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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알랭 소칼 대소동

최원 2000.04.24 14:02 조회 수 : 2088 추천:16

알랭 소칼 대소동


요즘 여기 저기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보니, 포스트모더니즘 죽이기가 한참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반가워해야할까? 전에 나도 어느 웹사이트에선가, 소위 다양성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아카데미에서 일종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기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상들을 억압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고 묘사했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이런 포스트모더니즘 죽이기에 대해 내가 반가워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닐까? 그런데 영 그렇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심지어 알랭 소칼 대소동으로 인해 아주 고약하게 골탕을 먹어 벌개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얼굴을 보고 마냥 고소해하진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1) 소칼 대소동

먼저 소칼의 이야기부터 몇마디 해보자. 소칼에 대해선 나도 잘 아는 바가 없지만(그리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게 사실이다), 그가 (논리)실증주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거의 모두가 동의를 하고 있는 것 같으니 거기서 한 번 시작해 보자.

소칼이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그룹에 속하는 이론가들(데리다, 들뢰즈, 이리가래, 라캉, 심지어는 알튀세르까지)은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을 매우 혐오하는 철학자들이 대부분이고 따라서 그들 이론가들이 정확히 문제는 아닐것이다. 하지만 소칼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그들 이론가들을 분류하는 것이 맞던 그르던 그것과는 별개로 그가 정말로 공격하고 있는 타겟이 무엇인지를 본다면 그런 분류법 자체가 크게 상관이 있는 건 아닌 듯 싶기도 하다. 물론 그의 논의 속에선 과학적인 개념들을 마구 가져다 검증도 없이 이해도 못한 채 쓰는 학문적 횡포를 욕하는 것이 전면에 부각되지만 그런 비판의 뒤에 깔려 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그가 부르는 사고들이 가지고 있는 '상대주의'(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아닌 - 이 상대성 이론을 가지고 소칼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를 패러디 했었고 그것이 이 모든 소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다. '객관적인 진리'의 부인!' 이것이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죄목인 셈이다. 유죄인가, 무죄인가? 흠..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죄라고 생각한다(물론 질문 자체가 너무 정교하지 못하다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일단은 이렇게 말하자).

그런데, 나는 사실 예전에 미국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횡포에 대해서 말하면서 (일부러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 그러고 보면 나도 좀 음흉한 데가 있다) 사실의 한 쪽만을 말했었다. 보다 더 정확히 사태를 전달하면 미국 아카데미에서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는 포스트모더니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실증주의가 있다.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 대학에서 제 1인자는 (논리)실증주의이지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엔 한 참 맹렬히 밥그릇 싸움에 참여하던 포스트모더니즘이 점차 다시 기우는 추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칼이 앞에서 무슨 주의자라고 했더라? 우린 그가 (논리)실증주의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되고 보니, 사실 소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공격은 마찬가지의 밥그릇 싸움에서 이제 다시 독점권을 회복할 찰나에 있었던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자신의 승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소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가한 마지막 철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2) 한국판 소칼 대소동

근데 사실 더욱 우스운 것은 한국의 이론가들이 작금에 보여주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태도들이다. 내가 알기로 포스트모더니즘이 갑자기 한국에서 된서리를 맞기 시작한 건 소칼이 그 소동을 피우기 좀 전부터였다고 기억한다. IMF가 터지자 갑자기 사람들이 꿈에서 깨어난듯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 나라를 망하게라도 했다는 듯이 그것을 욕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믿지 않았었다면 우리 나라 경제가 그렇게 망하진 않았을 것인양 말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이것도 정세적인 이유라면 이유라고 말해야 할까?)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 마녀사냥에서, 그런데 더욱 웃긴 것은 정작 그 때까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자들의 얼굴은 얼마 보이지 않고, 조용히, 은근 슬쩍 포스트모더니즘인지 아닌지 말 안하면서 버팅겨오던 자들이 대거 일어나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실 이제껏 푸코나 데리다 등이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래서 그들을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이라고 내 나름대로는 엄격하게 불러왔다. 하지만 국내의 푸코주의자들이나 데리다주의자들에게 항상 불만스러웠던 것은 정작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그것과 확실하게 구분짓질 않더라는 것이었다. 은근 슬쩍, 허허 실실, 에이 좋은게 좋은거지 등등. 그러더니, 이제 포스트모더니즘 마녀사냥이 시작되자 그들이 들고 나온 플랭카드, 나는 거기에 써있는 구호가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거기에 써있는 구호는 바로 "아~ 아~ 프랑스 좋은 나라! 아~ 아~ 미국 후진 나라!"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전 홍세화라는 사람이 "피자헛과 포스트모더니즘"(<인물과 사상> 99년 6월호, 또 http://philosophy.co.kr 철학교실 게시판에도 실려있음)이라는 글을 썼는데, 거기에서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중국 땟갈 나는 한국제 짜장면 같은 이를테면 프랑스 철학 냄새나는 미국제 싸구려 철학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에 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거의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모 난 안가봤으니 거기에 대해선 할말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에 있으면서 그것을 전세계로 유행시킨 두명의 사상가, 즉 리요타르와 보들리야르는 순수한 프랑스제 바게뜨다.

