 16일 (20시 16분)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너머(이하 수유 + 너머)’의 연구원으로 여러 가지 학술적 논의를 통해 다양한 결과물을 생산하고 있는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는 7월 6일 오후 종묘공원 근처에 있는 '수유 + 너머'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는데, 이진경 교수는 80년대 후반 사회구성체논쟁을 주도했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지은이로 유명하다. 그 시절 PD 계열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수유 + 너머’를 고미숙씨와 함께 공동창업해서 새로운 실험적 공동체를 통해 학문을 대학의 울타리 밖으로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초 《한겨레신문》에서 선정한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중’ 학술부문 8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추천위원과 심사위원 모두에게서 가장 많은 기대를 모았던 이진경 교수는 사회현실에의 참여를 외면하고 학문에 몰두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많은 좌파지식인들이 이진경 교수에 대해 현실참여를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김규항 선생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진경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진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이따금 받는다. 오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진경의 방법은 지적 편력, 혹은 지적 허세다. 편력이든 허세든 그가 알아서 선택할 일이지만 그런 방법이 지나치게 많은 존중을 얻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 배경엔 그가 80년대 PD 운동권의 주요한 이론가였다는 다소 엉뚱한 (그러나 한국이라는 기지촌 지식 사회에선 지극히 당연한) 이유가 있다. 이진경의 주 메뉴가 현실 변혁의 가능성을 차단당한 유럽 좌파들의 정신적 공황과 지적 허세(특히 프랑스의)의 결합에 의해 탄생한 탈근대 철학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탈근대철학은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이진경을 비롯한 80년대 우등생 좌파들의 정신적 공황과 포기할 수 없는 지적 허세에 안성맞춤이었다.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엔 자의식이 강하고, 기약 없이 풍찬노숙하며 운동하기에도 너무나 유약한 그들에게 탈주, 횡단, 유목 같은 탈근대 철학의 개념들은 뇌까리는 건 모든 것을 실제로 청산하면서도 뭔가 진지한 탐색을 지속하는 듯한 외양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진경은 최근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라는 책을 ‘예약 이벤트’까지 벌이며 냈다. 그 책의 맑스주의적 가치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그 점에 대해선 이미 맑스가 말한 바 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 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이진경씨는 ‘나는 다른 방식의 참여를 하고 있으며, 여전히 혁명을 꿈꾸고 있다. 눈에 안보인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부드러웠지만, 여전히 기품있고, 단단한 전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숫한 저작물을 낸 이진경 교수의 주요 저서로는 『노마디즘』, 『철학의 외부』, 『철학과 굴뚝청소부』,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맑스주의와 근대성』,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자본을 넘어선 자본』 등이 있다. 다음은 이진경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지승호(이하 지) - 연구공간 ‘수유+ 너머’를 통해 여러 가지 학문적 성과가 있었는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이진경(이하 이) - 98년 여름인가 그 전에 저와 고병권씨가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강의를 하는데, 고미숙씨나 수유연구실에 있던 여러분들이 와서 강의를 들었어요. 그러면서 수유연구실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저는 푸코의 『말과 사물』,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가지고 강의를 했고, 고병권씨는 니체를 가지고 강연을 했죠. 그렇게 해서 인연이 맺어졌는데, 99년에 저와 고병권씨 등이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나오면서 연구공간 ‘너머’를 만들었는데, 수유연구실도 대학로로 이전을 하면서 사무실을 같이 쓰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거를 시작하게 된 셈이죠.(웃음) 거기서 하는 강의나 세미나 이런 게 경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이 섞여서 했고, 그래서 나중에는 어딘지 소속을 구별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회비 같은 것도 그렇고. 그래서 같이 운영을 했던 것이었는데, 통합을 하면서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 이렇게 합쳐서 연결을 했구요. 상이한 연구공간이나 연구단체가 접속해서 합쳐지고, 서로가 변이한다고 하는 것이 저희들 생각에는 (차이의 철학이니 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의 개념에 부합된다고 봤기 때문에 이름도 아예 그렇게 지었죠. 그렇게 시작을 했고, 그 뒤에는 합친 상태에서 계속 세미나와 강의 활동을 해가면서 이사를 여러 번 했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겁니다.


지 - 올 초에 한겨레에서 뽑은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 중 ‘학술 8인’에 꼽히셨는데요. 추천위원이나 선정위원 모두 가장 주목할 지식인으로 뽑았는데요. 대중적인 활동은 어떻게 보면 다른 분들에 비해서 적었다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 - 저는 대학 들어가서 운동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공부도 했고, 여러 가지 일도 해본 편이에요. 사람마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게 있잖아요. 이념도 있고, 삶의 원칙도 있고 등등이 있는데, 같은 이념이나 같은 원칙 하에서도 여러 가지 영역에서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제가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해봤는데, 대중조직이나 대중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은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공부를 좋아했고, 관심도 그 쪽에 많이 가 있었고, 사회주의 망하고, 감옥 들어갔다 나온 뒤에는 주로 이런 활동을 하게 된 거죠. 그리고 감옥에 갔다가 나오니까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들도 자연스럽게 해체되어버리고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됐죠. 제가 다른 거 하는 거 보다는 공부를 하는 게 남들한테 뭔가 줄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았습니다. 딴 거는 해봐야 잘하질 못하니까 남들한테 줄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한편 있었구요. 사회주의 망하면서 제 나름대로의 화두라고 부르는 질문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그걸 가지고 이런 저런 영역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공부라는 게 사실은 하다보면 새끼를 치는 부분도 있고, 제 질문이라고 하는 것 역시 쉬운 질문은 아니었기 때문에 해야 될 것들도 많았고, 그렇다고 해서 기존에 있는 것들을 툭툭 정리해서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면이 컸죠. 그랬기 때문에 다른 데를 돌아볼 여유가 별로 없었고,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수도승들 산에 들어가서 살듯이 저도 산에 들어가서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잘 안하고, 모임에도 잘 안가고, 다른 활동하는데도 잘 안가는 편이죠.


지 - 보통 사람들은 공부하면 지겨워하는데,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런 셈이네요. (웃음)

이 -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겠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지겨워하거나 힘들어하진 않잖아요. 아니 힘들다고 하더라도 지겨워하진 않잖아요. 힘든 건 물론이죠. 저도 글을 쓰는 것 역시 힘들고, 많이 숙련되어 있는데도 힘들긴 합니다. 책을 읽는 것도, 생각을 하는 것도 힘들기는 한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겨워하는 일은 생기지 않구요. 힘들어도 더 하게 되니까 그런 것 때문에 계속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 - 세미나와 강연 등이 매일 진행되고, 고미숙, 고병권 씨 같은 유명저자들도 많이 나왔는데요. 이곳에서 같이 연구를 하실 때 생기는 이점이나 같이 지향하는 방향 같은 것이 있습니까?

이 - 여기 오면 일단 출신학교는 안 물어봐요. 과는 물어보는데, 출신학교는 안물어봐요. 그 다음에 전공이나 이런 걸 가리지도 않아요.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심지어 직접 공부랑 상관이 없는 예술이나 창작 이런 걸 하는 사람들도 오고, 전혀 상관이 없는 직장인들도 많이 오거든요. 다양한 영역을 공부하는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셈이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한 (지금은 30종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종류의 세미나들이 있고, 그러면서 관심사에 따라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거든요. 이렇게 되니까 상이한 종류의 영역에 있는 지식들이 서로 접속하고 결합하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횡단성 계수가 굉장히 큰 편이죠. 저는 어느 분야의 전공자, 전문가 의식 이런 건 없거든요. 차라리 아마츄어죠. 공부가 좋아서 하는 의미에서 영원한 아마추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여러 영역을 넘나들었는데요. 어느 영역이든 들어가면 그 영역에서 행해지는 이야기를 알고, 말들을 이해하고, 언어들을 사용하는데 꽤 오랜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여긴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영역이든 접근하기 쉬운 이점이 있죠. 그리고 그 영역에서 진행되는 사태에 대한 맥락도 일단 파악하기가 좋은 편이고, 필요한 지식들을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편이고, 상이한 영역에서의 문제의식 이런 것들이 접속하면서 불꽃이 튀기거나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일들도 많은 편이고, 이런 것이 공부하는데 가장 큰 이점이겠죠.


지 - 반대로 불편하신 부분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지식인들이라 견해의 차에 대해 격한 논쟁도 있을 것 같구요. 일례로 고미숙씨가 썼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어떤 분은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는 지독한 악평을 하기도 했지 않습니까? 고미숙씨께서 알라딘과의 인터뷰에서 '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는 표현을 쓰시기도 하셨는데요.

이 - 그렇죠. 방금 얘기하셨지만, 고미숙 선생하고는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 제일 많이 다툰 편이죠. 그 분하고만 다툰 것이 아니라 다들 이견이 있으니까 다투는 경우는 많죠. 우리는 흔히 그런 이견이라는 것을, 나와 다르다는 것을 실제로 참기 힘들거든요. 일을 같이 하기는 더욱 힘들구요. 거기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이 관용인 것 같아요. 똘레랑스. ‘나와 다르고, 나는 마음에 안들지만 참아준다’고 하는 것이 똘레랑스고, 사실 그것만 있어도 함께 공존할 수 있겠죠. 그게 없으면 함께 지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저는 거꾸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데요. 저는 고미숙 선생하고 그렇게 의견이 다르고, 다른 사람하고도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못보는 걸 저 사람은 보고, 내가 하지 못하는 걸 저 사람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저 사람이 못하는 걸 내가 하고, 저 사람이 못보는 걸 저는 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다투기는 하지만 서로 못보고, 못하는 것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 되죠. 그리고 그런 것들이 반대되는 면을 보게 만들고, 능력은 최대화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을 잘 해야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갖는 긍정적인 힘, 결코 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함께 결합해서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가는 능력 이런 것들을 획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우리가 얘기하는 접속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융합에 의해서, 접속에 의해서 내 스스로가 변하는 것이고, 당사자들이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특히 지식인 사이에서는 견해차라는 게 견디기 힘든 경우가 많고, 논쟁을 하고,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요. 우리도 싸울 때는 진짜 심하게 싸우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고, 내가 못보던 면을 보게 되면서 서로가 그런 것들과 결합해서 자신을 변이시키는 능력 같은 것들을 훈련하는 장이 되기도 했죠. 그런 면이 보통 같으면 큰 단점이 되고 , 깨지기 쉬운 조건일텐데, 거꾸로 그것이 강력한 결합의 이유를 제공한다는 생각이 들고, 서로가 자신의 능력을 커페스티, 커페스티는 담는 거잖아요.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이질성의 폭에 의해서 커페스티는 정의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커페스티 능력, 역량 이런 것들이 증가하는데 중요한 조건이 된다고도 생각해요. 우린 그렇게 해왔다는 생각이 들구요.


