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김근태-복거일 `파병 논쟁`

김재인 2003.03.29 01:41 조회 수 : 297 추천:26

김근태-복거일 `파병 논쟁`

박상주/sjpark@munhwa.co.kr

우리시대 ‘진보’와 ‘보수’의 대표주자가 만나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국군의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27일 오후. 명분없는 미국의 일방적 전쟁에 파병을 해서는 안된다는 민주당 김근태 의원과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응징하는 미국의 행동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소설가 복거일씨가 문화일보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녹차를 시킨 김의원과 포도주를 주문한 복씨는 화장실 한번 가지않고 장장 2시간40분에 걸쳐 ‘국군의 이라크전 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시각이 너무 달라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어렵다며 세번씩이나 자리를 뜨려는 한 쪽을 설득해 다시 앉혀야 할 정도로 치열한 설전을 벌인 두 사람의 대담을 정리한다. 사무실안은 너무 답답하니 밖으로 나가 차나 술을 한잔하면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자고 한 것은 복씨였다. 김의원도 흔쾌히 동의해 자리를 옮긴 곳은 문화일보 인근의 아담한 포도주 전문점. 복씨가 먼저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주문하자 김의원은 다음날 국회일정 때문에 부담이 된다며 녹차를 시켰다. 김의원은 서울대 상대 2년 선배인 복씨에게 깍듯이 “선배님”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복거일씨〓“지난 대선때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하는 것을 보고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분이란 생각을 했다. 현실감각이 탁월한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엿볼 수 있었다. 야당의원들까지 대통령의 결정을 크게 환영하는 마당에 여당의원의 입장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뭔가.”

▲김근태의원〓“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75∼81%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를 하고 있다. 한국군의 파병에 대해서는 찬반의견이 반반으로 나뉘는 걸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큰 견해차가 난다면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에서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쳐 민의를 통합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결정했으니 여당의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망각한 태도다.”

토론이 열기를 더해가면서 복씨의 포도주잔이 바닥을 드러냈고, 종업원을 불러 와인 한잔을 다시 주문한다. 화이트 와인이 너무 달다며 이번엔 레드 와인으로 달라고 한다. 자신의 녹차잔도 바닥이 난 것을 확인한 김의원도 녹차 한잔을 더 시킨다. 분위기가 다시 정리되면서 먼저 입을 연 쪽은 김의원.

▲김〓“노 대통령의 속내가 무엇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은 명분이나 논리보다는 북핵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감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대단히 전략적이고도 현실적 판단에 기초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속뜻이 이렇다면 입법부에서 이라크 파병안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 또한 자신은 충분히 우방을 돕기위해 파병하려 했지만 국회에서 거부당했다고 말하면 대통령은 명분없는 전쟁에 군대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복〓“그러나 국회에서 동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북한과의 문제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것 아닌가. 어느 정도의 입법부의 견제는 필요하겠지만 행정부 수반이 선택한 안 자체를 국회에서 무효화 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전략적 선택을 했다면 입법부 역시 최소한의 반대에 그쳐야지 안 자체를 완전 부결시키는 것은 잘못 아닌가. 부결시킬 경우 전략적 협상을 할 수 있는 여지 자체를 없애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반대를 하다가 물러서야 하는 것 아닌가.”

▲김〓“우리 나라가 이미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복선배는 아직도 대통령을 ‘영도적 지도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행정부의 선택에 대해 입법부의 견해가 달라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를 무효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비슷한 논제를 놓고 비슷한 공방이 계속되는 것 같아 대화가 끊긴 틈을 이용,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뭔지 정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복〓“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사악한 사담 후세인 정권을 응징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후세인은 1980년대 이란과의 전쟁을 벌였고, 90년엔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쿠르드족을 말살시키기 위해 화학무기를 사용해 수천명을 학살했고, 반 후세인 봉기를 일으킨 남부 시아파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늪지대의 물을 빼내 20만여명이 생계를 잃기도 했다.”

▲김〓“후세인이 독재자란 사실엔 동의한다. 그러나 국제질서 유지를 위해 대화를 통한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하며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 전쟁을 벌이더라도 유엔의 틀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유엔이란 국제기구의 결정을 무시하고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일방적 잣대에 따라 전쟁을 벌인다면 지구촌의 기본적 질서는 깨질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의 견해가 가장 첨예하게 맞선 부분은 이라크 전쟁의 합법성 여부.

▲김〓“국제법상 무력사용이 인정되는 경우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승인이 있거나 임박한 위험에 대한 자기 방어의 필요성이 있을 때에 국한된다. 미국이 이라크 정부의 테러지원 가능성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자위권 차원에서 선제공격을 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입증이 안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 영토에 진입했지만 아직도 대랑학살무기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복〓“유엔 결의가 없었다고 해서 국제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 유엔 결의가 있었던 경우는 1950년 한국전쟁, 1991년 걸프전, 2001년 아프간 전쟁 등 세차례 뿐이었다. 코소보 전쟁의 경우 유엔의 결의없이 미국과 유럽연합이 군사적 개입을 했지만 국제법 위반 논란은 없었다. 다시 말해 유엔의 결의가 적법성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코소보 전쟁 역시 당시 국제법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더군다나 당시 코소보 사태 개입은 인종청소라고 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요소가 있었다. 이번 이라크 공격에 앞서 아프리카의 소국까지 초강대국인 미국의 압력과 회유를 모두 거부한 것은 그만큼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같은 국제적 여론을 무시하고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이라크 공격을 감행한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토론이 몹시 격해지고 있었다. 두잔째 마시고 있는 포도주 탓인지 복씨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김의원은 “사실을 바라보는 기본적 입장이 너무 달라 이야기를 계속하기 힘들다”며 “이쯤에서 자리를 정리하자”고 자리에서 일어설 태세다. 열심히 두 사람의 공방내용을 받아적던 진행자가 다시 끼여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 이라크 파병에 대해 국민여론도 반반으로 나뉜 것은 두 사람의 경우처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나서야 다시 대담이 시작됐다. 이야기를 조금 진전시켜 과연 이라크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를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복〓“국익문제 이전에 국제질서를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하는 도의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또한 이라크전에서 미국의 힘이 빠지게 되면 국제질서가 흐트러지게되고 결국 약소국인 우리에게 피해가 돌아온다.”

