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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1)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아주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아주 쉽게 묻는다. "철학이 도대체 뭐죠?" 어떤 사람은 한술 더 뜬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쓸모가 있나요? 그거 현실에서는 무력한 거 아닌가요?" 하지만 벌써 익숙한 물음이다.

나이가 어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사람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 세상사를 꽤 겪어본 사람도 이런 질문을 할 때는 아주 천연덕스럽다. 게다가 아주 순진하고 진지하게 답변을 강요한다. "당신은 '전문가'니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문가로서 당신의 의무니까요."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면 철학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박탈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어찌 보면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진부한 물음은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백과사전의 ‘철학’ 항목을 찾아보기만 하면 될 것 같다는 말이다. 실제로 나에게 철학이 무엇인지를 사전의 항목을 외워가며 열심히 설명해준 사람도 있을 정도다. 또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주목할 만한 답을 내고 있기도 하다(이 답변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그러나 이 물음의 답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철학’이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이나 활동이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낱말의 뜻을 정의하기란 비교적 쉽다. 대부분 그것은 특정한 대상이나 활동이나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사, 동사, 형용사 등의 형태로 제시된다. 그래서 가령 ‘은행나무’ ‘달리기’ ‘빨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특별히 어렵지 않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금 언급한 낱말들의 경우 직접 보여주면서 "그건 이런 뜻이야"라고 하면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런 손쉬운 답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은 그렇게 쉽게 정의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철학(哲學)’이라고 부르는 말은 나름대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낱말의 역사, 번역의 역사, 활동의 역사 등을.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이 역사를 설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이해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각각 살아가기에 바쁘고 물음을 끝까지 묻지 않는다. 끝까지 묻기 위해서는 뭔가 결심과 각오가 있어야 하고,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걸 할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내게 당장 필요한 게 뭐지?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하지 뭐."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말하며 물음을 멈춘다. 경제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할애할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 대충만 알고 넘어가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활동은, 따라서 철학이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도 가치나 의미와 관련된다. 심지어 "에이, (묻는 것조차) 귀찮아!"라는 선언에도 가치나 의미에 관한 판단이 들어 있다. 요즘 애들 풍으로 말하면 그런 물음은 "잼없고 짱나는(재미없고 짜증나는) 일"이라는 것이고, 이 경우 이들은 더 재미있고 신나는 일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활동이 경제적인 판단 또는 가치나 의미 부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예를 보자. 친구끼리 만나서 무엇을 할까 논의한다. 당구를 칠까, 스타크래프트를 할까, 술을 마실까, 아니면 더 좋은 게 있을까……? 하지만 이런 논의의 순간에 철학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에 열거한 세 가지 일을 하나만 또는 순차적으로 하기로 한 경우, 그러한 결정에는 뭔가 경제적인 판단 또는 가치나 의미 부여가 수반되고 있다. 적어도 철학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일은 이 결정에서 제외되고 있는 셈이니까.

학원을 고르거나 대학을 선택하거나 수강신청을 하거나 직장을 고를 때, 사람들은 보통 (자포자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정황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을 고른다. 결정하기 힘든 상황에서 갈등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갈등이란 대개 여러 가지 것 중에서 하나나 몇 개를 골라야만 할 때나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들과 모두 함께하고 싶을 때 생긴다.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선택의 경우에도, 가령 부모의 강요로 대학에 가거나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조차도 거기에는 자신의 결정이 포함된다. 부모의 요구를 어겼을 때 따르게 될 많은 고통스런 결과들을 감내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부모의 요구에 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처 의식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말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뭔가 대단한 결심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느 정도는 뭔가를 배우려는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 글이 뭔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공자가 말한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거기에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는 말을 기억하자는 말이다. 좋은 면은 좋은 대로 배우고 나쁜 면은 버려야 할 것으로 배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려는 태도 없이는 결국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독자는 이 글을 읽을 시간에 다른 뭔가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을 계속해서 읽게 된다면 그것은 이 글이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지금 독자에게 유의미하기 때문이리라. 이런 경우라면 좀 더 진지하게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산 삶의 시간 전부는 아니더라도 내가 이 글을 쓰는 데 걸린 시간 정도라도 독자가 이 글과 더불어 살지 않는다면 과여 얻을 것은 무엇이고 배울 것은 무엇이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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