지 - 차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보고 하는 경우는 해소할 수 있지만, 익명성이 강한 인터넷의 경우 서로의 차이나 다름이 치명적인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인터넷 토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 저는 일단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토론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아요. 미안하지만. 몇몇 경우들을 봤고, 우리 연구실 와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봤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견을 갖고, 적대적인 견해를 갖고 있을 때조차도 그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가에 비추어서 그 사람 얘기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갖는 장단점을 볼 수 있어야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적대적인 입장을 확인하고, 하나를 말소시키기 위한 투쟁의(이른바 계급투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질 수도 있겠지만) 경우에도 상대방 혹은 반대편의 장점과 그들의 문제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실은 이길 수도 없고, 뭘 배울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얘기들은 그 정도 수준은 아예 발견하기 힘들고, 대부분은 상대방의 논지들을 트집 잡고, 말꼬리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제가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몇몇 사례를 본 경우는 그랬습니다. 문제의식을 이해하려는 태도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말은 잘못했지만, 내 문제의식은 그게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심한 비난을 해도 승복하지 못하고, 자기 견해를 바꾸지 못하는 거예요. 싸움은 있지만, 실제로는 논의를 통해, 서로가 성장하고,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죠. 오히려 싸움이 진행되고,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자기 견해만 공고히 하고, 방어벽을 만들기 때문에, 자기 견해만 공고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니까, 사실은 논쟁이나 차이라고 하는 게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 나 자신의 견해를 지키고 보호하는 이런 계기로 작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에 대해 비판을 할 때, 비판이라는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상처를 주기가 쉽거든요. 그것은 상처를 준다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얘기도 듣기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그래서 비판을 할 때는 더욱 더 언사를 조심하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예전에 제가 해본 많은 논쟁을 통해 자기비판과 반성 속에서 나온 생각인데, 그런 면들에 대한 고려 이런 것들이 없고, 사실은 있어도 서로의 얼굴과 감흥 이런 것 없이 글로만 논쟁하기 때문에 안그래도 힘든 조건인데, 그런 고려 없이 논쟁하기 때문에 더욱 더 나쁜 결과들을 빚는 것 같아요. 인터넷상에서 하는 비판들에 대해서 저는 관심도 없고, 듣지도 않고, 진지하게 제가 답할 가치가 있는 비판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가 크겠죠.


지 -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이 정치에 많이 참여하기도 했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기도 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진영논리가 더 강화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지만 잘했다는 얘기는 거의 없고, 말씀하신 데로 자기 입장과 논리만 강화하는 식이 되는 것 같은데요. 얼마 전 『시네21』에 쓰레기 만두 파동에 관련된 글을 쓰셨는데요.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만두회사 사장이 자살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반응할 일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 언론도, 우리 사회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데요. 어떤 일이 발생하면 우리 사회나 언론이 한쪽으로 몰려가는 면이 있지 않습니까? 심하게 얘기하면 저는 그런 걸 보면서 ‘메뚜기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한번 지나가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고, 금새 또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서지 않습니까? 문제해결은 점점 멀어지고, 그걸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어버리는 것 같은데요.

이 - 니체는 그것을 가축떼, 떼거리근성이라고 불렀죠.(웃음) 저는 예를 들어서 인터넷이 대중정치에서 갖는 잠재력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평가를 해요. 어떤 것이 적극적인 힘을 가질 때 약간만 달라지면 굉장히 부정적인 방향으로도 큰 힘을 미치고, 크게 부정성의 폭을 키울 수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하거든요. 그런게 가시화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조선일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조선일보》에 글을 쓰지도 않고 등등 다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조선에서 하는 운동의 스타일에 대해서 호의를 갖지 못했던 이유가 그런거였는데, 사실은 《조선일보》에서 상대를 비난하고, 적으로 몰아가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부터도 그랬거든요. 저는 사실은 그런 입장을 갖고 있는데도 안티조선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또는 여기 드나드는 사람들이 안티조선을 비판했다고 해서 안티조선을 비판했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비슷한 놈이라고 하는 식의 비난들을 많이 봤거든요. (웃음) 이런 거라면 《조선일보》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조선일보》가 낡은 방식의 권력을 가지고, 예전의 방식으로 말하고, 글을 쓰고 매체의 힘을 권력화하고 있다면, 안티조선의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종류의 권력을 작동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뒤에 안티조선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구요. 진중권도 같이 하다가 싸우고 나오고 그랬더라구요. 전에 노회찬 선배의 《조선일보》 노동조합 강연을 가지고도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역시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더라구요. 《조선일보》 노동조합에 가서 얘기하면서 《조선일보》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적의 장점을 보지 못하면 적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는 게, 지피라는 게 적의 단점을 보는 걸 뜻하는 게 아니거든요. 단점은 안봐도 되요. 거꾸로 적의 장점을 봐야만 적을 이길 수 있고, 적의 장점을 보고 그걸 인정할 줄 알아야만 적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대처를 할 수 있는데, 그 점에서 보면 정말 한심한 것 같아요. 적의 장점을 얘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적과 한편으로 내몰았을 때, 적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본적인 것도 누가 얘기하겠어요. 더구나 《조선일보》 초청을 받아서 간 자리에서 실제가 아니어도, 의례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아서 그런 식으로 비난하고, 그걸 가축떼처럼 몰려가잖아요. 개 한 마리가 짖으면 따라 짖는 식이잖아요. (웃음) 이탁오라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나는 개였다'. 어떤 한 학자가 누구보고 짖으면 같이 멍멍대고 짖었다고 하면서 자기가 걸어왔던 길 전체를 뒤집어버리면서 딴 길을 가기 시작하거든요. 정말 그런 자숙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자주 하는데, 내가 혹시 남이 짖는 거 보고 따라 짖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숙을 자주 합니다. 정말 이 사람에 대한 비난이 적절한 건지 생각해보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저는 정말로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면 따라 짖는 개가 되고, 가축떼가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사실은 그게 가장 끔찍한 파시즘을 낳을 수가 있는 거죠. 전체주의면 다 파시즘이라고 생각하는데, 히틀러의 파시즘이 끔찍했던 것은 히틀러가 명령하기 전에 밑에서부터 알아서 움직이면서 '저 유대인 죽여라'라고 하면서 가축떼처럼 몰아가면서 사람들을 죽여버리고 했다는 겁니다. 어느 한 방향으로 몰려가면 밑에서부터 쏴 몰려가고, 밑에서부터 전염의 형식으로 몰려가는 그것이 큰 힘을 갖기 때문에 사실은 훨씬 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거죠. 사실 히틀러는 박정희처럼 철권으로 사람들은 억압했던 게 아니예요. 대중운동,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면서 했다구요. 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끔찍한 결과를 빚을 수가 있었던 거죠. 그런 면들에 대해서 굉장히 유념하지 않는다면 적극적인 정치적 힘이라는 게 정반대로 끔찍한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 - 흔히 지금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 중에서 많지는 않더라도 나만이 절대선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저항한다고 생각해서 ‘개혁에 반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식으로라도 제거해야한다’고 얘기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 상대방과 똑같은 거죠.


지 -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대중이 한 방향으로 몰려가다보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신문이나 인터넷 같은 것도 잘 안보신다는 들었습니다. 9시 뉴스도 안보신다고 들었는데요.

이 - 9시 뉴스는 볼 수가 없고… 신문은 《한겨레신문》을 보는데, 못볼 때가 많구요. 태풍도 지나간 다음에야 ‘왔었구나’ 아는 이런 식이에요. (웃음)


지 - 지식인의 역할 중의 하나가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참여가 부족한 것 같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 그건 맞죠. 그런데 이제 지식인들이 사회에 참여한다, 혹은 지식이 사회에 적극적인 기능을 한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양상과 여러 가지 개입의 층위들이 다를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처럼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코멘트를 해야 되는 사람들이 있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그것에 대해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을 거구요. 그 전체를 받치고 있는 지반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그것을 뒤집거나 그 차원에서 개입을 하려는 사람도 있을 거구요. 그 모두가 사실은 전 개입이라고 생각하고 참여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 층위를 맨날 앞에서 따다다다 하면서 시민기자와 비슷한 층위에서 지식인들이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주간지 수준에서 모든 사람들이 할 수도 없는 거구요. 그런 점에서 보면 지식인들이 사회에 참여한다, 개입한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다양한 양상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양상과 레벨에 따라서 관여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관여의 결과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고, 자기가 적극적으로는 못해도 인정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 없이 자기와 다른 스타일로 하는 모든 것은 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독선이거든요. 저는 거꾸로 그런 것에 대해서 반대로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맨날 시민기자들이 얘기하는 것과 뭐가 달라?’라고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어떤 친구처럼 현안에 대해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논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 저는 굉장히 마뜩찮게 생각하지만, 그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친구는 재능이 있고, 깊이 볼 수 있는 눈이 있는데, 그걸 그런데 쓰지 않고, 거기 쓰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안타깝기도 한데, 그것은 그게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재주를 저런 식으로 밖에 안쓰나’ 하는 안타까움에서 얘기하는 거구요. 분명히 유의미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런 차원에서 하는 비난에 대해서는 반박하거나 그 친구를 공박할 생각이 없어요. 의미가 있는 일이고, 그걸 공박하는 것이 내 뜻과는 다르게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는 그걸 비난하는 효과를 야기할 수 있을 땐 심지어 말을 안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그렇지만 어쨌든 관심사도 그게 아니고, 저는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생활주기도 다른데, 그걸 하려고 하는 게 별로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저는 저대로 남들이 안하는 층위에서, 안하는 일을 하는 게 유의미할 수도 있으니까요. 흔히들 안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는데,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하는 일 밖에 못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 - 요즘 정치 문제에는 관심이 없으십니까? 최근 민주노동당에 대해 진중권 씨는 민노당을 NL이 장악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선 PD 계열의 대표적인 이론가셨지 않습니까?

이 -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웃음) 그렇기는 한데, 민주노동당의 경우 정치적인 사안들, 대부분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정부와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요. 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싸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과 같다거나, 초록이 동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기는 한데, 거기에 대해 제가 참견한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도 없고, 발언을 한다고 해서 무슨 힘이 있겠어요? 괜히 그런데 낭비할 필요도 없는 거고.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죠. 저는 민주노동당과 제 생각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당원도 아니에요. 그렇기는 하지만 현재의 전체적인 정치지형 속에서 민주노동당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선거라든가 이런 게 있으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도울 수 있는 길을 제 나름대로 찾는다구요. 거기에 과거의 동지들도 많구요.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제 나름대로 안타깝다, 혹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그런 발언을 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구요. 사실은 당 밖에서 그런 식의 발언을 하는 게 당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별로 없거든요.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는 과거의 친한 동료들이나 이런 사람들도 저더러 발언하라고 하지도 않아요. 그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로서는 지금 별로 할 말이 없는 거죠.


