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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세계 속의 삶 나랑은 상관없는 일?

철학자 2009.04.27 23:13 조회 수 : 8245

얼키고설킨 세상사에서 많은 일들이, 아니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나랑은 상관없는 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 이치는 단순하다. 나와의 직접적 인과의 거리가 멀수록 지각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랄까. Out of sight, out of mind. 저 유명한 속담은 이 인간학적-인식론적 이치를 아주 잘 담고 있는 셈이다. 보통 '헤어지면 멀어진다' 정도로 쓰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을 벗어난다는 뜻으로, 버클리 주교의 esse est percipi('존재는 지각된 것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또는, 흄 식으로 말하면 자꾸 보면 연상을 통해 마음의 습관이 형성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일상적인 언어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뉴스에서 보도되는 저 많은 사건들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도가 되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전혀 진실이 아니다. 저 많은 사건들은 내 몸 곁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목격되지 않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왜, 김수영이 말한 적 있지 않은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느냐고.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여기서 핵심은 시인의 자각에 있지 않다. 알면서도 겁이 나서 크게 외치지 못하는 나약함이라면 아직 가망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런 식으로 오지 않는다. 모르기 때문에, 오로지 자기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가만히 있거나 더 중요한 자기 일, 조그마한 일을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현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욕망의 인식론' 정도가 되겠다. 사회문제는 나랑 얼마쯤 상관이 있는지 잘 계산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맹점이기도 하다. 나랑 상관이 없으니까 무관심해지고 흥미를 끌지 않는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행동인가. 그렇지만 그렇게 느낀다는 것과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물론 행동은 느낌에서 시작하지만, 느낌 자체가 오류일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오류가 아니라 철학자들이 힘주어 말하곤 했던 '가상(illusion, Schein)'이어서, 인간의 자연적 조건이자 단지 노력만으로 떨쳐버릴 수 없으며 끊임없이 인간을 유혹하는 저 함정 말이다.

정확히 '독재'가 될지 '파시즘'이 될지 용어 선택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아무튼 그것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분리전략'이 필요하다. 어렵고 복잡한 말이 아니고, 최종 국면에 진입하기 전까지, 이 일은 나랑은 상관없는 일로 느끼게끔 하는 전략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일을 자신의 문제라고 느끼지 않을 때는 함께 관심도 사라진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라는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정권은 최대한 어떤 일에 대해 자기 일로 느끼지 않도록 사람들을 유혹하는 일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요 매체이다. 관심 또는 계산보다 욕망이 먼저다. 유능한 정권은 알게 모르게 욕망의 정치를 구사해 왔던 것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세상사를 내 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예민한 사람에겐 너무 많은 일들이 내 일로 폭주하고, 적당히 둔감한 사람에겐 내 일만으로도 벅차고, 아둔한 사람에겐 내 일은 다른 데 있다. 사람은 진드기가 아니라서, 진드기처럼 살도록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느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라면 일정한 느낌은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스피노자가 '공통지(notio communis)'라 부른 것이 그와 관련되는 것일까?) 기형도는 말한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 조세희는 말한다, "두 아이는 똑같이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은 깨끗한데 다른 아이의 얼굴이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인간은 생물학적 종인 동시에 사회적 종이어서 후자를 무시하고는 인간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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