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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http://www.kpf.or.kr/d4u/lib/lib_cast_list.html?PAGENUM=1미디어이론으로 본 보도 현장 4 / 침묵의 나선이론 (The Theory of spiral of silence)  

신문과 방송<2002.01 : 373호 : 53-59>  

  
  미디어가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

침묵은 금이라고 가르침을 받는 사회,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중간은 가는 사회, 유교 전통에 영향받아 떠드는 것보다는 조용하게 있는 것이 점잖다고 인정받는 사회. 2002년도 새해 벽두부터 우리 사회를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게다가 매스미디어가 우리 중 일부를 침묵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동한다면 결과적으로 정치 사안에 대한 공적인 논의는 요원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틀 짓기, 점화효과 이론 등과 비교해서 오래되고 많이 알려진 이론이지만, 매스미디어가 현실에 대한 집합적 실체를 구성(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하여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꼭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이론적 접근이 바로 침묵의 나선이론이다. 이 이론은 사회 안에서 어떤 의견이 우세하고 또는 열세한가를 보여주며 여론환경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형성하게 하고, 나아가 공적인 의견표명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여론과정에 개입하게 되는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디어 영향력에 대해 1960년대까지 내려진 결론은 비록 미디어의 잠재적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실재적으로 별 볼일 없다는 것이었다. 흔히 제한효과 이론으로 지칭되는 논의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1970년대 들어 미국과 유럽에서는 미디어 효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이론적 접근이 의제설정 이론과 문화계발효과 이론으로 대표된다면,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독자적으로 여론현상에 미치는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한 모델이 제시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침묵의 나선이론이다.

이론의 가정과 주장

노엘레노이만(Noelle-Neumann)은 1973년 영어권에 발표한 ‘매스미디어의 강효과 개념으로의 회귀(Return to the concept of powerful mass media)’라는 논문에서 미디어 제한효과 이론의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매스미디어가 여론 환경에서 다수의 견해를 인식하게 하는데 큰 영향력이 있다고 제안했다. 즉 사람들이 사회 분위기를 인식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의 공적 행동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토크빌 등이 제안한 침묵 가설을 매스미디어와 연계시켰다.

침묵의 나선이론은 크게 세 분야에 대한 가정을 제시하고 있다. 여론에 대한 것, 인간 개개인의 능력과 심리적인 측면, 그리고 매스미디어가 개입하는 측면 세 가지 분야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 역시 매스미디어 연구분야에서 독립적으로 검증해 볼 수 있는 흥미 있는 연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동조 강요하는 우월적 의견

먼저 미디어가 여론현상에 개입하는 과정을 다루면서 침묵의 나선이론에서는 여론에 대한 개념 정의를 내리고 있다. 노엘레노이만은 토크빌, 알포트, 퇴니스 등의 저작에 기초해 ‘사회적 통제(social control)’로 작동하는 여론의 기능을 강조하면서 여론을 사람들이 동조해야할 압력의 근원으로 본다. 즉 일반인들의 경우 여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하고, 정치인의 경우 대중적인 지지를 상실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여론은 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론은 태도와 행동에 동조를 강요하는 우월적인 의견으로 여겨졌다.

구체적으로 침묵의 나선이론에서는 여론을 “가치가 개입되는 사안에 대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고립된다는 두려움 없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공적인 행동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의견”이라고 정의한다. 조금은 추상적이지만 쉽게 말해 남들 눈치 볼 필요 없이 내 스스로의 정체를 알리면서 말할 수 있는 의견이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되는 의견, 즉 여론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능력과 관련한 가정에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fear of isolation), 동조성(conformity), 준통계적 능력(quasi-statistical sense) 등의 용어가 등장한다. 개인은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고려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욕구가 있다는 전제하에,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으려 하며 또한 고립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주위를 고려하고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동조성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또한 고립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 분위기(climate of opinion)를 살피게 되는 과정에서 주로 매스미디어를 지속적으로 이용하게 된다고 가정한다. 특히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특정한 의견의 분포, 강도, 성공가능성을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협화성(consonance), 누적성(cumulation), 편재성(ubiquity)으로 대표되는 현대 매스미디어의 특성은 수용자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건으로 지적된다.