지 - 그런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강준만 교수 같은 경우 예전에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이론적인 받침이 되는 책들을 쓰셨지 않습니까? 그런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 강준만 선생이야 노무현 같이 자기 생각과 비슷하게 일치하는 사람들을 지지한 거잖아요. 서포트할만한 사람이 있어서 했겠지만, 전 그런 사람이 없어요.(웃음) 제가 노무현을 지지하겠어요?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의 이념이라는 것은 통상적인 사회민주당을 놓고 비교해 봐도 굉장히 우파거든요. 전 사회민주당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념적 입장을 갖고, 거기서도 더 왼쪽의 입장인데, 제가 어떻게 그대로 지지하고 따라가겠어요? 개인적으로 회찬이형하고는 굉장히 친해요. 1년 반을 감옥에서 같이 살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람이예요.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렇다고 제 이념과 회찬이형이 하는 것이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 양반이 서 있는 포지션이 있고, 생각이 있는 거고, 저는 다른 위치에서 지지하고 좋아하고 도와주고 성원할 수 있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서 제가 이론적으로 회찬이형을 서포트하겠다고 나서는 게 과연 적절한가, 그건 사실이 아니거든요. 그 차이를 그대로 둔채 지지를 할 수 있는 거죠. 이건 하나의 연대의 형식이 되는데, 내 생각을 가지고 그 잣대로 정치인들이나 활동가들을 판단하면 거기에 맞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비난을 하는 것은 얼마나 부적절한 일이겠으며, 그렇다고 해서 자기 생각을 접고 지지를 하는 것은 사실은 조금 있으면 싫증날 일이죠. 할 수는 있겠지만, 자기 일이 아니라 도우는 일이니까. 그런 것 때문에 저는 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한해서 도와주고, 제게 참여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라고 요구를 하면 제가 사람들한테 영향을 주는 방식이 있으니까 그런 방식을 저는 잘 알고 잘 선택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 - 진중권씨가 저와의 인터뷰에서 이진경 선생에 대해 “요즘 생각이 너무 달라져서 소통이 안되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평가할만한 친구”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유가 산만하다면 그는 체계적이거든요. 서로 단점들을 커버할 수 있고, 둘이 만나면 굉장히 생산적입니다. 전 진경이가 현실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거든요. 그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 중권이가 옛날부터 그런 얘기를 자주 했죠. 중권이는 자기가 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거 안하면 안한다고 생각을 해요. (웃음) 안티조선 할 때는 안티조선 안하면 다 나쁜 놈이라고 그랬다니까요. (웃음) 왜 저까지 안티조선해야 되냐구요. 자기만 하면 됐지. 저는 저대로 하는 방식이 있는 거거든요. 현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계속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혁명을 여태 꿈꾸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실험을 통해 그런 걸 하고 있는 겁니다. 안티조선이나 민주노동당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사람들 삶에 어쨌든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이 다른 종류의 삶을 찾아가도록 촉발하는 그런 방식을 분명히 확보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은 그런 점에서 분명히 현실에서 민주노동당이나 안티조선이 하는 것만큼 독자적인 자기 나름의 스타일이고, 또 하나의 경로를 만든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현실에 개입하는 것은 이런 방식이고, 그게 저한테 적합하고, 제가 공부하는 방식이나 생각에 부합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무리 비난을 해도 그것은 니 스타일과 달라서 그런 거고, 저는 제 나름대로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층위도 마찬가지거든요. 저는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 일일이 코멘트하는 거, 저는 그게 관심거리가 아닌데, 제가 왜 그걸 해야하느냐는 말이예요. 그것만이 현실이라고 생각할 때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지, 현실은 훨씬 더 거대하고, 훨씬 더 심층적이라구요. 훨씬 더 다양하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 벌어지는 정치판세에 대해서 하나하나 개입하고, 코멘트하는 방식의 그런 활동만을 현실에 개입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하는 사람에게 자긍심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칫하면 독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 - 또 그 인터뷰에서 “‘《조선일보》가 후지다’는 얘기를 가장 먼저 한 게 이진경이었어요. 89년경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자기가 가진 철학과 현실의 문제가 연결이 안되는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하도 욕을 했더니 다감한 친군데, 그것을 못견뎌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도 얘기했는데요.

이 - 하하하.


지 - 분명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가지 참여의 층위가 있을텐데, 너무 떨어져 있으면 현실적인 감각이 떨어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칼럼 같은 것을 쓰실려면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 - 쓸 때는 찾아보죠. 요즘 인터넷 있으니까 뒤져 보면 되는데, 아까 얘기했던 거랑 비슷한데요. 현실이라고 하는 게 자기 나름대로 대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사실인데, 그것이 유일한 현실은 아니죠. 사람마다 자기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이 다른 거고, 현실과 대결을 하고, 현실을 뒤집고 하는 것도 대면하고 있는 현실과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하나를 향해서 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건 굉장히 공상적인 얘기죠. 그거야말로 단일한 현실, 단일한 현실의 이미지, 단일한 대상, 단일한 적을 모두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상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지 - 진중권씨와 예전에 비슷한 활동을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 두 분의 활동은 굉장히 대조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 비슷한 활동을 한 적은 없죠. 그 친구하고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친하고, 그리고 오랫동안 친했죠. 그렇기는 한데, 그 친구는 공부를 하고, 문화운동조직에서 활동을 하다가 오히려 유학가서 안티조선하면서 『니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내고나서 오히려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된 셈이구요. 저는 반대로 감옥 들어가기 전에까지 주로 이런 저런 활동을 했었고, 그리고 나와서는 근본적으로 저는 공부하는게 제 업이니까 그런 것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정리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좋으나 싫으나 해야 되었던 것이고, 그걸 제 나름의 과제로 설정했던 것이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그것에 부합하는 것들을 찾고자 했구요. 지금은 꼬뮌주의니 뭐니 이런 정도의 관념과 화두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꼬뮤니즘이라고 하는 게 먼 미래의 어떤 것을 위해 권력과 싸우는 것 이런 방식의 정치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오히려 꼬뮌주의라는 것은 현재의 시제 속에서 언제나 스스로 자기 삶을 바꿔가는 이행운동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그런 관점에서 사실은 우리를 꼬뮌으로 구성을 할려고, 연구자들의 꼬뮌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런 관계를 계속 변형시키면서 확장해가기도 하는데, 그런 점에서 정확하게 제 이념대로 살고 있는 거죠.(웃음) 저는 정말 원칙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예요. 이게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살려고 하거든요. 저는 어느 사람보다도 제 이념대로 살려고 하는 편일 겁니다. 예를 들어 회찬이형이 민주노동당을 해도 자기 생각대로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노동조합 설득하면서 가야지, 주사파 설득하면서 가야 할텐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따라서 자기 이념대로 살기 힘들어요. 그런데 저는 제 이념대로 살아요. 제 삶도 바꿀려고 하고, 생각도 바꿀려고 하고, 생각과 삶이 바뀌면 몸도 바뀌거든요. 그런 면에서 정확하게 제 이념대로 살고 있는 거죠.


지 -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희생자들이 있는데요. 송두율 교수가 1년 넘게 감옥에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 인터뷰하시는 분의 관심사가 제 관심사와 좀 다른데요. 그건 안타까운 일이고, 국가보안법은 철폐되어야 하고,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저는 사실 미안한 얘기이긴 하지만 그걸 위해서 제가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나설 생각은 없거든요. (웃음) 그거 할 여유가 어디 있어요? 맨날 정신없이 책 볼 것도 간신히 챙겨보는 편인데요. 그리고 실제로 보안법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구요. 보안법 바뀐다고 혁명이 되는 것도 아니고, 꼬뮌주의적인 세계가 오는 것도 아니구요. 저는 그거와는 다른 제 나름의 중요한 과제들이 있다는 말이예요. 어떻게 우리 삶 자체를 꼬뮌주의적인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바꿔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것이 온통 관심사니까 그와 무관한 것들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지지를 하고, 옳다고 해도 제가 그것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뭘 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지 - 자본주의 자체의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신자유주의의 공세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파병 문제도 미국의 경제적인 제재에 대한 공포 때문에 결정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 저는 그 문제와 관련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를 통해서 생각하는 것, 국가를 단위로 생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해결책은 없다고 생각해요. 국가주의를 벗어나야 되는 거죠. 왜냐하면 국가의 입장에서 본다고 하면 실제로 세계 체제를 벗어나서 북한처럼 고립체제로 갈 것이 아니라면 어쩌겠어요. 시장 열라고 하면, 농민 생각하면 안 열어야 되지만,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열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무역이고 뭐고, 산업이 다 망가지고, 실업자 생기는데 어떻게 할 거야. 누가 책임질 거야’ 이렇게 된다구요. 그런데 그건 통치자의 관점이고, 국가의 관점이거든요. 그런 관점에 서면 파병도 해야죠. 국가의 관점에 서면 그렇게 되거든요. 바로 그 전제가 함정이라는 거예요. 국가의 관점이 서야 한다는 게 함정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건 국가를 관리하는 사람들 생각이지, 우리는 국가를 걱정해야 될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가를 넘어가서 비국가적인 방식으로 관계들이 형성이 되고, 비국가적인 방식으로 주체들이 구성되고, 비국가적인 방식의 운동체들이 형성이 되는가 이게 우리의 관심사이고, 거꾸로 이런 것들을 위해서 그런 계기들을 이용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런 면에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적인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그런 선들이 범람하고 있는 건 사실이죠. 안토니오 네그리나 이런 사람들이 제국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든 안받아들이든 간에 국가적인 단위를 넘어서 연대가 쉽게 행해지고, 굉장히 비형식적인 연대들도 많아지고, 노동자체도 지금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아요. 이런 현상 자체가 이미 국가적 경계들을 자본뿐만 아니라 노동도 이미 넘어서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국가적 경계에 대항해서 자본은 마음대로 넘나드는데, 노동은 국가적 경계로 강하게 막아놨잖아요. 전 미국 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가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웃음) 어쨌든 간에 그런 노동의 자유로운 흐름, 사람들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으려는 국가적인, 공간적인 장벽들, 이런 것들을 깨는 그런 종류의 연대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직접 나서지는 못하지만, 가령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해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 김여성 목사님이나 성공회대 신부님 그런 분들이 하는 일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것은 단순히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감당해준다는 차원만이 아니라 지금 이런 자본주의의 현재적 조건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자본은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전 세계적인 스케일에서 착취를 하는, 그러면서 노동은 분할해놓은 이런 조건들을 철폐해나가고 깨나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통로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이유 때문에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본에서 민족주의가 문제인 것만큼이나 한국 민족주의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비민족주의, 정말 우리야말로 그런 것을 넘어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종적 편견이나 민족적 편견, 민족적 자긍심 이런 것들과 싸우면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이런 계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지 - 이번 책을 내시면서 “이제 다시 맑스에게 돌아간다. 삶이, 사유가 시작된 그 지점으로 그간 여러 스승에게서 배운 나름의 연금술을 들고서, 맑스에 대해 사유하기보다는 맑스와 함께 사유하기 위해서, 이제 '나'의 사유를 시작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시점에서 맑스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가장 큰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이 - 책에 다 있죠.(웃음) 어쨌든 제가 대학 1학년 때부터 맑스를 보기 시작했던 셈인데요. 그러면서 근 20년 가까이 공부했던 것들, 맑스랑 멀어져 있을 때조차도, 맑스를 읽지 않을 때조차도 전 맑스를 함께 읽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현재의 조건 속에서 다시 생각해야 된다, 혹은 이건 이런 게 아닌가, 이게 맑스적인 게 아닌가 생각하는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담은 셈이죠. 제일 처음 유물론에 대한 정의부터 바꾸기 시작했고, 유물론을 다르게 정의하려고 했고, 맑스를 노동가치론자가 아니라 노동가치론 비판자로 만들어버렸고, 화폐에 대해서도 어떤 가치의 등가물 이런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하려고 했었고,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이 있었죠. 현대 자본주의에서 자동화라든가 정보화 이런 것들과 관련해서 기계적 잉여가치라든지 노동의 기계적 포섭 이런 개념 혹은 그것과 관련해서 자본 축적양식이 어떻게 세계화되는가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 나아가서 이윤율평균화라고 하는 맑스 자신도 사실은 자본 초고에서는 버리지 못했던 관념 이런 것들을 거꾸로 맑스의 지대론을 통해서 극복을 하고, 평균화라는 관념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는 등등 여러 가지 명제들을 제 나름대로 제기를 하고자 했던 셈인데요. 지금 나온 반응은 턱도 없이 그런 얘기는 하나도 언급없이 말꼬리 잡는 비판 하나만 문화일보에 실렸더라구요. 대답할 가치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웃고 넘어갔는데요. 영국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친군데, 문화일보에 짧게 서평을 썼더라구요. 제 자신이 기존 통념들하고 다른 견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충분히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비판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응할 생각도 있는데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그 책에서 제기한 중요 논점에 대해서는 어느 것에 대해서도 코멘트하지 않고, 어느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도 없이 그 책이 자기 눈에 보였을 때 자기 생각과 다른 면, 혹은 제가 볼 때 말꼬리 잡는 그런 정도의 비판에 머물고 있어서 제가 대답할 가치가 있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 - 실제로 선생님 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학술적 논쟁을 많이 보기 힘든 것 같은데요. 학문적인 토대나 깊이가 얕기 때문일까요?

