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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헌법재판관을 다시 생각한다

김재인 2004.10.22 19:59 조회 수 : 300 추천:44

편집 2004.10.22(금) 18:59 (한겨레)

  
  헌법재판관을 다시 생각한다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내 주위에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관습헌법이란 말이 왜 튀어나왔는지, 게다가 그 이상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명만 뺀 8명의 헌법재판관이 모두 위헌 결정에 찬성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행정수도 이전은 대단히 복잡한 사안이다. 깊은 연구와 토론을 통해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뒤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지고 찬성과 반대 견지에 따라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공감대의 형성이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당연히 이 논란에 또 하나의 의견을 가지고 끼어드는 것도 무의미할 것 같다. 오히려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보다는 그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헌법재판관의 구성에 대해서 의문을 품은 것은 올봄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탄핵심판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책임을 진 사람들의 면면이 어떠한지 들여다보았을 때 그들이 모두 판검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다시 확인하게 되었고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의아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란 사회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어렵거나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헌법을 바탕으로 판정을 하는 기구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헌법재판관은 헌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중에는 당연히 헌법학자도 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법조 경력이 15년 이상인 사람들만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다는 현재의 규정에 구속을 받기 때문이겠지만, 판사와 검사 출신에게만 탄핵심판이나 수도 이전 같은 중대 사안의 결정을 맡기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하다.

이번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보면서 지난봄의 탄핵심판 때 전국적인 탄핵반대 집회가 없었다면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국민들이 탄핵에 무관심했거나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아서 반대 시위를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탄핵가결 결정이 내려졌을지 모른다. 탄핵을 바랐던 사람들은 헌법재판소가 탄핵사유에 대한 연구보다는 총선 결과를 보고 탄핵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불만을 표하는데, 이번 결정을 보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헌법재판관은 더더욱 정치적인 판단에 좌우되지 않고 법에 정통한 소신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실 현재의 헌법재판관은 대부분 유신정권 때 판사나 검사를 지낸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긴급조치를 실정법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민주인사들을 기소하고 판결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당시 민주인사들의 재판을 담당한 판사들 중에는 물론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경우도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소신껏 판결한다는 것은 판사로서의 장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화 이후에도 판검사들이 그전에 비해 특별히 달라진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다른 부문에서는 느리지만 개혁이 진행되었고, 가시적인 성과도 꽤 나오고 있다. 반면에 사법 쪽에서는 한국의 법치를 민주화에 맞추어서 한단계 높이려는 노력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인상도 준다. 최근에 대법원이 법학전문대학원의 정원을 현행 사법시험 합격자 수와 같은 1200명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제안을 한 것은 법조 경력자들의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큰지를 잘 드러내는 사례다. 그렇다면 이러한 법조인 출신에게만 탄핵심판과 같은 중대 사안을 맡기는 것은 사회적으로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헌법재판관은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헌법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법시험을 보지 않았어도 학계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법학자들은 있을 것이다. 이들이 판검사 자격은 없을지라도 ‘격무’에 시달리는 그들보다 헌법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뛰어날지 모른다. 이참에 헌법재판관의 자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도 좋을 것 같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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