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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데리다의 미로

김재인 2004.10.20 05:44 조회 수 : 3266 추천:16

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501&title_down_code=004&article_num=2559데리다의 훌륭한 번역자이자 연구자인 진태원은 프랑스 철학이 한국에 옮겨오면서 "아포리즘"이 되었다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 진술이 가장 잘 들어맞는 학자가 바로 데리다라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누구보다도 꼼꼼한 읽기를 추구했던, 그리하여 그 꼼꼼함이 극에 달해 원저자의 의도마저 넘어가 기록에 스며 잔존하는 원저자의 의도의 타자성까지 읽어냈던 그 저자는, 엉터리 한국어 번역 때문에 원초적으로 '해체'된 채 한국 독자에게 비극적으로 왔다가, 끝내는 그 육체적 죽음이 이 땅에 전해진 언론 보도에서 대표 저술로 <차이와 반복>이 언급되는 '한국적인 너무나도 한국적인' 희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차이와 반복>은 들뢰즈의 것이고 데리다는 <기록과 차이>를 썼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가 아는 (실제는 안다고 오해하는) 데리다는 다만 무성한 소문의 중심에 있는 망령일 뿐이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한때 데리다의 꼼꼼한 읽기에 매료되어 빨려들었다가, 다시 거꾸로 그 지루함에 질려, 아니 더 정확히 고백하자면 그 지리한 읽기 작업을 따라가며 읽기에 질려 데리다를 떠났다. 그의 <우편엽서>는 제목과는 정반대로 가장 두꺼운 책의 하나인데, 나의 취향은 어느덧 '우편엽서' 한 장으로 표현될 강렬함을 좇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내 영토가 니체와 들뢰즈였고. 데리다에 관해 조금만 더 언급하자면, 데리다에게 없었던 것은 한 장의 강렬함이 아니라 오히려 여백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훌륭한 읽기 교사였다. 그는 그렇게 교사로서 '텍스트와 더불어 읽기'를 가르치고 몸소 수백 편의 글로써 보여주었다. 사실 데리다의 끊임없는 읽기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流適地의 半문맹인 나 자신이었다. 이제 더 쓸 수 없으므로 읽기 시작하는 것이 겨우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해체는 실천이고 역사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난하며 종결될 수 없는 작업이다. 무엇을 해체하느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그러나 해체가 곧 실천이고 역사이기에 해체의 고유한 대상이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해체는 탈은폐, 곧 폭로이다. 가령 이론적으로만 보면 음성은 기록에 앞서며, 기록은 음성을 보충하고 대리하는, 따라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니 실은 음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없는 편이 더 나은 계륵이다. 그러나 이런 전제를 깔고 시작한 그 어떤 이론도 꼼꼼히 읽으면서 따라가다 보면 기록의 불가결함과 선차성을 은폐하고 있다. 이 드러냄의 과정이 바로 해체이다. 아니 실은 모든 이론은 이미 항상 해체 위에 건립되며 해체중에 있다.

그러나 이렇게만 보면 해체는 너무 이론적인 영역에만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해체가 실천이고 역사라면 그것은 생성이고 생성으로서의 존재이다. 가령 법의 이념은 정의지만, 법은 그 자체로 폭력에 의존하며 동시에 폭력의 사용이기에 정의와는 배반적 관계에 놓이게 된다. 결국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법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며, 법을 극복하고 새 법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처럼 정의를 향한 끊임없는 운동이 있어야 하며 100% 확실한 것은 아닌 토대 위에서라도 움직여 가야 한다. 해체는 이런 의미에서의 실천이다.

독립 선언이 이 상황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누가 선언하는가? 아직 독립하지 못한 자가. 그러나 독립하지 못한 자에게는 선언을 할 권리도 없다. 이렇듯 독립 선언은 실천과 그 정당화의 아포리아이다. 결국 실천은 그것이 앞으로 만들어내게 될 상황에 미리 힘입어야만 겨우 정당화된다. 만일 100% 정당하고 정당화된 실천을 고집한다면 실천은 시작조차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실천의 해체이고 해체의 실천이다.

내가 이러한 데리다 작업의 의의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과 내가 그의 작업을 똑같은 방식으로 대상을 바꿔가며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나는 데리다의 작업 방식이 미로처럼 느껴진다. 나는 더 재미있는 방식에 골몰하고 있다. 그럼 누가 데리다의 읽기와 쓰기를 이어갈 것인가. '데리다'가 활용의 폭이 좁은 우리말 동사라면, 데리다는? 누굴 데리고?

[OCH@컬처뉴스] 2004-10-20 오후 4: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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