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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바디우의 들뢰즈

박영기 2000.03.01 17:36 조회 수 : 9175 추천:48

번호 #11 /189 날짜 1999년1월31일(일요일) 15:40:52
E-mail 이름 박 영기
제목 바디우의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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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우는 어느 저서에서 공산주의의 불변항을 이야기하며 국가에 대한 거부 소유에 대한 거부 자유 평등 사랑 등등을 우리들이 붙들어야 하는 공산주의 불변항이라고 하였다
구십 칠년에 바디우가 출판한 들뢰즈에 대한 저서에서 바디우는 들뢰즈의 반플라톤주의가 결국은 재구성된 플라톤주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이것은 로티가 니체의 반플라톤주의가 전복된 플라톤주의라고 지적한 것과 유사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바디우와 로티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지적한것이지만 이러한 전복 해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들뢰즈의 작업은 결코 철학을 해체하거나 전복하려는 작업은 아니었다 오히려 들뢰즈가 지적하였듯이 그것은 온전히 철학적 작업이었고 그것이 시네마에 관한 것이든 문학에 관한 것이든 가따리와의 작업이든 철학적인 작업이었고 철학책이었다
물론 여기서 철학이라함은 브라이언 마수미가 지적했듯이 국가철학안에 예속된 어떤 제도권의 작업은 결코 아니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철학은 세상을 바꾸는 무기이자 세상을 다르게 보고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장도구이다
어느 중세 철학자는 자신을 거인의 어깨위에 있는 난장이라고했다 우리은 대개가 거인은 아니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가 필요하며 그 어깨위에서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여러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다면서 동서 남북의 넓은 시야를 가저야 한다
여기서 나는 들뢰즈와 바디우라는 현대의 두 거인의 어깨를 추천하고자 한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들뢰즈오 바디우는 반플라톤주의와 플라톤주의라는 커다란 두 흐름의 현대적 모습이다
물론 저자들 내부에서도 섣부르게 무슨무슨주의라고 규정내리기 쉽지 않은 부분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상가의 비교 논의는 새로운 운동의 패러다임을 산출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에 충분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맑스가 젊은 시절에 철학적 훈련을 하였듯이 이 니힐의 시대는 강렬한 사유가 필요하다
어쩌면 푸코적인 헤테로토피아의 철학적 체험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취향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까
들뢰즈나 바디우처럼 지난한 철학적 훈련은 새로운 유토피아로서 철학적 헤테로토피아의 구성에 강렬한 자극제가 될것임을 확신한다
바디우에 대한 인터넷 자료중에 들뢰즈 플러스 플라톤을 함께 치면 필로소피라는 항이 나온다 여기를 클릭하면 문서가 하나 있다
프랑스에서는 들뢰즈와 바디우의 비교논의 글들이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