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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위험사회’에서 ‘코스모폴리타니즘’으로 … 동아시아 경험 주목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박희제 경희대 교수 대담
2008년 04월 07일 (월) 10:53:24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오늘날 세계는 경계 넘기 과정이 지배적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 세계는 연결돼 있고 이미 우리는 국민국가 경계 안팎에서 이질적인 문화와 관계 맺고 새로운 원리들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충분히 현실적인 구상이다.”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가 지난 2일 경희대에서 박희제 경희대 교수(사회학)와 가진 대담 자리에서 코스모폴리타니즘의 현실 가능성을 조명했다.


이 자리에서 울리히 벡 교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의 현실적 동인을 국제적 차원의 위험과 다양한 경험이 충돌하고 있는 현실에서 찾았다. “오늘날 나타나는 근대화의 위험은 국민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지구적 차원의 위험”이며, 국민국가 내부에서는 드러날 수 없는 모순들이 세계적 차원에서 드러나면서 세계주의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벡 교수는 위험사회에서 근대성의 원리라 급진화 되면서 근대화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위험사회’, 그리고 ‘성찰적 근대화’ 개념을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한편 울리히 벡 교수는 같은 날 경희대 네오르네상스문명원(원장 김여수)이 개최한 ‘위험사회를 넘어서: 동아시아로부터의 성찰’국제 심포지엄의 기조강연자로 참석했다. 심포지엄은 울리히 벡 교수가 내놓은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는 의제를 중심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동아시아적 경험과 새로운 가능성에 착안해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송재룡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유연하게 변동하는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항해 코스모폴리타니즘 기획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 것인지를 지적했다. 벡 교수가 그것의 가능성으로 제시한 EU의 경험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졌다. 토론자들은 EU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개인들의 규범적 기준과 제도들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터키 가입을 둘러싸고 일었던 논쟁처럼 코스모폴리타니즘 자체도 스스로의 경계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는 일본 오사카대의 기마에 도시아키 교수, 대만국립대의 초우 쿠에티엔 교수가 참석해 위험사회에 대한 동아시아적 경험을 발표했으며, 한상진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포스트 유교주의적 코스모폴리탄 세계관과 성찰적 근대화’를, 정진성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다문화사회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지난달 29일 부인 엘리자베스 벡 에어랑겐대 교수와 함께 방한한 울리히 벡 교수는 서울대 공개강연, 시민사회와의 대화 등 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5일 독일로 돌아갔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대담]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박희제
2008년 04월 07일 (월) 11:39:23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방한에서 울리히 벡 교수는 위험사회의 대안으로 코스모폴리탄적 기획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방한을 계기로 교수신문은 지난 2일 경희대 본관에서 울리히 벡과 박희제 경희대 교수(사회학)의 대담을 가졌다. 그가 위험사회를 관리할 수 있는 대안으로 내놓은 코스모폴리탄 근대화 이론의 현실가능성, 그리고 아시아의 차별적인 근대화 경험이 그에게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견해를 들었다.

박희제(이하 박)= 위험사회의 관리를 위해 코스모폴리탄적 근대화 개념을 제시했다.
울리히 벡(이하 벡)= 근대화가 낳은 위험사회의 위험은 노동문제, 고령화 문제 같은 것들이었다. 이것은 국민국가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날 나타나는 근대화의 위험은 환경위험, 테러라는 지구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코스모폴리탄적 시각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민족주의와 국경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평등, 그리고 차이를 동시에 인정하는 질서다. 개인들이 경계를 넘어 이질적인 타자를 만나고 세계주의 시각에서 그들을 인정하는 것은 배제된 자들을 세계의 장으로 드러나게 한다. 위험사회에 평등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근대화 과정이 될 수 있다.


박= 너무 이상적인 구상은 아닌가.


벡= 코스모폴리탄은 충분히 현실적인 개념이다. 그것이 현실적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오늘날 근대성의 원리가 급진화 되면서 근대의 기반들을 무너뜨리고 있는 징후들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근대가 낳은 개인 인권의 원리, 나아가 개인 자율성의 원리, 시장경제의 원리 등은 위험사회 국면에서 급진화 되어 기존의 틀을 위협하고 있다. 성찰적 근대화 과정은 코스모폴리탄이 현실화하기 위한 토대가 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일종의 ‘경계넘기’의 과정이 지배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세계는 연결돼 있고 이미 우리는 국민국가의 경계 안팎에서 이질적인 문화, 이질적인 언어와 관계 맺고, 또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모폴리탄은 오늘날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충분히 현실적인 관점이다.


박= 코스모폴리탄적 근대성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나.


벡= 물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2006년 펴낸 『코스모폴리탄 비전』에서 저는 코스모폴리탄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질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 안에서 생동하는 질서라고 강조한바 있다. 반면 세계화 시각은 경제 중심적이고 우열을 가르는 것에 입각해 있다. 코스모폴리탄은 차이(difference)들이 공존하는 시각이다. 모든 타자를 포함해야한다는 것이 특징이며, 이로써 위험의 대처와 지구적 정의의 실현이 가능하다.


박= 민족 간, 성별 간 등에서 보듯이 이미 세계구조는 차이로 환원될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벡= 중요한 지적이다. 코스모폴리탄적 시각은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분배의 문제에 대한 조명을 전제로 해야 한다. 배경적 차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와 차별기제들과 관련된 문제다. 모든 차원의 평등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평등이 다층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코스모폴리탄적 시각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일전에 독일에서 노동운동을 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중국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민족국가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야 말로 비현실적이다. 민족국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른 국가에게 문제를 안겨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차별의 기제들은 상이한 경험들이 만날 때 더욱 많이 발견될 수 있다.


박= 코스모폴리탄 성립을 위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벡= 정신병이다.(웃음) 환경문제가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현재의 기후변화는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 내의 사안이 될 수 없다. 물론 자본주의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은 세계화된 자본 앞에서 더 이상 힘이 없다. 민족적 차원의 문제 구상은 어렵다. 국제적 차원의 연대는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을 나눌 수도 있다. 이것은 코앞에 직면한 아주 시급한 문제라 생각한다. 


박= 지식인이 코스모폴리탄적 기획을 위한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 보는가.


벡= 사회학은 이제 공공에 대해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물론 지식인의 역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소 모순적이지만 버락 오바마가 코스모폴리탄 리더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는 미국인 어머니, 케냐인 아버지를 두고 자신은 인도네시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배제된 사람이었지만 지배적 질서를 다시 전복할 수 있는 힘은 코스모폴리탄의 구상과 맞닿아 있다.


박= 코스모폴리탄적 기획을 위해 동아시아 근대화 경험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방문한 지 아직 5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과 동아시아 방문 이후 이론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나.


벡= 물론이다. 유럽과 아시아는 특히 이질적인 근대화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근대화는 단계적이고 연속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와 달리 한국의 근대화 경험은 다양한 형태의 근대화가 동시에 존재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런 이질적인 경험은 새로운 구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시에 깨지고 동시에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유럽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사람들과 교류를 많이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한다. 위험 사회에서 타자와 교류한다는 것은 생각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다. 아시아적 맥락을 포함해 코스모폴리탄 근대화 이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사진·정리 김혜진 기자 khj@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