이 - 논쟁이 된다는 것은 일단은 논쟁을 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논쟁을 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건 기존의 통념들, 상식화되어 있는 견해와는 다른 어떤 견해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일관되게 제출되었을 때 가능한 거잖아요. 사실은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이해하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견해를 빌어서 얘기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그 경우에도… 저는 논쟁의 기본 태도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제기하는 사람의 문제의식, 그 다음에 무얼 하고자 하는가, 그거에 비춰서 제대로 되었는가,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할려고 하는 게 과연 적당한 건지, 이런 것들을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그것들을 정면으로 비판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는 이것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거나 그걸 비판하는 게 아니라 엄한 약점들을 캐는 방식으로 비판을 할 때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사실은 논지를 발전시키면서 논쟁을 일으키기 어렵죠. 그때는 부분적인 것들을 방어하거나 인정해버리면 그만인 겁니다. 대부분은 방어를 하죠. 이런 식으로 논쟁의 구도 자체가 형성이 안되는 면이 있는 것 같구요. 또 다른 한편에서는 논쟁이라는 것이 최대한 감정이나 감정적인 언사가 절제되고, 자제될 때 서로의 얘기를 듣게 되는 것 같아요. 맑스주의 전통도 영향이 있죠. 저 자신도 예전에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실제의 차이보다도 그걸 훨씬 더 예각화시키고, 과장하는 감정적인 언사들이나 감정적인 대응들 이런 게 서로의 얘기를 유심히 듣게 만들기 어렵게 만드는 면이 큰 것 같구요. 그것이 제대로 된 논쟁을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요.


지 - 김재인씨인가요? 그 분이 최근 ‘자본을 넘어선 자본’에 대해서 “자본이 외부조건 없이 순전히 내적 논리에 의해 스스로 증식할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진경은 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나 효과적으로 전개하는데 실패하였고, 따라서 그가 말하는 자본의 외부란 매우 피상적인 것이다”라는 비판을 했는데요.

이 - 김재인이 아니라 그게 문화일보에 실렸던 글이죠.


지 - 그럼 그 분이 김재인씨인가요? ‘노마디즘’에 대해 『천 개의 고원』의 번역자가 알라딘 독자서평에 “긴장도가 한없이 떨어지는 책, 끊임없는 오해로 중첩된 책, 그래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자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되는 책”이라는 혹평을 했던데요. 의외의 혹평이었습니다. “이진경 씨의 주장과 들뢰즈 자신의 발언은 명백히, 뿌리부터 어긋납니다. 문제는 이런 오류가 ‘노마디즘’에서 주요 개념 거의 전부에 걸쳐 발견된다는 점입니다”라고도 했는데요. 그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 알라딘 서평은 못봤는데요. 문학동네에 썼던 그 글을 말하는가 본데요. 저는 자세히 읽어보지 못했어요. 저희 홈페이지에 누가 올려놨더라구요. 어느 영역에서도 그런 게 있겠죠. 예를 들면 맑스에 대해 한마디로 얘기하면 이 사람은 어떤 맥락에 있고, 어디까지 공부했고, 이게 보이거든요. 제가 잘 아는 부분은 그렇게 되잖아요. 들뢰즈도 그렇거든요. 그 사람은 자기가 그 책을 번역했다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사실 저는 그렇게 밖에 번역을 못했던 게 안타깝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 친구가 인정을 하든 안하든 간에 제가 들뢰즈에 관한 책을 10년도 넘게 봤다구요. 천의 고원 같은 책은 10번도 넘게 봤어요. 강의도 많이 했고, 그래서 이 사람이 어 하면 이건 어디, 이건 어디 그런 게 보이거든요. 무협지에 비유를 하면 칼든 거 보면 어느 급이냐, 칼을 휘두르는걸 보면 어느 당파구나, 어느 권법이구나 딱 보이는 거 아니예요. (웃음) 그래서 이 사람은 제가 상대해야 될 사람이구나, 아니구나 하는 게 보이거든요. 칼 뺀다고 아무나 상대하는 건 바보 아니잖아요. (웃음) 초짜들이나 하는 짓이지. 정말 제가 부러운 것은 와호장룡의 리무바이 같은 사람이예요. 리무바이는 결국 칼을 버리잖아요. 저는 그래서 논쟁에 대해서도 점점 거리가 멀어졌는데, 칼을 빼는 게 잘하는건지, 사실 칼을 뺄 일들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구요. 아마도 칼을 빼면 다칠 가능성이 크겠죠. 예전의 그런 경험들 속에서 예를 들어 제가 칼을 빼서 그 사람을 비판했을 때, 그 사람이 정말 제가 하는 얘기를 잘 받아들일까 생각하면 별로 그럴 것 같지 않거든요. 그 사람이 글을 쓴 것을 보면. 예전에 이종용씨에 대해서도 비판을 한 것을 보면 그 경우에는 이종용씨는 들뢰즈를 비난을 했고, 저는 들뢰즈와 가깝고, 그 친구는 들뢰즈를 옹호하는 방식을 썼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종용씨에 대해서 수준이 안되는 비판을 했고, 겨우 외국어 실력을 가지고 남 트집을 잡았는데, 김재인씨는 외국어 수준을 가지고 트집을 잡을 수준이 아니예요. 천의 고원도 그다지 잘 번역된 책이 아니었고, 반대로 이종용씨는 번역도 많이 했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이라구요.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고, 개인적으로 아는데, 저는 이종용씨랑 입장은 다르지만, 이종용씨가 좀 황당했을 거 같아요. 들뢰즈를 옹호하면서 하는 비난도 이런데, 제가 이 사람에 대해서 칼을 뽑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죠. (웃음) 이 사람 글은 별로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읽지는 않았어요. 미안하기는 한데, 읽어야할 글들이 많으니까.


지 - 어떻게 보면 학문이라는 게 논쟁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는데…….

이 - 그것도 그렇죠. 이런 경우에 제가 가진 견해를 비판하려면 뭐가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면 되는데, ‘들뢰즈와 뿌리부터 다르고’ 이런단 말이죠. 다르면 좀 어때, 제가 한때는 들뢰즈앵이었지만, ‘나는 나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노마디즘’에 대해서는 들뢰즈에게서 배운 많은 걸 썼지만, 나는 그 책을 통해서 거기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썼거든요. 사실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이렇게 썼으면서도 제가 들뢰즈에서 많이 못벗어났을까봐 걱정이 되는데, 다르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죠. (웃음)


지 - 논쟁 자체가 생산적인 아니라, 소모적인 논쟁이 많다 보니까 점점 논쟁 자체를 혐오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요. 지금 하시는 활동들이 그걸 극복하기 위한 작업 같기도 한데요.

이 - 저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다 다른 사람들하고 논쟁을 하고, 고 선생도 심하게 욕을 먹었지만, 그 글도 진짜 황당하더군요. 누가 인터넷에 올려놨길래 짧아서 읽어봤는데, ‘나는 이 책이 싫다’라고 쓴 글이지, 이 책이 왜 문제가 있는지는 한마디도 없었어요. 이런 걸 글이라고 실어주는 신문사도 한심하고, 이런 걸 쓰는 사람이나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진짜 개떼들이다. 개떼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웃음) 분명히 욕은 할 수 있어요. 비난을 할 수 있는데, 예전에도 전 그랬다고 생각하는데, 사회구성체 논쟁이나 운동할 때 논쟁을 벌일 때도 우리는 분명히 이건 왜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했거든요.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이 ‘나는 싫다. 이 책은 끔찍하다’, 그건 욕이지 논쟁이 아니라구요.