저널리즘 가치와 과정의 유사성으로 인해 다양한 매스미디어 채널에서 보여지는 뉴스 내용이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 그리고 이것이 시간을 두고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현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사회환경 도처에 매스미디어가 자리하고 있어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행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험적 결과와 비판

이러한 가정을 기초로 글린과 맥클라우드(Glynn and McLeod, 1985)는 노엘레노이만이 침묵의 나선이론에서 주장하는 바를 이론진술문의 형태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의 결과로 의견분위기에 대한 지각의 변화는 사람들이 사안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데 상이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정도 차이는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는(소수 의견) 입장의 쇠퇴를 가져온다. 또한 이러한 쇠퇴를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지각하게 되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소수로 지각된 의견은 계속적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쇠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노엘레노이만은 독일 선거를 배경으로 다양한 공개적인 의견 표명 행위, 투표행동 등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침묵의 나선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하려고 했다. 특히 도덕적인 측면이 개입된 이슈는 침묵의 나선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 사회에서 이 이론을 검증해 본 연구자들은 침묵의 나선이론이 구성원간에 동질성이 높지 않은 다원주의 미국 사회에서는 별로 타당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민주적인 정치 문화를 추구해 온 미국 사회에서는 오히려 소수 견해가 여론형성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되고 때로는 미디어를 통해 소수의 견해가 더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권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들이 공론장에서 대립하고 경쟁하는 것을 건전한 민주주의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대두되었다. 즉 정치사안에 대한 공적인 토론과 논의가 활성화된 다원주의에 입각한 민주정치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다수의 압력 때문에 개인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피력하는 것을 주저할 확률이 낮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침묵의 나선이론이 예측하는 바가 발견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침묵의 나선 이론에서 개인의 투표행동까지도 예측하려한 것의 한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정치 행동과 사적인 정치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비판을 이해하기가 쉽다.

즉 겉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고 침묵하지만 나중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표로 보여주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론 환경에서 내가 침묵함으로써 의견이 반영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투표를 하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상황에서는 남들의 압력 없이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침묵의 나선이론에서 상정하고 있는 동조성과 태도변화라는 가정의 타당성과도 연결된다. 한 개인이 공적인 사항에 대해 침묵하는 것 자체는 태도 변화 없이도 가능하다. 즉 공개적으로는 순응하여 침묵하고 의견 표명에 소극적일지언정 사람들은 본인이 지각한 사회적인 여론분위기에 대해 대처할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여론분위기를 지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이용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후에 다룰 ‘비개인적 영향력’의 논의와도 연결된다(Mutz, 1998).

한국 사회와 침묵의 나선이론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침묵의 나선이론 연구는 지금까지 활발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론자체에 대한 미국 커뮤니케이션 학계의 비판적인 평가가 작용한 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정치사안에 대한 자유로운 찬/반의 의견이 공개적으로 미디어에서조차 논의될 수 없었던 1970-80년대의 정치상황도 이론을 검증하는데 있어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고 본다(양승찬, 1998).

개인적인 차원의 데이터 분석을 이용하여 여론분위기를 지각한 것과 공개적인 의견표명을 연계시킨 연구는 그리 많지 않아 해석상 일반화에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앞으로 이 이론을 한국 사회에서 검증할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이슈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침묵의 나선이론의 검증에서 우리 사회의 지역적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지역적 경계를 따라 예견되고, 또한 우리 국민이 지역 배경을 정치적 판단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삼는 정치문화에서는 지역의 동질성의 정도가 감안되어야 한다. 즉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는 여론의 영향력은 지역의 동질성에 따라 달리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인 선택에 있어 지역 동질성이 강한 대구, 부산에서 지난 1996년 15대 총선을 배경으로 대통령의 수행평가와 관련한 공개적인 의견표명과 여론분위기의 지각과의 관계를 살펴 본 연구에서는 침묵의 나선이론이 예측하는 방향의 결과가 나타났다(양승찬, 1998).

