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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연좌제수사중 정신분열 21년째 ‘원통한 실종’

eudike 2004.06.23 14:51 조회 수 : 301 추천:24

연좌제수사중 정신분열 21년째 ‘원통한 실종’


정은복씨 민주화운동 관련 의문사위, 명예회복 결정
“네 자녀를 키우면서 사회활동을 했던 평범한 주부로, 어느날 느닷없이 ‘연좌제’에 묶여 국가기관에 끌려간 뒤 정신분열증에 걸려 가족들 곁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입니다. 하지만 국가는 지금까지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2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1년 전 독재정권 강압수사를 받은 뒤 정신분열증에 걸려 실종된 한 가정주부의 삶과 명예를 회복하는 결정을 내렸다. 의문사위는 1983년 12월에 실종된 정은복(당시 47)씨 사건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씨가 주부아카데미협의회 창설 등을 통해 여성인권과 민주사회 실현에 노력했으며, 위법한 공권력 행사 때문에 실종됐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정씨의 고통은 정씨 고모가 남파간첩 출신으로 북한 고위간부인 노동당 연락부장을 맡았다는 ‘연좌제’에서 시작됐다. 83년 8월30일, 정씨 고모 관련 정보를 입수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정씨와 정씨의 여동생 등 일가족 6명을 연행했다. ‘흑룡공작’이란 이름의 고정간첩 색출작전이었다. 사흘 전에는, 대학생으로 야학을 하던 큰딸 최종윤(42)씨가 갑자기 들이닥친 낯선 남자들에 의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정씨는 눈이 가려지고 군복으로 옷이 갈아 입혀진 채, 이틀 동안 밤샘조사를 받았다. 안기부 기록을 보면, 정씨는 이틀째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하지만 불법구금과 강압수사는 20일 동안 계속 됐다.

주부아카데미협 회장 활동
고모가 간첩이란 이유로 20일간 구금·강압조사
석방뒤 자살기도 하기도

정씨는 당시 가정주부로서는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1980년대 초 진보운동의 산실인 크리스찬아카데미 주부 수강생 모임인 ‘주부아카데미협의회’ 회장과 ‘상담의 전화’ 상담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크리스찬아카데미 여성부장이었던 평화여성회 이현숙 대표는 “최초의 진보적 여성운동단체인 ‘여성의 전화’(현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에서는 정씨에게 초대 회장직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씨는 ‘간첩’으로 몰렸다. 조사 10여일만에 “나의 사회활동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란 요지의 2장짜리 진술서를 썼지만, 워낙 진술의 앞뒤가 맞지 않아 결국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다. 당시 정씨를 조사했던 수사관도 의문사위 조사에서 “정씨의 진술이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정씨는 풀려난 다음날 “내가 죽어야 가족이 산다”며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급성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정씨는 안기부 수사관이 계속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함께 연행됐던 여동생이 3개월 뒤 교통사고로 숨지자, 이 또한 안기부의 공작이라고 믿었다. 그는 같은 해 12월15일 “안기부 담당관이 ‘딸 감시를 잘 하라’고 해서 화가 난다”고 말한 뒤 훌쩍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20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은행지점장이었던 정씨의 남편은 휴직을 하고 아내를 찾아 전국을 헤매 다녔다. 잠수부를 동원해 한강 바닥까지 훑었지만 모두 허탕이었고, 그 역시 3년 뒤 심장마비로 숨졌다.

의문사위 김희수 제1상임위원은 “정씨의 실종은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광적인 반공주의에 의해 저질러진 구조적인 국가폭력의 산물”이라며 “국정원이 아무런 단서 없이 친척이 월북했다는 이유로 정씨를 불법구금 수사한 것을 공식 시인하면서도,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문사위는 이날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 정씨와 그 유족들에 대한 보상심의를 요청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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