지 - 인터넷에서 욕하는 분들 보면 리플 한 줄이면 족한 경우가 꽤 있는데요. ‘그러니까 제가 싫다는 거죠’ 하는. (웃음)

이 - 책을 버렸느니 어쩌니 하는데, 저는 실제로 제가 책을 버렸어도 그런 얘긴 다 지워버리고 ‘이 책은 이런 점에서 박지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문제가 있다’ 이렇게 얘기해야지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이 책을 버렸다, 찢어버렸다고 하면 어쩌라는 거예요. 뭐라고 답을 합니까? 하여튼 그것만이 아니라 비판이라는 것이 니게이션, 남의 결함을 찾고, 비난하고, 많은 경우에 비판을 통해서 발전한 게 뭐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워졌어요. 비판을 통해서 상대방을 발전시킨 경우가 있었느냐 하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비판은 상대방을 부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 기본적으로 니게이션일 뿐이라는 거죠. 아무것도 적극적인 것을 창조하고, 구성하지 못하는, 오히려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구성, 무언가를 새로이 만들어내는 그런 것들이 훨씬 더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남들 비판하는 일도 잘 안하고, 비판에 대답하는 일도 큰 관심이 없어요. 홈페이지에 올려놔도 관심이 없으니까 리플도 안달아요. 그러면 대답 안한다고 그거가지고 욕을 하고, 아니 대답해야 될 의무가 어디 있어요? 그리고 수준이 되야 대답을 하죠. (웃음) 일일이 사람들 말에 코멘트를 하고, 미쳤어요. 다 대답을 하게……. (웃음)


지 - 왜 계속 필명을 사용하십니까?

이 - 특별한 이유는 아니고, 이름이라는 건 그냥 붙여진 거잖아요. 이름은 뭐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는데, 일단 붙여진 이름은 이름을 둘러싼 관계들을 고정시키는 면이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이진경이라는 이름에 익숙한 사람들은 박태호라는 이름에 낯설고, 누가 누군지 모르고, 그런 이유 때문에 이진경이라는 이름으로 썼던 글에 대한 어떤 연속성이든, 관련성 이런 것들을 찾을 수가 없죠. 제가 꼭 박태호라는 이름을 쓸 필요는 없잖아요. 예를 들어 학교에 실적물 낼 때라든지 공문서 쓸 때 아니면 별로 쓸 일이 없으니까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애착을 우습게 생각하는 편이어서 성이라는 건 갈아버려야 되는 건데, 뭘 둘씩이나 쓰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웃음)


지 - 『자본을 넘어선 자본』에서 “자동화가 노동자의 고용없이 인간의 노동능력 자체를 기계적으로 포섭하여 노동자의 고용없이 인간의 모든 사회적 활동을 기계적으로 포섭하여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질텐데요. 또 정보화를 통한 ‘고용없는 착취’의 증가를 통해 점점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전망도 하셨는데요. 거대한 ‘실업사회’를 경고하고 있는데, 안그래도 청년 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 - 해결책은 아니어도 그것에 대한 생각은 뒤에다 써놨는데요. (웃음) 사실은 노동의 종말이 실업의 증가로 나타나는가, 저는 탈노동화 경향이라고 얘기를 했는데요. 분명히 생산이 사회화되고, 자동화되면서, 정보화·자동화가 탈노동화 경향을 야기하는 것은 틀림없죠. 근데 그 탈노동화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관계에서는 실업의 증가, 실업자의 증가를 뜻하지만, 조건이 달라진다고 하면 노동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 노동없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노동없는 생산의 가능성 등이 증가했다는 걸 뜻하기도 하거든요. 그렇다고 하면 그런 조건의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기 이전에는 다른 차원에서 예를 들면 변화된 노동 속에서, 변화된 임금의 관념 이런 게 필요하고, 누구는 사회적 임금이라고도 하는데, 직접적인 고용없이 활동 그 자체가 착취당하는 거니까 그것에 대해서 임금을 요구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업기금은 그런 것의 아주 초보적인 형태겠죠. 실업자와 관련해서는. 그래서 거꾸로 노동없이 생산할 수 있다면, 노동없이 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을 위한 운동이 일어나야하고,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사람들의 삶 자체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 - ‘자본은 대중의 창조성과 자율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억압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고, “네트워크 사용자들을 자신의 통제 안에 가두고 포섭하려는 MS의 시도가 오히려 초라하고 구차해 보이는 것은, 사용자들의 창조성과 자율성이 이미 그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도 가둘 수 없는 것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하셨는데, 지금 MP3 분쟁이라든지 인터넷을 통한 자본과 대중의 분쟁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정치적인 표현들에 대해서도 힘겨루기가 많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인터넷이 자본주의 탈출이나 완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그 반대로 보십니까? 대중이 인터넷을 통해 정치를 일정부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보기도 한 것 같은데요.

이 -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어떤 것이든 가능성을 가졌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지는 않거든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거기에 걸맞는 배치와 조건들을 확보해야 되는 거니까. 인터넷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새로운 차원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제공했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 혹은 사람과 기계들의 접속의 양태를 굉장히 근본적으로 바꿔놨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들을 자기가 머물러 있는 구체적인 국지성을 떠나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 자기라는 개체의 한계를 넘어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새로운 종류의 집합성 이런 것들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죠. 그러나 그것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면 포르노의 전송매체나 욕이나 배설물들을 실어 나르는 역할밖에 못하는 거죠. 그렇게 쓸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강력한 가능성이 될 것인데, 그런 사람들한테는 희망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건 또 다른 노력을 필요로할텐데, 훨씬 쉬워진 건 사실이죠. 계속 자본에 의해서 깨져나가기는 하지만, 넵스터라든지 소리바다라든지 동키 같은 것들을 통해서 하는데, 동키는 너무 느려서 못해먹겠더라구요. (웃음) 어쨌든 가능성은 분명히 보여주는 거니까, 그런 것들을 통해서 소유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지잖아요. 소유라는 것을 넘어서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공유하게 됐을 때 사람들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하게 해주는 사례였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것을 자본은 끊임없이 다시 절단하고, 다시 자본으로 재영유하려고 하는 거겠죠. 소리바다나 벅스 같은 것을 문닫게 하고, 자기들이 돈을 받고 팔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거 문닫는다고 해도 끊임없이 또 다른 탈주선들이 만들어지겠죠. 네트워크는 그런 탈주선이 범람할 수밖에 없게끔 인터넷 구조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갖는 가능성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관계들을 구성하고, 활동을 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면 중요한 희망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 - 자본이 인터넷을 통한 MP3 유통을 견제하려고 하는 시도도…….

이 - 사실은 견제해서 자기네가 돈 받고 팔겠다는 거잖아요. 지금은 그것들을 빼앗기 위해서 ‘하지마라’라는 방식을 쓰지만, 자본이 가지고 있는 전략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벅스나 소리바다에서 하는 것들을 자기들이 돈을 받고 하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자본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영유하는 거죠. 그들의 창조성을 자기 것으로 착취를 하려고 하는 거죠. 그 경우에는 또 다른 탈주선들을 만들 수 있는 거겠죠. 그런 것과 관련해서 지적 소유권에 관한 투쟁, 카피레프트 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카피라이트는 굉장히 유례없이 확대되고 있거든요. 19세기에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해도 특허권이 인정이 안됐거든요. 지금은 이미 있는 원소의 약간의 사용법만 바꿔도 특허권이 인정이 된다구요. 얼마나 황당해요. 카피라이트라고 하는 것도 그런 점에서 절대적인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계속 달라져왔는데, 지금 같은 경우에 정보라든가 이런 게 중요해지는 만큼 카피라이트도 훨씬 더 확대되고 있다구요. 인텔 인사이드에서 인사이드 집어넣은 것을 인정해달라는데, 말도 안되는 거잖아요. 단어의 점유권을 갖겠다는 건데, 이런 것에 대해서 적극적인 운동이 필요하고, 사실은 그 운동이라는 게 법적인 대결로 이기기 힘드니까 수많은 탈주선을 그릴 수밖에 없겠죠. 법적으로도 할 수 있으면 좋구요.


지 - 어떤 의미에서 자본이 그런 방식의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도 문제가 있지만, 대중들이 남이 힘들게 만든 무형의 지적인 가치에 대해서 '저건 공짜로 써도 돼'라고 하는 방식도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 - 그것도 틀림없이 사실이죠. 그런데 그것에 관해서는 개인으로 접근을 해버리면 해결할 가능성이 없는 것 같아요. 소유자와 사용자 이렇게 접근해버리면 해결할 가능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소유권을 확보해서 카피라이트를 인정해주는 것 밖에 대안이 없다는 거죠. 그것은 전제가 이미 개별화된 사용자와 절대화된 소유개념 이런 게 있어서 그런 것 같고, 그런 것들을 사회적 비용을 통해서 예를 들면, 무슨 사이튼가 보니까 스파이웨어 프로그램을 무료로 주고, 기증을 받는다는 란을 마련했더라구요. 이런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이미 그런 것들에 적응해가는 방식을 찾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프리웨어를 내놓고서 그 다음에 지금은 많은 경우가 광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식의 운영방식 이런 것을 생각하잖아요. 음악을 제공하는데도 많이 그런데, 음악이든 뭐든지를 만들어내는데도 그런 식의 비용을 사회적으로 충당하는 방식, 국가적으로 세금을 가지고 충당하는 방식 이런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인 충당 방식을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유와 이용이라는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회적 이용과 사회적 소유라는 관념으로 접근해야지, 개인적인 소유를 전제로 해서 사회적 이용을 문제를 삼으면 답은 뻔한 거죠. ‘돈내고 개인적으로 이용해야 된다’ 이렇게 되는 거니까 전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지 - 인터뷰를 하기 전에도 만만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워낙 저작도 많으시고, 공부도 많이 하신 분이라 제가 턱없이 부족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금까지 책을 몇권 정도 내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이 - 잘 모르겠는데요.


지 - 비정규직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노조가입률도 낮은 편이고, 노동자의 조직적인 대항이라는 면에서 좀 무기력해보이기도 하는데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 저는 모르겠어요. 한국이 경제적으로도 소위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구요. 노동운동도 비슷한 거 같아요. 그와 나란히 민주노총의 경우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불법단체에서 이제는 국가의 파트너가 되고, 노사정위 같은 게 잘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와 같이 얘기해가는 파트너가 되었죠. 제도화된 거죠. 제도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제도가 주는 안정성 같은 것들을 확보하고, 제도가 주는 이득을 확보하게 되는 거거든요. 민주노총 사무실 보증금을 국가에서 얼마간 대준 것도 대표적인 예겠죠. 그런 것뿐만 아니라 제도화시켰기 때문에, 그런 것이 주는 안정성은 그런 직접적인 시여물만으로 한정되지는 않죠. 그런 경우에 어디나 어김없이 나타나는 게 제도화되고 안정성 있는 부분의 노동자들, 그리고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 특히 외국인노동자들과의 관계 여기에서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른바 노동자 안에도 다수자와 소수자가 갈리게 되는 거죠. 회사도 크고, 노조도 빵빵하고, 노총에 가입도 되어 있는 이런 메이저한 노동자들과 그렇지 못한 마이너한 노동자들의 분할이 나타나는데, 저는 그런 분할이 중요한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야 되는데, 사실은 옛날에 한국통신노조가 대표적인 경우가 되겠죠. 비정규직 노조가 천일동안 싸움을 하고 있는데, 한 번도 찾아가보지 않은. 한국통신노조는 굉장히 격렬한 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아주 훌륭한 노조였거든요. 대표적인 노조중의 하난데, 그렇게 됐다구요. 그게 어떻게 보면 하나의 환유 내지 상징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상황을 응축해서 보여주는데, 그런 조건들이 제도화되면 될수록 노동조합의 운신의 폭은 법적인 방식으로 코드화되게 되어 있는데, 그 경우에는 법의 밖에 있는, 당장 외국인노동자는 존재 자체가 법에 의해서 보호를 못받게 되어 있다구요. 불법체류자들이잖아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대부분 그렇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워낙 중요하게 부각되서 해결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요. 마이너리티와의 문제, 노동자 안에서 마이너리티의 문제, 나아가서 사회적인 마이너리티 전체의 문제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앞서서 끌고나가고 껴안고 해결하려고 한다면 노동조합의 영향력은 가입되어 있는 노조의 폭을 훨씬 넘어서 긍정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안정성,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려고 했을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영향력 이런 것들은 이미 그안에 기득권층이 된 다수적인 노동자들 사이에 스스로 가둬버리고 침몰해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큰 섬이 되겠죠.