▲김〓“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는 누가 결정하나. 바로 국민이다. 이라크전 파병문제는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충분한 토론을 거쳐 결정해야 한다. 한국은 특히 월드컵 4강 진출로 국제사회에 새로운 ‘코리아 브랜드’ 를 심었다. 명분없는 전쟁을 지지할 경우 이런 한국의 이미지가 날아갈 수 있다.”

카페를 찾은 손님 하나가 김의원을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복씨는 과일에 치즈를 겯들인 안주를 하나 주문한다. 하긴 워낙 열띤 토론을 했으니 시장기도 느낄 법 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논제는 자연히 이라크전 파병이 한반도 안보 문제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에 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복〓“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에 따른 북한 원조는 이런 북한핵의 위협 아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뇌물을 바친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핵 문제는 우리의 손을 떠난 것이고, 이에 대응해서 세계 평화를 지켜낼 억제력을 지닌 나라는 미국뿐이다. 그나마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한국전쟁이나 베트남 전쟁등을 치르면서 반세기 넘게 ‘팍스 아메리카나’하의 세계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만일 이라크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을 도와주지 않아 미국의 힘이 빠진다면 북한에 대한 우리의 뇌물도 그만큼 늘어나고 한반도의 평화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김〓“이번 이라크전을 인정하게 되면 미국의 선택적 응징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북한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경우 반대할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힘의 논리에 따라 원칙없는 미국의 일방적 전쟁을 지원하는 것보다 국제사회의 원칙과 명분에 따라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이 한반도 안보를 담보하는데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시절 민주화 운동과 진보세력의 간판 격이었던 김의원과 우리 시대 담론의 한 가운데서 늘 자유주의자를 자임하면서 보수진영의 논리를 대변해온 복씨. 두사람의 사상적 거리만큼이나 이날 토론 또한 때론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팽팽한 평행선을 달렸다.

◈김근태의원

-1947년 경기 부천생, 1965년 경기고, 1972년 서울대 상대 졸업,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제도권에 진입하기 전까지 30여년 동안 반 독재투쟁으로 체포 26회, 구류 7회, 5년6개월간 수감생활, 2002년 11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소설가 복거일

-1946년 충남 아산생, 1967년 서울대 상대 졸업, 1987년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데뷔,1987년 ‘현대문학’지에 시 추천을 받은 바 있으며 시집 ‘오장원(五丈原)의 가을’을 비롯해 SF소설과 평론집, 산문집 등 다양한 작품 활동

정리〓박상주기자 sjpark@munhwa.co.kr

2003/03/2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안내) 홈페이지를 새로 단장했습니다 [1] 철학자 2017.02.06 269
공지 일부 게시물을 이동합니다 철학자 2013.07.17 82210
공지 '흥미로운 소식' 란에 있는 기사들을 이동했습니다 [1] 철학자 2009.07.23 207889
111 런던 한복판에 '투명 화장실' 김재인 2004.02.25 301
110 100달러짜리 랩톱 나온다 김재인 2005.09.29 300
109 이헌재, “이정우 경제정책이 옳았다” 간접시인 김재인 2005.02.15 300
108 헌법재판관을 다시 생각한다 김재인 2004.10.22 300
107 미 공화당 뉴욕전당대회 ‘위장’ 자원봉사자로 비상 eudike 2004.07.03 300
106 '가난은 제도 탓'에 깔린 위험신호 김재인 2004.05.03 300
105 `심술궂은 계집아이' 시작은 서너살 때부터 김재인 2005.05.09 299
104 기억력 감퇴, 걱정하지 않는 게 좋다 김재인 2004.10.07 299
103 연좌제수사중 정신분열 21년째 ‘원통한 실종’ eudike 2004.06.23 299
102 경제환경 불확실성의 시대 김재인 2004.04.18 299
101 美 인간 진화 연관 화석 공개 철학자 2009.05.20 297
100 주머니 속 인터넷중계기 뜬다 철학자 2009.05.18 297
99 일 ‘인질 자기책임론’ 논란확산 eudike 2004.04.28 297
» 김근태-복거일 `파병 논쟁` 김재인 2003.03.29 297
97 '의사소통' 능력이 임금 수준 결정한다 철학자 2009.05.07 296
96 [re] [최장집 교수 비판②] 진보적 민중주의 고민했어야(조희연) 김재인 2007.02.10 296
95 하와이에 눈발 날려 김재인 2005.01.15 296
94 카메라폰 최후 경쟁 상대는? 김재인 2004.04.08 296
93 `인디언 시내출입 금지' 규정 329년만에 폐지 김재인 2004.11.26 294
92 송두율을 위한 변명 eudike 2003.09.29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