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세상이 참 좋아진 것이, 이제는 집에 앉아서도 전 세계의 논문을 검색하고 심지어 많은 부분 읽을 수가 있다.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수는 대학을 비롯한 연구기관에 등록되어 있을 때 굳이 별도의 비용 지출이 필요 없다. 대학생이건 아니면 최소한 대학생 친구라도 있으면 충분하단 말이다.
내 논문과 관련해서 세계에 널려 있는(하지만 주로 영어권이고 불어와 독일어 텐스트는 일부밖에 없다) 수천 건의 논문들을 살펴 보면서, 우선은 그 양적인 방대함에 놀라게 되는데, 하지만 양이야 중요한 게 아니니 이 대목은 언급 없이 넘어가겠고, 오히려 질적인 면에서도 소소하나마 일정한 성취를 축적해 가는 것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세계에는 물론 많은 연구자들이 있는데, 상당 수는 요즘 영어로 논문을 발표한다. 따라서 영어권 저널을 일별해 보면 흐름 또는 경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소한 교수건 박사건 우리네 학자들이 발표하는 글의 수준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일은 놀라운 일이 이니다.
요즘 학술진흥재단 등재지가 부쩍 늘고 있고, 양적 잣대로 거기에 얼마나 논문을 싣느냐가 학적 성취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는데, 문제는 한국의 인적 인프라가 너무도 빈약하여, 학술지 평가를 담당하는 사람이 결국은 저열한 학술지에 논문을 써 왔던 바로 그들이기에, 이런 제도는 악순환을 강화시킬 뿐 실효성 있는 타개책이 되지는 못한다. 끼리끼리이되, 좁은 물에서, 저열한 끼리끼리인 셈. 심지어는 그나마 그런 식으로 마련된 '공인 학술지'를 놓고서도 기존의 권력관계가 개입하여 이제 수록 여부 자체가 공정성보다는 연줄에 좌우되는 경향마저 가속화되고 있다.
외국과의 단순 비교로 한국을 폄하하는 것만큼 나쁜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는 것은 '질'의 문제다. 인물이 너무 없고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결론은, 나눠먹기와 돌려막기 정도.
학문 세계가 한 사회의 토대 또는 지표라 할 때,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기만 하다. 때로는 이 사회가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기도 하다. 내 발언은 학계에 대한 것이자 동시에 사회에 대한 것.

자, 푸념은 여기까지만.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