지 -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회관계는 오지 않고, 자본주의는 전자본주의적 관계가 해방된 사회로 가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통과해야할 경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의 혁명가들이 부르조아 혁명을 기획해야 하는 기이한 결론으로 이어졌다”고 하셨는데, 지난 대선 과정을 시민혁명 내지는 부르조아 혁명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그 단계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분들이 있었고, 민주노동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비판적지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그런 변화가 와야 그 다음의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고, 그게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자리잡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이 - 그런 식의 생각을 로자룩셈부르크는 ‘벽돌하나씩 빼서 집을 부수겠다’는 식의 발상이라고 비판을 한 적이 있었고, 카프카 같은 경우는 무한한 연기라고 했죠. 이거, 그 다음 거, 그 다음 거 그러면서 결코 끝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언제나 목표를 지연시켜버리는 그런 결과를 야기하는 거죠. 그런데 과연 근본적으로 그런 단계라는 게 있는 건지, 있어야 하는 건지, 적절한 건지 저는 거꾸로 되물어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오히려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게 어디나 철의 법칙으로 있다는 생각 속에서 러시아에서 맑스주의자들이 분명히 자신들은 꼬뮤니스트나 소샬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 혁명을 기획해야하는, 그래서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난감한 상태에 빠진 거 아니예요? 충실한 맑시스트였던 멘셰비키가 충실했기 때문에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생각 자체가 정말 너무나 법칙의 내부성에 사로잡혔고, 혁명이라는 것을 순차적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 속에 빠져버렸던 것 같아요. 거꾸로 저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프랑스 혁명이 부르조아 혁명이었나? 왜냐하면 이미 부르조아들은 절대주의 시기에도 꼴베르니 하는 사람들이 모두 부르조아였다구요. 대부분의 지배계급이 부르조아였고, 절대주의 왕정조차 사실은 자본주의 영토국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구요. 영국도 마찬가지거든요. 청교도혁명때 부르조아들 간에 이권을 나눠먹기 위해 싸우기는 했지만, 봉건세력과 부르조아가 싸웠다는 건 믿기 힘들더라구요. 다시 공부를 해보니까. 그러니까 정말 부르조아 혁명이었던가? 그렇다면 사회주의혁명이었다는 거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혁명에 부르조아 혁명이나 사회주의 혁명 하나의 이름을 붙이는 게 가능한가, 실제로 청교도혁명이나 거기서도 보면 수평파나 이런 사람들은 프로레타리아적 성향을 갖고 막 간다구요. 프랑스 혁명의 경우에는 부르조아들이 시작했지만, 계속 바뀌잖아요. 계속 하나하나 목들이 베어나가고, 농민들이 우루루 들어가면서 농민혁명의 성격도 강해졌고, 실제로 강한 농민혁명을 했었죠. 토지혁명을 했으니까. 프로레티리아적인 성격도 있었구요. 복합되어 있었던 거고, 복합되어 있던 과정에서 어느 계급이 주도적으로 끌고나가느냐에 따라서 때로는 농민혁명이 될 수 있고, 때로는 프로레타리아혁명이 될 수도 있고,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른바 부르조아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가, 그렇게 생각을 해요. 결국 그렇기 때문에 결국 혁명이라는 것은 정해진 단계가 없고, 있는 최대한으로 밀어붙일 때에만 혁명의 성과는 최대한 얻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레닌이 거의 본능적인 정치적인 감각을 발휘했다고 생각을 해요. 러시아혁명 발생했을 때 인민혁명 개념에서 지금도 역시 그 점에서는 레닌이 혁명에 관한한 탁월한 탁견을 가지고 있었고,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오히려 적절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떤 혁명이든 어떤 사건이든 간에 각자가 최대한 하지말래도 하는 거니까, 어느 파든 간에 자신이 예를 들어 프로레타리아라고 생각한다면 최대한 프로레타리아적이려고 해야 할 것이고, 부르조아라면 최대한 부르조아적이려고 해야겠죠. 그런데 거기서 프로레타리아가 ‘우리가 거기까지 가도 되나’하고 막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혁명이라는 것들에 어떤 것들을 자의적으로 대응시켜놓는데서 나온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지 - 비슷한 맥락일 수 있는데요. 대통령 탄핵이 되었을 때 많은 분들이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분노를 했구요.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근본적으로 볼 때 노무현 정권은 타도해야 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요.

이 - 결과적으로 탄핵된 게 잘된 거 아니었나요? (웃음) 그런데 그것은 미안하지만 심하게 말하면 역사도 이론도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생각을 해요. 정치를 몰라서 하는 얘기지, 아무리 입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면 레닌은 프로레타리아였지만, ‘부르조아 혁명나면 좋지, 왜냐하면 짜르보다는 나으니까’ 이런 입장을 갖는 거 아니예요. 예를 들어서 김영삼, 김대중 이런 분들이 혁명이나 이런 걸 해줄 거라고 전혀 믿지 않았지만, 전두환 노태우보다 나은 건 사실이잖아요. 그분들 대신에 노태우나 전두환이 다시 들어선다면 문제가 심각한 거지, 싸워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 쟤들은 근본적이지 않으니까 '노태우, 전두환이나 김영삼, 김대중이나'라고 하면 아무것도 할 이유가 없어져요. 오직 내가 해야 될 것 말고는 세상에 할 일이 없다는 게 되거든요. 세상을 정말 편하게 사는 방식인지는 모르겠는데, 허탈하게 사는 방식이죠.


지 -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는데, 그런 표현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뜻인가요?

이 - 제가 보기에는 그건 노무현을 혁명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타도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지 - 현실적인 보수정치인인데……. (웃음)

이 - 제가 보기에는 단순한 보수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예전에 『시네21』에 칼럼을 썼던 적도 있는데,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정치지형이 변하는 것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정확하게 파악을 했고, 흐름을 정확하게 탔고, 그 다음에 중요한 전략적 거점들, 인터넷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구요. 그것이 좋든 싫든 간에 그 사람의 큰 장점이라구요. 정치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클 수 있는 장점이었기 때문에 느닷없이 대통령이 된 것 아닙니까? 그건 좋은 싫든 인정해야 한다구요. 저는 노무현과 정치적 입장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건 사실 아닙니까? 그건 인정해야지, 그런 점에서 다른 정치인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가능한 거죠.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이 혁명을 할 것이라고 기대를 한 적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타도는 무슨 타도,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이고, 그럴려면 사실은 노무현에 대한 지지보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노무현의 왼쪽에서 비판을 해줘야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구요. 왜냐하면 정치라는 것은 언제나 세력대결 속에서 타협으로 발생하는데, 대통령은 타협의 지점이거든요. 최종적 타협의 지점으로 대통령이 결정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내가 노무현과 동일시되어 있으면 현재 노무현과 한나라당의 싸움에서 중간지대로 노무현이 밀려가게 되어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정말 노무현을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노무현을 왼쪽에서 비판을 해줘야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한나라당한테 지금 입장이 자꾸 이렇게 가야하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을때 자기 입장도 유지할 수 있다구요. 미국과도 마찬가지죠. 밖에서 싸워주지 않는데, 노무현이 어떻게 파병중단을 하냐구요. 그런데 노무현 지지한다고 하면서 파병결정을 지지해버리면 대통령은 할 게 없어요.


지 -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게 아니더라도 글쓰는 사람들이 원칙적으로 얘기를 해줘야 대통령의 선택의 범위가 많아질텐데요.

이 - 그러니까요. 노무현 대통령을 보호하는 방법은 왼쪽에서 자꾸 쏴 줘야하는 거라니까요. 그래야 저쪽으로 안끌려간다구요.


지 -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걸 모르고 자꾸 딴소리들을 하니까. (웃음)

이 - 미안한 얘기지만 정치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 그래요. 그 사람들은 공부를 해야 된다니까. (웃음) 남의 생각에 대해서도 귀를 열어놔야 되는데, 팬클럽하고 비슷한 거죠. 스타들 팬클럽은 지지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정치인 팬클럽은 지지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제대로 승리할 수가 없어요.


지 - 막말로 음악이야 안들으면 되는 거지만 정치는 그렇지 못하니까요.

이 - 이건 반대자가 있는 거잖아요. 반대자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반대자가 반대편에서 이 사람을 비판하는 게 이 사람에 대한 유효한 지지일 수가 있어요.


