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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http://www.munhwa.com/culture/200407/02/2004070201012830073002.html자본의 內·外部 구분기준 없어 ‘기계적 잉여가치’ 개념도 오용

이진경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비판 서평

<들뢰즈의 저작 ‘천개의 고원’을 번역한 철학자 김재인씨가 이진경씨의 ‘천개의 고원’ 해설서인 ‘노마디즘’을 비판(계간 문학동네 봄호)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랭카스터대에서 정치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지주형씨가 이씨의 최근작 ‘자본을 넘어선 자본’(그린비)을 비판하는 서평을 보내왔습니다. 문화일보는 이 서평이 생산적인 학술논쟁의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지면에 소개합니다.>


이진경의 신간 ‘자본을 넘어선 자본’의 핵심주장은 자본에 외부가 있다는 것이다. 즉 자본의 논리(공리계)는 순수히 내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외부를 항상 전제한다는 것이다. 별로 새로울 건 없는 주장이지만, 자본이 외부조건 없이 순전히 내적 논리에 의해 스스로 증식할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진경은 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나 효과적으로 전개하는데 실패하였고, 따라서 그가 말하는 자본의 외부란 매우 피상적인 것이다.

첫째, 이진경은 자본의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노동가치론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경제학의 순수 공리계가 등가교환을 골자로 하기 때문에 자본의 가치증식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가치증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노동의 가치화(양화)’, 그리고 가치를 생산하는 특수한 사용가치로서의 ‘노동력의 상품화’라는 정치경제학 공리계의 외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충분히 자본의 외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제4장 1∼3절). 하지만 노동가치론에 고착된, 이론적인 정치경제학의 공리계와,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것을 잉여가치의 원천으로 포섭하면서 변화하는 자본의 실재하는 공리계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외부를 보이기 위해서는 정치경제학 공리계가 아니라 자본의 공리계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고, 변화하는 자본의 내부와 외부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진경은 그런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기준이 없다면 자본의 외부에 대한 어떤 언급도 자의적이 되거나, 아니면 외부의 필요성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에만 근거하는, 실질적 내용이 없는 공허한 주장이 될 것이다.

둘째, 이진경은 들뢰즈-가타리의 독점적 영유와 직접적 비교에 의한 포획이라는 개념을 응용하여 절대-이윤, 상대-이윤 등의 개념을 만들고, 그로부터 노동의 ‘가치화(양화)’와 ‘가치증식’을 사실상 동일시하는 결론에 도달한다(제4장 4∼5절). “가치화과정은 항상 자본에 의한 가치의 증식과정이다”(129쪽). “가치화의 결과는 항상 잉여가치를 포함해야 한다”(149쪽). 이 주장은 가치화만 되면 자본의 (잉여)가치증식이 이루어진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하지만 실제로 잉여가치 실현, 즉 판매는 보장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잉여가치 없는 노동의 가치화란 애초에 가치화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가치실현의 근본적인 불확실성, 즉 ‘목숨을 건 도약’이라는 자본의 외부를 부인함으로써 이진경 자신이 주장하는 관점에 역행하게 된다.

셋째, 인간의 노동 없이 자동화된 기계에 의해 생산된다는 ‘기계적 잉여가치’ 개념(제5장 5절)을 (노동)착취와 연결시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아무리 ‘착취’라는 말을 사용하고, 가치화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노동’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자의적인 어법일 뿐, 이 개념이 가리키는 것은 기껏해야 기계의 착취이고, 실질적으로는 착취 없는 잉여가치다. 이것은 ‘외부’ 없이 내부적으로만 가치증식을 설명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물신주의적 개념들, 즉 ‘착취 없는 이윤’과 ‘스스로 이윤을 낳는 자본’의 개념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 외에도 이진경은 자본주의의 동력을 단순하게 “자본의 욕망”과 M-C-M’의 도식에서 찾고(111∼113쪽), “이윤 없는 생산”, 즉 공황의 경향을 이윤 목적이 없는 “생산을 위한 생산”의 가능성과 억지로 연결시키며(451-452쪽), 심지어는 자본주의에서는 노동하지 않으면 인간으로 규정되지 않는다고 자의적으로 비판(240∼243쪽)하면서도 ‘생존권’에 대한 요구는 ‘구차’하다고까지 묘사한다(270쪽). 더구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초래한 외채가 기업의 채무가 아니라 국가의 채무였던 것으로 오해(309쪽)하는 등, 자본주의의 구체적 현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읽기에 따라 재미있을 수도 있는 책이지만, 맛있다고 불량만두소가 들어간 만두를 권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책도 선뜻 권할 수 없다.

지주형·정치경제학자

기사 게재 일자 200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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