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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다시 보는 '위대한(!?) 김정일

정병진 2000.06.16 13:35 조회 수 : 1456 추천:21

가슴벅찬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접하나고 나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소위'김정일 쇼킹''김정일 신드롬'이 일고 있다고 한다. 실재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북한의 지도자가 생방송으로 진행중인 전세계의 언론 앞에 나타나 재치있고 풍부한 유머와 예의바른 자세로 정상회담에 임하는 모습은 그것을 지켜본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가히 충격으로 다가오는 게 당연하다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에 대해 가져온 많은 잘못된 편견이 이번을 계기로 전격 수정을 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꽤나 독선적이고 안하무인격인 독재자 정도로 여겨왔던 지난날의 그에 대한 이미지는 이제 매우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으로 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은둔생활에서 해방'되어 세계 앞에 자신을 드러낸 김정일이 북한 언론에는 여전히 신비스러운 존재로 그냥 남아있고자 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는 북한 중앙 텔레비전은 몇몇 스냅 사진만 내보냈을 뿐, 그의 육성을 전혀 들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보도가 어떤 효과를 의도하는지는 분명하다. 북한 내에서 그는 여전히 <위대한 지도자>로 군림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 아쉬움으로 남았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매우 고령으로 보이는 북한의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영남 씨가 만찬사를 통해 "우리 인민의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써가며 김정일을 언급하는 것을 지켜보다 그 말 한마디가 귀에 거슬려 좀 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북한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위대한....위대한....위대한.."

고은 시인이 잘 지적했듯이 북한 사회는 '농성 사회' 혹은 '유격대 사회'이기에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군사 독재정권과 싸우던 전대협 시절, 전대협 의장이라는 위치를 그토록 높여 생각했던 우리들의 지난 경험처럼. 따라서 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일컬어 '위대한 지도자'라는 부르는 북한 사회를 전혀 다른 체제 속에 사는 나의 시각만을 가지고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한 문제 제기는 '북한 민주화론'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는 사람들의 주장 만큼이나 별로 유익하지 못한 공연한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항상 붙이고 다니는 김정일이 뜻밖에도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사회에 새롭게 다가왔던 점이다.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은 바 있는 이문열 씨의 <황제를 위하여>라는 소설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황제'는 계룡산에 있는 어느 신흥종교의 교주로 자신을 황제로 인식하는데, 그를 따른 사람들도 그를 통해서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리라는 꿈을 품고 그를 틀림없는 황제로 받들고 있었다.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그들의 발상은 소설 곳곳에서 희화화 되어 재미를 더 해주었지만, 주목할만 한 것은 황제와 그의 백성들은 진정한 '황제'가 되기 위하여/로 만들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소설의 대단원에 이르러서 황제는 오랫동안 자신에게 붙여져 있던 많은 수식어들에서 자유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신선과 같은 존재로 승화된다.

요컨대 스타 시스템 같은 것도 있다지만, 그 당사자가 그 이름에 걸맞는 부단한 노력과 성취를 거치지 않고는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점과 그에게 주어지는 이름이 아무리 과분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가 그만한 노력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구성해 내기에 이르렀다면 해악이 없는 한 별로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말이된다. 그것은 달라이 라마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라마 자신은 이번에 한국 방문 계획에 관해 취재하는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이 생불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일축하면서 자신은 그저 도를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겸양을 비췄다. 똑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대중 대통령과 환담하면서 "내가 무슨 큰 존재라고..."라는 겸양을 보여 주었다. 실제의 인물은 그렇지 않는데, '황제'를 기다리고 또 그를 조작해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수 많은 기제들을 통해서 이미지가 과잉 조작되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예수님 또한 그랬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고 그 말처럼 하나님의 아들 답게 살았다. 영광의 메시아을 기다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와 그에 따른 유혹이 그를 늘 괴롭혔지만, 묵묵히 고난의 메시아의 길을 걸었고 그로써 진정한 메시아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영웅'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에게 부과되어있는 오해할 만한 잘못된 이미지들을 스스로 해체하고 겸손히 본연의 자기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너희를 스스로 낮추라 그러면 높아지리라"는 말씀처럼 이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며 피곤한 조작 놀음에서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체로도 이미 훌륭한 김정일 씨도 자신의 모습을 북한 사회에 그대로 내 보일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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