지 - “자본에 의해 통제되고 이윤에 의해 지배되는 생산과는 다른 생산의 잠재적인 힘이 자본 자체에 의해 성장하지만, 그것은 자본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변환을 통해서만, 어떤 종류의 '혁명'을 통해서만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그 혁명이란 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 자본주의적인 배치 이런 것들을 넘어서는 거죠. 그런데 이제 예전에는 자본주의적 배치, 자본주의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것을 국가관계의 변화를 통해서 생산관계를 바꾸고, 법을 바꾸고, 소유권을 바꾸고 이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것도 한 경로일 수는 있지만, 그럴려면 국가 전체가 바뀌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그거만 해야 하니까. 그게 아니라 국지적인 범위에서도 자본주의적인 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예를 들어 생산수단이 사유화되어서 어느 한 자본가가 소유하지 못하는 생산 수단이 많잖아요. 인터넷이 대표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접근이 자본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열려 있잖아요. 그런 조건 때문에 사실은 비자본적인 관계구성물을 만들고 거기에서 이것을 생산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들이 가능하잖아요. 이런 조건들을 떠올려본다고 하면 전면적인 자본주의의 변화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조차도 비자본주적인, 저는 그래서 그것을 자본주의 외부라고 부르는데, 자본주의 안에 수많은 외부를 만들어내는 것, 이런 것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런 것을 꼬뮌, 꼬뮌주의라고 부르고, 꼬뮌적인 장을 모든 영역에서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 - “단순상품생산 내지 소생산에서 비롯되는 국지적인 자연발생적 교환의 장으로서의 시장과 기아와 결핍을 통해 강요되는 전면적 교환의 장으로서의 자본주의적 시장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멀쩡한 고기와 덫에 놓인 고기를 구별 못하는 너구리보다 더 한심한 일이다”고 하셨는데, 이미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 시장하면 전부다 자본주의적인 시장을 말하고,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굶겨라. 그러면 지가 아쉬워서 할 것이다’ 이거 거든요. 실질적인 의미는. 근데 이제 시장이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거죠. 5일장 같이 우리가 갖고 있는 장시만 해도 그런 것이 아니죠. 교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죠. 교환에 머물러서는 안되겠지만, 교환조차도 자본주의적인 교환, 자본주의 시장에서 벌어지는 교환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교환도 있을 수 있죠. 독일에 어떤 분이 그런 운동을 하던데요. 물건 교환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들 많잖아요. 남들 필요한 걸 주고, 자기가 필요한 것으로 교환을 하면서 살아가거든요. 일종의 벼룩시장도 아니고, 교환을 하는 건데, 이 사람은 그런 것을 통해서 교사를 하다가 그것도 그만뒀어요. 생계를 위해서 일을 안하겠다고 그런 교환을 하면서 살아가거든요. 갖고 있는 거 하고, 다른 활동을 하고, 수입이 생기면 그걸 가지고 또 뭘 하고, 이런 종류의 교환은 자본주의적 교환과는 완전히 다른 경우죠. 지역 통화 같은 것도 마찬가지인데, 지역통화가 여러 가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화폐를 넘어선 화폐, 비화폐적인 화폐 그래서 예를 들면 렛츠든 퓨쳐머니든 이런 형식을 통해서 인터넷에서 ‘나는 이 물건 지역통화 얼마에 사겠다’ 이런 식으로 잔고를 가지고 만들어가잖아요. 그리고 통화잔고라고 하는 것은 양음으로 무한대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은 큰 의미가 없는, 하지만 음의 잔고가 큰 사람은 ‘남들한테 많이 받은 사람이구나. 좀 문제가 있네’, 양의 잔고가 큰 사람은 ‘이 사람은 많이 주는 사람이네. 이 사람이 하는 일은 엔간해도 가서 도와줘야지. 나도 많이 줘야지’, 그런 점에서 새로운 조정기능을 하기도 하는 이런 가능성 같은 게 있거든요. 새로운 종류의 교환, 활동의 교환, 갖고 있는 소유물의 교환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는 셈이고, 넵스터나 동키 같은 것도 교환이잖아요. 비대칭적 교환이죠.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거니까. 그런 식으로 자본주의와는 다른 종류의 교환의 가능성들이 굉장히 넓고, 저는 근본적으로 선물의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선물의 이론, 교환이라는 개념을 벗어난 선물의 개념이 좀 더 발전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자본주의와는 다른 종류의 교환관계, 경제 이런 것들이 적어도 국지적인 범위에서 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많은 사례들이 보여주죠.


지 - 자본주의가 복지를 외면하고 실업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들을 우리하고 다른 고통스러운 존재로 남겨둠으로서 나머지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하는 것일텐데요.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북유럽쪽은 미국보다 복지도 잘되어 있고, 다른 대안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요.

이 - 자본주의가 원래 그랬죠. 사회주의 영향이 한편 크고, 다른 한편에서는 케인즈주의 같이 자본주의가 생산이 비대화되면서 나타났던 그런 조건 이런 것도 영향이 있고, 이러면서 복지 이런 것들이 나타난 건데, 사실 그 비용이 자본가들에게 부담이 되면서 줄이라고 요구를 하는 게 신자유주의잖아요. 정부의 최소화 이런 걸 요구하는 거고, 근본적으로 유럽의 경우에도 확실히 미국보다 낫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는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나 이런 것들은 계급투쟁 이런 것에 의해서 획득된 면이 크거든요. 사회주의도 그렇고, 케인즈주의도 그래요. 케인즈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어떻게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완화시킬 것인가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의식 중의 하나였거든요. 그런 점에서 운동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지라는 것이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전부 따낸 것이었다는 점을요.


지 - 지금까지의 참여 정부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 - 예전에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1주년 때 원고지 1매로 코멘트해달라고 해서 해준 적이 있는데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되는 과정은 기존 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실험적인 요소들이 많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가진 힘 이런걸 보여주는 실험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내용이 뭐든 간에. 그렇게 올라왔고, 노무현 자신도 나름대로 개혁에 대한 상이 있었을텐데. 사실은 굉장히 힘든 조건 속에 있었죠. 과반수를 넘는 보수야당, 적들이 되어버린 거대언론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일관되게 자기 입장을 밀고 나가는데 실패를 함으로서 우왕좌왕하는 꼴이 되어버렸고, 적들에게는 호구 잡히고, 지지자들에게는 비난받는 이유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탄핵되고, 선거를 거치면서 어떻게 보면 힘의 재조정이 발생을 했고, 새로 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조건들이 마련되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초심을 회복할 필요가 있고, 이제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을 해야 되는데, 우왕좌왕하던 시절의 연속선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많이 벗어나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우왕좌왕하기 전 좌충우돌할 각오를 하고 돌파를 할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이 마련되었는데, 거꾸로 예전에 없던 조건인데, 조건이 바뀌었는데, 생각은 또 예전에 없던 시대에 우왕좌왕하면서 ‘불가피하게 이렇게 밖에 할 수밖에 없어’라는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현재가지고 있는 조건의 잠재력도 자기가 제대로 사용하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지지자들도 약화될 가능성이 크고, 보수주의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길들이고, 포섭하고, 포획하는 테크닉들을 사용하겠죠. 파병결정 때 보여준 것처럼. 그런 점에서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정부가 정신을 차려야 될 때 같아요.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신들이 획득한 조건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해요.


지 - 영화에 관련된 책도 내셨죠? 요즘 어떤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나요?

이 - 잘 못봐요. 영화관 가본지가 너무 오래 됐어요. 요새는 비디오도 못보고.


지 - 「맬서스의 유령」이라는 글에서 “나는 더욱 확신한다. 양심적 거부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군대에 가선 안 된다는 것을. 없어져야 할 것은 병역거부자가 아니라 군대라는 것을. 그리고 기원한다. 세상을 오직 적과 아군으로만 보게 하는 모든 종류의 전쟁이 사라지기를. 경쟁과 적대 대신에 공생과 우정, 상호부조를 가르치는 삶의 방식이 출현하고 확산되기를”이라고 하셨는데요. 지나친 낭만주의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개혁적이라고 했던 열린우리당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고 했고, 이라크 파병 역시 현실론을 들어서 강행하려고 하는데요.

이 - 모든 종류의 개혁적인 요구는 기존 정부나 여당의 입장에서 보면 항상 시기상조예요. 그 시기는 언제 오느냐 하면 더 이상 안할 수 없을 때 이때 시기가 오는 거 거든요. 그 시기는 누가 만드는가 하면 정부에서 만드는 게 아니고, 그것을 요구하고 싸우는 사람들에 의해서 시기는 결정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기상조라는 말은 그것을 위한 투쟁이나 운동이 미약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되겠죠. 그래서 그 말은 역설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열심히 싸워 달라. 그래야만 해주겠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고, 아마 그건 다른 사안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 - 김규항씨가 말한 개혁의 근본적인 한계와도 통하는 것 같은데요. ‘개혁은 기득권이 밀리고 밀리다가 더 이상 어쩌지 못할 때 선택하는 수단’이라는 얘기를 하시던데요.

이 - 대부분 다 그렇죠.


지 - 저는 대선 과정이나 이런데서 현실적인 선택을 한 셈인데, 지금은 전시 상황이 아니라고 보고 좀 더 긴 전망을 여러분들한테 들으려고 하던데요. 양쪽 진영에서 모두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구요. ‘넌 어느 편이냐?’고 묻기도 하고. (웃음) 정치적 상상력도 부족한 것 같구요. 전 요즘의 혼란스러운 모습들을 보면서 만약에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합니다.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잠시 좌절감에 빠졌겠지만, 나름대로 평화개혁진보세력이라는 묶음들이 견고하게 세력을 유지하고 있을 것 같구요. 3∼4%의 승리를 가지고 이회창 역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는 노무현의 승리와 민중의 승리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민중의 승리라는 측면에 더 무게를 실어서 생각한다면 이회창이 되었더라도 역사를 후퇴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파병반대라든지 다른 개혁적인 요구들도 거세게 일어났을 거구요. 말씀하신 대로 변화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싸우는 사람들의 요구니까요. 홍세화씨의 말대로 열린우리당이 국민들의 변화와 개혁의 열망을 수렴해서 소비해버린 측면도 있는 것 같구요. 의도와는 상관없이 과제들의 무한한 연기가 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파병 문제만 하더라도 이회창 정부였다면 진보개혁진영의 대대적인 파병반대, 반전운동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이회창도 일정 부분 수렴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이회창 같은 경우 별 의심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연스럽게 이회창은 보내고 싶지만 국민들의 반대로 보내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보낸다고 해도 생색은 날 겁니다. 이회창은 미국에게 ‘니들 나 못믿어? 믿잖아. 그런데 국민들이 난리를 쳐서’라는 핑계를 댈 수 있겠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어떤 경우에도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파병을 하지 않게 되면 ‘저 정권으로부터 우린 막아냈어’라고 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에도 전투의지가 더 생기겠죠.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나 니 친구인 걸 믿어달라’고 끊임없이 먼저 사랑고백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잘 모르겠는데, 제대로 보여줘 봐’라고 하는 상황에서 파병을 하더라도 별 생색이 안나는 거 같구요.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자존심의 상처를 많이 입었구요. 예전에 여중생 촛불시위 때 노무현은 의심받을까봐 참석하지 못했고, 이회창은 표를 얻으려고 망신을 당하면서 참여했거든요. 정치란 게 선의만 가지고는 안되는, 복잡한 것이란 생각이 자꾸 듭니다. 우리 국민의 역량이 커졌지만, 노무현 같은 대통령을 맞기에는 시기상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근소한 차이로 진후 야당의 유력한 정치인으로 다음 선거에서 이겼다면 힘 있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일부에서는 아마 이런 상상조차 불경스러운 상상이라고 할 겁니다. (웃음)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해석해주면 좋겠는데.……. 일부조사에서 국정수행지지율이 18%인가까지 떨어진데 대해 비교적 참여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이었던 한완상 총장조차도 ‘대미발언 등에 있어서 국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으셨는데요.

이 - 자기 생각하고 다른 견해를 만났을 때 대부분은 자기 견해에 따르면 자기 견해가 옳은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못벗어나면 자기 견해 안에서 절대로 못벗어나는 거죠. 자기가 생각하는 범위에서 못벗어나는 거죠.


지 - 제가 그렇다고 해서 참여정부가 잘못되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을 자기를 공격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이 - 그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동일시되어버렸을 때는 그 사람이 가진 단점을 못본다는 뜻이거든요.