그런데 홍세화는 그들의 이름은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에서 프랑스 철학을 가져다가 마구 천박화/상품화시켜서 생겨난 것에 불과하고 따라서 프랑스는 무죄이고 미국만 유죄라는 것이다. 나는 (홍세화 본인이 과거에도 그랬었는지는 확인할 길 없지만) 적어도 이런식으로 어떤 사상을 고수하려고 애쓰던 일군의 사람들을 기억하는 바, 그들은 스탈린으로부터 맑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그 구 맑시스트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홍세화의 논리는 그 구맑시스트의 논리에 하나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민족주의적이다 못해 국수주의적인 그 프랑스 산 네오 파시스트의 논리를 말이다.

유럽에 현재 대두되고 있는 네오 파시스트적인 논리에 동조하여 세르 등이 주체가 되서 프랑스에서 영어 간판 없애기 운동에 서명을 받아내려다가 데리다/발리바르 등에 의해 심각한 반대에 부딪힌 적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 인용 자료는 찾으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귀찮다 - 사실 홍세화의 논리는 정확히 그들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3) 포스트모더니즘과 (논리)실증주의, 그리고 미국

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이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지점이 있다면 사실 다음과 같은 점에 정/확/하/게 이/론/적/으/로 한정된다. 미국은 알다시피, 앵글로 색슨 계통의 인문학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그 전통에는 (논리)실증주의가 아주 강하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이 들고나온 기치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대서사의 해체와 작은 이야기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작은 이야기라는 코드야 말로 (논리)실증주의의 근본원칙과 엄청난 친화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참/거짓의 증명 가능한 것만이 과학이고 진리이거나 적어도 의미가 있으며 그 나머지는 형이상학에 불과하다. 어떤 사변적인 이야기도 다 잘려나가야만 한다. 어떤 큰 이야기(즉, 참/거짓이 증명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도 사변철학에 불과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 때 대세를 거머쥘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논리실증주의의 무의식이 그 안에서 편안할 수 있는 사상적인 틀걸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애초에 싸움은 순수 논리실증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면을 쓴 논리실증주의자들 사이의 밥그릇 싸움이었고 이제 전자의 승리로 정리되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거니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틀의 대부분은 프랑스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천박화 없는 철학이 있는가? 상품화 되지 않는 철학이 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 있는가? 프랑스 철학은 천박한 부분이 전혀 없고 미국은 천박화의 본고장에 불과하다면, 왜 수많은 프랑스의 철학자들이 미국에 매년 혹은 격년으로 들락날락 거리면서 자신들의 철학을 팔고 다니는가? 심지어 들뢰즈/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그런 미국을 찬양하지 않았던가?

물론 지적인 엄격함을 지키려는 노력, 천박화를 경계하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지만, 나는 본래 천박화라는 것은 언제나 순수하다고 (부당하게) 가정되는 원래의 사상 안에 있는 모순들이 작동함으로써 나오는 결과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구 맑시스트들의 "다시 순수한 맑스에게로!"라는 구호에 반대했던 이유는 바로 맑스 그 자신 안에 있는 모순의 작동의 결과가 스탈린이고 소비에트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단순히 맑스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맑스주의를 전화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프랑스적 순수함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프랑스와 미국 모두에서 벌어졌던 어떤 이론적인 천박화들, 혹은 그 이론들의 이데올로기로의 재기입에 있어 발생한 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은 그 이론들의 어떤 내적 모순의 징후로 읽혀질 수 있는가 라는 식으로 문제를 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소칼에 부화뇌동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을 마녀사냥하려는 자들을 보면 사실 기쁜 생각이 아니라 한심스런 생각이 앞선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론적인 논쟁이 비이론적인/정치적인 이유로 봉쇄되는 자리에서 내가 박수를 치고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2000. 4. 22. 최원 http://jump.to/spin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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