하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지역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같은 이슈를 이용한 연구에서는 오히려 여론환경에서 소수라고 지각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더 활발한 의견표명을 한다는 정반대 되는 결과를 얻었다. 침묵하는 다수와 목소리를 높이는 소수 현상(silent majority and loud minority)이 나타난 것이다(김무곤, 안민호, 양승찬, 2001).

이 결과를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지역적 특수성이 침묵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다. 즉 침묵현상은 상대적으로 동질성이 강한 지역에서 주위의 평가나 판단이 본인의 정치적 행위에 중요한 환경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다. 반면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정치적인 의견표명을 이끌 정도로 강력한 동기가 되기 힘들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의 연관성이 적은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개입도가 높은 일부 소수가 그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침묵의 나선이론을 검증하는데 있어 우리를 일반적으로 침묵하게 하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적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침묵 현상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여론환경에 대한 지각을 통한 정치적 행위의 결과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유교적 전통에 영향을 받은 결과인지를 적어도 판단할 수 있도록 연구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된 연구에서는 침묵하게 하는 문화적 요인들을 통제한 가운데 여론분위기 지각의 영향력을 평가한 바 있다.

언론과 침묵 현상

여론분위기에 대한 지각과 공개적인 의견표명을 연결시키는 것이 미디어 효과를 살펴보려는 침묵의 나선 연구의 관심사라고 할 때 이론적인 검증 자체는 수용자를 대상으로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되어 실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용자에게 미치는 효과라는 차원이 아닌 일반적인 미디어 활동과 정치 현상과 관련해서도 이 이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경험적인 검증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 논의에 한계가 있지만, 일단 우리는 매스미디어의 활동과 연관하여 발생할 수 있는 침묵 현상(또는 침묵하게 하는 개연성이 있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미디어와 여러 집단과 단체가 특정한 이슈를 도덕성이라는 차원으로 틀 지우는 과정은 이슈와 관련한 다면성을 제시하지 않은 채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침묵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노엘레노이만과 많은 연구자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침묵의 나선이론이 적용되기 적합한 이슈는 도덕적 차원이 개입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작년 한 해 지속되었던 언론개혁 이슈와 지난 16대 총선에서의 낙선낙천 운동은 그 사안과 관련한 복잡한 논의가 특정 대상의 부도덕성으로 틀 지워짐으로써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활발히 개진되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다고 본다. 즉 침묵 현상의 발생에 언론의 틀 짓기 이론(framing theory)의 적용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분명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는 개혁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를 단순히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음에도, 많은 부분 이 이슈는 일부 신문의 부도덕성을 앞세워 시장 개입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측과 언론탄압을 주장하는 개혁의 대상으로 지칭된 신문사의 주장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틀 지워졌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언론이 변화를 모색하는데 관계되는 다양한 논의는 사라지고 ‘개혁’과 ‘반개혁’, ‘정당함’과 ‘부도덕함’의 대칭이 크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즉 정부의 시장개입과 정부 주도의 언론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구도 하에서는 개혁을 반대하고 부도덕한 언론사를 옹호하는 것으로 여겨질까 공개적으로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언론개혁과 관련한 이론적 쟁점은 시장중심적인 자유주의, 공동체지향적 자유주의, 급진적인 민주주의의 측면이 모두 개입되어 논의될 사항임에도(윤영철, 2001), 이러한 다면성이 반영되지 않은 채 논의의 폭은 축소되었다. 특히 공동체지향적 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의견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측의 목소리는 이와 같은 ‘개혁’과 ‘반개혁’의 구도 안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지난 16대 총선의 낙선낙천 운동의 경우도 비슷하다. 정치인들의 부도덕성에 대한 문제제기의 차원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실재로 부정적 캠페인과 실정법의 위반이라는 문제는 피하기 어려운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또한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면서 시민 운동 단체가 틀 지운 이슈를 미디어가 그대로 채택함으로써 낙선낙천 운동은 부도덕한 정치인을 몰아내는 것으로 또한 이에 반대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인 것으로 주로 묘사되었다. 과연 그 당시 실정법 위반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부정적 캠페인이 가져오는 폐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지 낙선낙천 운동을 금지한 선거법조항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이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단면적 보도가 침묵 유발

