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단한 코멘트: 어떤 분이 지나가시면서 남긴 말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요는 이진경 씨는 마르크스이건 들뢰즈이건 문헌 해석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고요, 그 결함은 창조적 결함이 아니라 퇴행적 결함이라는 것입니다.
뭐, 작업으로 말해야 한다는 건 맞습니다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틈틈이 언급하는 건 별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요? 게다가 제가 이진경 씨만 붙잡고 늘어지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학술적인 주요 기사들은 보는 대로 옮겨오고 있지 않던가요? 늘 하던 일인데요 뭐...
암튼 <들뢰즈 커넥션> 번역에 무척 몰두하고 있어서 쉬는 틈을 내서 잠시 적었습니다.
< 책 > 김동수씨의 `자본의 두 얼굴' 2005/01/27 07:05 송고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비판 담론 공간 `수유+너머'의 진보 논객 이진경씨가 지난해 4월 출간한 `자본을 넘어선 자본'(그린비)을 반박한 책이 나와 창과 방패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본의 두 얼굴'(김동수 지음. 한얼미디어)이 그것. 저자는 학자도 연구자도 아닌 노동운동가. 대학에서 퇴학당한 뒤 전국의 노동현장을 돌아다니며 노조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정도의 사실 외에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얼굴없는 논객이다.
이씨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은 상품, 가치, 잉여가치, 화폐, 등가물, 노동가치론 등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이들 용어 또는 이론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파헤친 `자본론' 재해석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이씨의 책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박제화시켜 `자본'의 장식물로 만들어 놓았다고 공격의 화살을 퍼붓는다.
이씨의 책은 단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복제품일 뿐이라고 깎아내린다. 들뢰즈의 `탈영토화'라는 개념을 적용해 자유로운 노동자를 정의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고 일축한다.
특히 저자는 이씨가 자신의 책에서 제시한 `기계적 잉여가치'라는 개념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다.
마르크스가 가치 생산의 근원을 인간의 노동에서 찾은 데 반해, 이씨는 현실 자본주의에서 기계 없는, 기계와 접속하지 않은 가치 창출은 없다며 이 시대에 상응하는 잉여 가치의 주된 형태는 바로 `기계적 잉여가치'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진경은 생산수단의 발전에 압도되어 있다"며 "이진경의 `기계적 잉여가치'란 정치경제학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한 자본에 대한 맹목적 혐오감, 노동 없는 생산을 가능케 할 것으로 보이는 자본과 그 물질적 존재로서의 생산수단에 대한 공포감, 마지막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낳은 만화적 상상의 산물이다"고 맞받아쳤다.
저자는 서문에서 "물론 나는 어떤 `특별한 결론'을 제시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게 아니다. 다만 나는 이진경의 `특별한 결론'이 실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마르크스는 물론이고 고전파나 헤겔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591쪽. 1만9천800원.
shg@yna.co.kr (끝)
뭐, 작업으로 말해야 한다는 건 맞습니다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틈틈이 언급하는 건 별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요? 게다가 제가 이진경 씨만 붙잡고 늘어지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학술적인 주요 기사들은 보는 대로 옮겨오고 있지 않던가요? 늘 하던 일인데요 뭐...
암튼 <들뢰즈 커넥션> 번역에 무척 몰두하고 있어서 쉬는 틈을 내서 잠시 적었습니다.
< 책 > 김동수씨의 `자본의 두 얼굴' 2005/01/27 07:05 송고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비판 담론 공간 `수유+너머'의 진보 논객 이진경씨가 지난해 4월 출간한 `자본을 넘어선 자본'(그린비)을 반박한 책이 나와 창과 방패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본의 두 얼굴'(김동수 지음. 한얼미디어)이 그것. 저자는 학자도 연구자도 아닌 노동운동가. 대학에서 퇴학당한 뒤 전국의 노동현장을 돌아다니며 노조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정도의 사실 외에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얼굴없는 논객이다.
이씨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은 상품, 가치, 잉여가치, 화폐, 등가물, 노동가치론 등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이들 용어 또는 이론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파헤친 `자본론' 재해석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이씨의 책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박제화시켜 `자본'의 장식물로 만들어 놓았다고 공격의 화살을 퍼붓는다.
이씨의 책은 단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복제품일 뿐이라고 깎아내린다. 들뢰즈의 `탈영토화'라는 개념을 적용해 자유로운 노동자를 정의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고 일축한다.
특히 저자는 이씨가 자신의 책에서 제시한 `기계적 잉여가치'라는 개념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다.
마르크스가 가치 생산의 근원을 인간의 노동에서 찾은 데 반해, 이씨는 현실 자본주의에서 기계 없는, 기계와 접속하지 않은 가치 창출은 없다며 이 시대에 상응하는 잉여 가치의 주된 형태는 바로 `기계적 잉여가치'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진경은 생산수단의 발전에 압도되어 있다"며 "이진경의 `기계적 잉여가치'란 정치경제학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한 자본에 대한 맹목적 혐오감, 노동 없는 생산을 가능케 할 것으로 보이는 자본과 그 물질적 존재로서의 생산수단에 대한 공포감, 마지막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낳은 만화적 상상의 산물이다"고 맞받아쳤다.