지 - 지금에 와서 지지 세력들이 흩어져서 싸우다가 다음 선거에서 지는 것보다는 이 힘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한 4%를 졌다고 하면 노무현의 정치적 위상은 그만큼 커질 거고, 그때 되면 우리 자체의 역량도 커질 거고, 그런 식으로 '만약에'라는 상상을 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이 - 저는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한 게 노무현 정부 입장에서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노무현이나 그 정부에서 한나라당과 대결할 때는 니 견해와 내 견해의 대결이거든요. 그런데 훨씬 더 왼쪽에서 얘기하는 게 있으면 '봐라. 여기는 이러잖아'라고 하는 것 때문에 노무현이 가지고 있는 위치를 보수주의자들한테 얘기하기가 편해지거든요.


지 - 그렇죠. 

이 - 그런 게 일종의 새옹지마, 정치의 역설 같은 것인데, 정치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미묘한 감각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레닌은 정치를 아트라고 불렀을텐데, 그런 예술가적 감각이 필요한 건데, 그런데 대해서 예를 들면 노무현 지지자들도 그런 감각을 키우려는 노력, 넓게 생각하고, 넓게 보고 멀리 보는 감각을 키우지 않는다면 자기가 좋아하고 지지한다고 하지만, 예를 들어 애를 좋아하고 이뻐만 해서 애들 망치는 경우가 있잖아요. (웃음) 노무현 대통령이 애라는 게 아니라 정치가 바로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지 - 다른 정치인에 비해서 대중들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건데, 오히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공격을 너무 많이 받다가 보니까 그런 감각이 무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민주노동당과 대립각을 세울게 아니라 민노당 지지자들의 일부가 아무리 탄핵을 외친다고 해도 탄핵을 시킬 힘이 없거든요. 기분만 좀 나쁠 뿐이지, 그러면 그걸 좀 웃어넘기면서 다른 쪽에서 오는 공격을 민주노동당을 통해 해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개혁을 하려고 할때 빨갱이라고 누가 공격을 하면 '저기 봐라. 저런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더러 빨갱이라니'라고 할 수도 있구요. (웃음) 그런 식의 유머와 여유를 회복했으면 합니다.

이 - 맞아요. 유머와 여유가 있어야 해요.


지 - 그런 걸 많이 잃은 것 같습니다.

이 - 민노당이 탄핵을 얘기하는 게 진짜 탄핵을 하고 싶어서 그러겠어요. 파병한 것에 대해 비판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거잖아요. 또 그렇게 해줘야 그 다음에 뭘 하기가 좋은 거잖아요. 그걸 이해를 못하면 정치를 못하죠. 민노당이 노무현을 지지해버리면 얼마나 우스워지냐구요. 노무현 대통령이 민노당과 똑같은 좌익이 되버리는 건데, 그럼 보수주의자들과 싸울 때 어떻게 싸우냐구요. (웃음)


지 - 제1당도 되었고 하니까 조금 더 큰 틀에서 정치를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이 - 그럼요. 자기들이 가진 게 굉장히 큰 건데, 이건 단순히 의석수가 아니예요. 탄핵 이후에 사실은 보수파들에서는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썼기 때문에 그러다가 박살이 났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예요. 노무현이 어떻게 해도 탄핵까지 다 써먹고 깨졌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거꾸로 그걸 통해서 대중들을 쫙 모아줬잖아요. ‘심청이’ 이상 가는 희생플라이를 해준 건데, 이런 조건 속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할 건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제 예전에 안하던 타협을 이제부터 하기 시작하니까 해야 될 걸 놓치는 거죠.


지 - 세상에 16대 때 방탄국회라고 그렇게 욕을 먹고도.

이 - 진짜 그거보고서 열린우리당이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린우리당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거는 감각이 없는 거예요. 감각이. 도덕이전에 감각이 없어요. 자기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처세해야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는 거죠. 무능함의 징표예요. 어떻게 그 짓을 하는지. 그러니까 상대편한테는 또 호구 잡히는 거죠.


지 - 파병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이 - 당연히 파병하면 안되지. (웃음) 일관된 반전주의자인데요. 우리가 딴 건 안해도 반전집회할 때는 파병반대 집회 있으면 30명씩 깃발 들고 나가서 시위를 했는데요. 현실참여 안한다고 하는데, 집회 있으면 많이 나가요. 촛불집회 사람들 맨날 나가서 했구요.


지 - 미국에 대해서 필요이상으로 공포감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부도 마찬가지고, 국민들도 그렇고…….

이 - 사실 미국은 지금 어느 정도 호구 잡아도 되거든요. 미국 안에서도 호구 잡혔고, 그 다음에 유럽에서 완전히 호구 잡혔잖아요. (웃음) 시라크하고, 쉬레더한테 욕먹으면서 다니고 있고, 실제로 미국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아요. 유로가 만들어진 게 결정적인 거예요. 유로가 만들어졌다는 건 이전에는 달러가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 장악력이 떨어졌다는 뜻이거든요. 유로라는 하나의 영역권이 생겼다는 뜻이고, 정치적으로도 미국과는 대항할 수 있는 거점이 생겼다는 뜻이거든요. 미국이 약화되었다는 뜻이예요. 그런 것인데다가 더구나 이라크 들어간 것은 미국 외교사에서 최대 실수로 남을 겁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이라크를 공격했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그걸 통해서 유럽이나 전 세계에서 실제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고리들을 다 놓쳐버렸거든요. 미국인 관점에서 본다고 하면 미국 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치명상을 입은 셈이죠. 자충수를 둔 거라구요. 향후 전망도 뻔하다니까요. 미국이 당분간은 계속 실수할 수밖에 없어요. 부시 아마 힘들 겁니다. 재선되면 미국으로서는 더욱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겁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서 좀 가볍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구요.


지 -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압력을 넣는 매카니즘이 단순하지 않을텐데, 파병 안하면 전쟁 분위기를 일으켜서 주가 떨어지고, 이러다가 나라 망한다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이 - 얼마나 단순무식한 견해냐구요. 미안한 얘기지만, 무식하다고 사람을 비난하는 건 안되지만, 전쟁 걱정들 많이 하는데 한반도는 이라크랑 달라서 전쟁이 쉽게 일어날 수가 없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 전쟁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중국이나 소련, 일본 세계 최강대국들이라구요. 자기 나라들에 영향이 직접적으로 있는데, 미국이 어떻게 전쟁을 일으키겠어요. 쉽지가 않다구요. 아타의 역량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되는데, 자신이 가진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적이 가진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상황에 대해서 적절하게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걱정하는 바를 사실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판단이 나타나는 거죠.


지 - 이런 주장은 《조선일보》나 한나라당도 하기 힘든 주장인데,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다보니까 지켜주기 위해서 이런 말도 안되는 파병 찬성 논리를 들이대는 분들이 있는데요. 난감하더라구요.

이 - 노무현 중심으로 모였던 대중들의 흐름이 고여서 썩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 감으로는. 그 대중의 확 흘러가면서 예상치 못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거 거든요. 지금은 그 흐름이 거기서 맴돌면서 썩어가고 있는거예요. 그 흐름의 출로를 만들지 못하면 그렇게 될 겁니다. 


지 - 그러다보니 엄한 민주노동당 사람들하고만 싸우고 있고…….

이 - 그러니까 얼마나 바보예요. 아타를 못가리는 거라니깐. 민주노동당이 노무현에 대해서 비판하지만, 제가 아는 한 노무현에 대해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 편인데, 우리랑 포지션이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도 그래요. 민노당에서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하면 노무현이 곤란해지는 상황이라구요. 이걸 이해 못하면서 정치를 한다고 하면 정치를 떠나는 게 좋다구요. 그런 태도는 노무현이 정치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죠. 바보짓이예요. 그거는.


지 - 여기 계신 분들 말고 다른 지식인분들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않으십니까?

이 - 많죠. 많은데.(웃음) 김세균 선생하고도 친하고, 굉장히 좋아해요. 꼬뮈날레 그 일도 하다가 회의 때 여기 전체 세미나가 있어서 못갔는데, 강내희 선생이나 오늘 문제가 됐던 심광현 선생이나 굉장히 친하고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생각이 조금 다르다 하더라도 어쨌든 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 포지션을 생각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시는 분 드물어요. 여기저기 친한 사람은 많은데, 거의 못 만나요. 시간이 없어요.


지 - 어차피 다른 방식의 참여를 하고 계시지만, 조금 더 연구성과가 축적되면 사회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개입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 - 지금으로서는 평생 이렇게 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웃음)


지 - 예전에는 운동하다가 감옥도 갔다 오셨고, 이를테면 동적인 삶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지금 어떻게 보면 그것에 대비해서 정적인 삶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 그거는 진짜 시각전환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 여기 있는 어떤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정말로 현실 속에서 현실을 바꾸는 운동을 하는 거라구요. 그거에 비하면 예를 들어서 나 같은 사람이 정치에 관련된, 시사에 관련된 글 쓰면서 살아가는 거 정말 쉬운 일이예요. 신문 조금 보고, 인터넷 뒤지면 정보 많잖아요. 신문 몇장 보면서 열받는 대로 글 쓰고 하는 거 아주 쉬운 일이예요. 저는 거꾸로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사람들과 같이 이거 운영하는 거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이거 운영하면서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하거든요. 그게 얼마나 힘든데, 그게 자리잡아 가면서 여기를 통과하는 사람들이 여기를 통과하면서 자신의 신체와 삶이 꼬뮌주의적 방식으로 바뀌는 장으로 만들려는 거라구요. 자본주의의 외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고, 제가 해본 경험에 의하면 저도 옛날에 글 써봤잖아요. 이게 몇백 배는 힘들어요. 글 쓰는 건 누워서 떡먹기라니까. (웃음)


지 - 그쪽 분야의 숙련공이시니까. (웃음)

이 - 글 금방 쓴다구. 관심 갖고 쓰면 되는데, 그게 내가 잘하는 건 아닐 거예요. 글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근본적으로 이론 전체와 대결하는 사람은 적잖아요. 저 같은 사람들도 있어야죠.


지 - 한 사람이 수십 년을 노력해야 뭔가 하나 바뀔 수 있을까 말까 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바뀔 수 있을텐데요. 그게 오히려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타겟을 딱 설정해가지고…….

이 - 그럼요.


지 -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즉자적이고, 표피적인 것 같은데요.

이 - 자기 눈앞에 안보이면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랑 똑같은 거라니까. 근데 내 눈앞에 없다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듯이 내 눈앞에 안보인다고 그 사람이 활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랑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적대하게 되요. 그것처럼 불행한 것이 없어요.


지 -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이 - 없습니다. 하하하하.


지 - 특별한 계획은?

이 - 없습니다.(웃음)


지 - 긴 시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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