두 번째는 흔히 냄비언론이라고 비판받는 이슈에 대한 단면적 보도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이는 여론현상의 고착화를 통해 특정 견해를 다수, 소수라고 확정 짓는 것과도 연계된다.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사람들의 견해를 측정하고 그것을 여론이라고 제시하는 방식 또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또한 변화한 의견이 제시되는 가능성을 억제한다고 할 수 있다.

시의성과 재정적 부담이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선거를 제외하고 이슈에 대한 의견의 추이를 살펴보는 여론조사 보도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슈와 관련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지속되지 않게 된다. 즉 우리 언론에서는 노엘레노이만이 전제한 누적적이고 지속적인 이슈에 대한 논의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슈에 대한 논의가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수의 의견에 속한다고 일시적으로 생각한 사람이 추가적으로 의견 개진을 할 충분한 사회적 동기가 부여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언론학 태동에 공헌을 한 로버트 파크는 “뉴스는 사람들을 말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News is anything that will make people talk).”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슈에 대한 단기간의 단면적 보도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각하고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을 제약하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에 침묵을 유도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침묵하는 다수와 의견표명을 하는 다수와의 구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이 행하는 예측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침묵의 나선이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미디어-사회적 지각-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투표행동을 마지막 단계로 보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숙의 민주주의와 침묵 현상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의견표명은 유보하거나 꺼리지만 나름대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에 투표라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언론이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이용하는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공개적으로 표명된 의견과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치적 결과와의 괴리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언론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언론사 내부의 분위기와 관련하여 언론사 조직 안에서 침묵현상이 발생하지 않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팬과 맥클라우드(Pan and McLeod, 1991)가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침묵의 나선 현상을 미디어 조직 자체에 적용해 보는 작업도 중요한 연구 과제이다. 저널리스트의 전문성에 입각하여 기사를 선택하고 기사의 논조를 정하는 작업에서 각 언론사간에 직업적인 전문성과는 상관없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언론인 스스로 조직의 규범에 동조하여 침묵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 부분 역시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침묵의 나선이론은 비록 그 가정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지만, 특정한 가정에 기반을 두고 여론현상과 매스미디어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본 학문적으로 공헌이 있는 이론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숙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개인의 다양한 정치적인 의견이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표현되고 교환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감안할 때, 개인의 참여를 제약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의 사회통제 측면을 살펴보는 것은 필요한 작업이다.

새로운 희망이라고 찬사를 받았던 인터넷, 사이버 공간이 무한한 가능성에 불구하고 익명성이 보장된 상황에서 무책임한 폭로와 비이성적인 감정의 분출로 가득 차게 된 것 역시 침묵의 나선이론, 숙의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 동안 침묵했던 사람들이 말하게 하는 통로로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어떻게 ‘공개적’으로 말하고 그리고 그 말에 책임을 지는가는 숙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해결해야할 또 다른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침묵을 단순히 미덕으로 보는 전통, 지역 대립으로 지역 정체성이 특정 방향으로 개인의 정치 행위를 국한시켜 온 역사, 다른 사람의 상이한 의견에 정치적 관용성이 낮은 문화, 이 모두가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극복해야할 부분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시민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올바른 정치참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미디어 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한 중요한 것이 공론장으로서 언론의 역할이다.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반영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전문성에 기반하여 한 이슈를 둘러싸고 있는 이해관계의 다면성을 공정하게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특히 이슈를 단순하게 도덕적인 차원에서 틀 지우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이 언제나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본다. 도덕적인 다수로 ‘표현’된 의견은 다양한 의견의 공개적인 흐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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