저자는 서문에서 "물론 나는 어떤 `특별한 결론'을 제시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게 아니다. 다만 나는 이진경의 `특별한 결론'이 실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마르크스는 물론이고 고전파나 헤겔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591쪽. 1만9천800원.
shg@yna.co.kr (끝)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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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05.02.0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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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y
2005.02.04 12:40
윗 분이 이야기하셨듯이, 들뢰즈를 비롯한 프랑스철학자들이 문헌 해석에 결함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여기에 대해서 김재인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결함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결함이 있긴 하지만 그 결함이 "창조적 결함"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禍
2005.02.05 22:54
네오/무시를 하지 않고 정색을 하고 덤비는 게 '최상의 찬사'라고 하니 어이가 없소. 만약의 님의 말대로 하자면, 자신의 글에 대해 정식으로 비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는 이진경은 어떤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오? 어떤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찬성하지만, 어떤 비판에 대해서도 무시하고 넘어가는 이진경의 모습은 학자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소. 그렇게 귀를 막고 사는 모습에서 이진경과 극우파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
네오
2005.02.08 00:57
글을 쓸때 잊혀지는 것만큼 허망한 것도 없죠.
그리고 난 이진경의 태도를 무시라고 보지 않소.
이진경이 자신의 글을 썼고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김재인은 그의 글에 비판을 했소.
결론은 이진경이 항복이냐 승리냐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누구의 설을 받아들이냐가 결정하는것 아니요.
과연 이후 누구의 설이 먹혀들건지 그것을 지켜보는것이 순리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진경이 학자인 모습을 할 필요는 없지 않소. 그렇게 강요하는것 자체가 벌써 길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고있고.
그는 그의 길을 갈뿐이요.
나도 이진경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읽었소. 그리고 지주형의 비판(문화일보에 난것)을 읽어보았는데 별로 건질내용은 없었소. 그런데 이번에 책으로 나온것을 보니 한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내가 이진경에게 고맙게 생각하는것은 그는 한국사람이 고등학교 교육 정도만 받았으면 읽을수 있는 한국어로 글을 쓰고있소. 그리고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밝히고 있소.
그리고 그의 글에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문외한이지만 무엇이 쟁점이고 무엇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할지 알게 되었소.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몇 되지 않소. 다들 자기만 읽고 말지.
이진경이 오류없이 완벽하면 더 좋겠지만 그리고 시간을 절약할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니
이진경이 글을 쓰면 읽고 그에대해 비판하는 글이 있으면 대조해서 읽고 .
이진경을 욕하기 전에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지들만 읽고마는 글을 쓰지말고 가독성이 있는 글을 쓰는것이 우선일것이요. 학회지에 지들만 읽고 말것이면 그만이지만 -
깨비
2005.02.12 02:02
전하는 메세지가 쉽고 명료하다는 것과 학문적 업적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요. 어려운 걸 알아가는 어려운 과정을 뛰어넘고, 어려운 걸 쉽게 설명했다고 해서 마냥 칭찬만 할 수는 없습니다. 김재인 씨의 문학동네 원고의 내용은, 모두 이진경 씨 자신이 써 내 놓은 구절과 들뢰즈가 여기저기에 남긴 글과 말을 재인용하여 서로 양립 불가능한 구절들을 짝지워 놓은 간단한 것입니다. 문제는 불행히도 그것이 이진경 씨와 들뢰즈 양쪽이 철학을 전개함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한 개념들이었다는 겁니다. 들뢰즈를 통해 급기야 그를 넘어섰다며 들뢰즈와의 연관성을 더 할 수 없이 강하게 내세우는 이진경 씨가, 들뢰즈 본인과 양립불가능한 얘기를 들뢰즈를 인용하며 하고 있다는 김재인의 지적에, 침묵하는 행위는 '할 말 없음'을 의미합니다. 불행히도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일갈로, 또 서프라이즈 지승호와의 인터뷰에서 긴 지면을 할애하여 김재인 씨의 학문적 성과와 인격까지를 매도하고 모독하는 발언으로 그 '할 말 없음'이 실은 멸시와 분노, 원한, 저주의 침묵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가독성은 읽을 줄 알아야 생기는 겁니다. 초등학생이 배우지 않고 정석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유독 철학에 관해서 누구나 읽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무서운 생각입니다. -
marishin
2005.02.17 13:58
문학동네 원고는 간단한 것이라는 말씀에 정말 공감합니다. (쉽게 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이 들뢰즈 말이라며 하는 말이 사실 들뢰즈 말과 다르고, 심지어 반대되는 것이다... 이런 간단명료한 주장에 답을 안한다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진경에게 자본의 두 얼굴같은 책은 최상의 찬사로 보임. 무시를 하지 않고 정색을 하고 대드니 저자로서 이것보다 좋은 것이 어디있으랴.
김재인의 비판도 마찬가지 이진경에 대한 최상의 찬사라고 나는 봄.
헌데 한가지.자본의 두얼굴 이책에서도 기계적 잉여가치를 말하고 전에 문화일보에서 서평을 쓴 지주형도 마찬가지로 지적을 했는데 지적하는 부분이 모두 저자가 그 비판을 염두에 두었다는(니가 어떻게 아냐고 물으시면 짐작이라고 대답하지요)것을 상기하시길 .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이 이진경이 없기에 비판을 듣기만 할뿐. 그에 대한 시론적 애기를 벌려놓고 이진경이 그 답을 찿고 있는것은 아닐지?
더불어 들뢰즈도 다른 사상가들을 왜곡했다는 애기를 많이 듣던데. 겁탈해서 애낳았다고 하던가?
웃고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