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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라캉의 수학 (펌)

철학자 2009.02.06 13:09 조회 수 : 9381

http://pomp.tistory.com 포스팅에서 퍼왔습니다.

 라캉의 수학
Other interests | 2009/01/25 23:56
위대한 라캉 에서 nuenguem 님과 댓글로 의견을 나누다, 아무래도 글을 하나 쓰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이추판다 님 블로그에서처럼 이상한 철학 오타쿠들이 몰려들까 걱정도 되었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도 들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니 라캉 못지 않은 사기꾼 발견!이란 글이 있기에 미루어 두었던 글을 다시 쓰기로 하였다.

먼저 라캉 못지 않은 사기꾼 발견!에 등장하는 수학자 Tobias Danzig(유명한 George Danzig의 아버지)의 진술

"현재는 무리수이다"

에 대해 먼저 얘기하자. 이 진술에 대해 로보스 님은 라캉의 "i(허수 단위)는 남성의 성기와 같다."와 무엇이 다르냐며 은유를 은유로 읽지 못한 채 행해지는 맹목적 비판을 비판하면서, 왜 단치히의 글은 돌림빵이 되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진술이 만약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의 글이었다면 또다른 동네북이 되었을 것이라는 언급과 함께.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현재는 무리수이다"라는 문장 하나만 놓고 보면 "이 뭥미?"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진술은 라캉의 허수에 대한 언급과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단치히의 진술은 무리수를 구성하는 방법인 데데킨트의 절단 개념을 과거, 현재, 미래로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비유에 대해 어느 수학자도 크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뒤집어, "현재라는 개념은 사실 수학의 무리수와 같다"라는 식으로, 다시 말해 현재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데데킨트의 절단과 무리수을 동원한다면, 이건 정말 이상한 비유이고 돌림빵이 되어도 할 말이 없는 주장이다.

모름지기 비유라는 것은 알기 어려운 것을 아는 것으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이다. 데데킨트의 절단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현재"라는 익숙한 개념을 동원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현재"라는 익숙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데데킨트의 절단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동원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이상하다.

만약 누군가가 "허수 단위"를 설명하기 위해 "허수 단위 i는 인간의 발기 기관과 동등하다"라는 진술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은 황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진술이지만, 이것은 어려운 것을 아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니, 그 다음으로 그 진술에 대한 이유를, 즉 앞뒤의 문맥을 따져 볼 것이다. 그 결과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설명이면, "아, 이 사람은 허수를 잘 모르는구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한 순서이다.

라캉의 진술은 어떨까? 그가 한 진술은 "허수 단위"를 설명하려는 게 아니다. 반대로 "허수 단위"라는 개념을 빌려 "발기 기관"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익숙한 개념일까? 수학자가 아닌 한 "허수 단위" 쪽이 당연히 어려운 쪽일 텐데, 라캉의 "비유"라는 것은 통상적인 "비유"와는 반대가 아닌가? 게다가 그의 비유를 비판하는 입장은 "라캉은 허수를 모른다"이지 "라캉은 발기 기관을 모른다"가 아니다. 비판의 관점은 발기 기관에 대한 그의 철학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의 비유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라캉 옹호론자들은 이상하게도 이것을 헷갈려서, 그의 비유를 옹호하려 든다. 그것도 "그가 말하는 허수는 수학적인 개념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그러니까 발기 기관을 설명하려고 비유를 했는데, 그 비유 자체가 알려져 있는 어떤 (수학적) 개념이 아닌,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럴 거면 뭐하러 "비유"를 한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이런 걸 비유라고 할 수는 있나?

게다가, 라캉이 허수 i를 "유도"해내는 과정은 더 황당하다. 라캉은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가 어긋난다는 뜻에서 S/s와 같은 분수 표현을 쓰는데, 이걸로 이상한 연산을 해서 s = i라는 결과를 얻는다.

이상한 수식

라캉 옹호론자들은 이걸 "라캉식 수학"이라며 옹호하겠지만, 라캉식이든 뭐든 이렇게 아무런 의미없는 엉터리 수식을 나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캉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라캉이 수식으로 자신의 이론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라고들 하는데, 그럴 거면 뭐하러 이런 수식을 동원하는 걸까? 자신의 이론이 엉터리라는 걸 보이려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자신의 이론을 치장하기 위해 난해한 수학 개념을 동원했다고 보는 게 훨씬 타당한 지적 아닐까?

아마도 라캉은 허수(imaginary number, nombre imaginaire)"에 쓰인 "상상의(imainaire)"란 단어에 이끌려 억지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다. 그러나 "허수"의 "허"나 "imaginary number"의 imaginary가 허수의 존재성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은 용어라는 수학자들의 지적을 라캉이 알았다면 과연 이런 식의 주장을 하였을까? 라캉풍으로 말하자면, 허수 개념의 기의 위를 미끄러진 것은 허수의 기표가 아니라 라캉 자신이었다.

nuenguem 님은, 라캉의 이상한 수학을 비판하는 것이 라캉의 철학과 그를 옹호하는 이들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였는데, 이건 사실 주객이 바뀌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선입견이 문제라면, 애초에 엉터리 수학을 동원하지 말았어야 한다. 사고를 친 것은 비판론자가 아니라 라캉인데? 라캉을 비판하든 옹호하든, 라캉의 엉터리 수학만큼은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엉터리 수학을 엉터리라고 하는 게 왜 걱정거리가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라캉의 철학을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철학은 훌륭한데, 수학을 동원한 설명은 좀 엉터리죠."라고 하는 게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오히려, 라캉의 수학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그의 수학/철학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식으로 하는 변호야말로 맹목적이라는 선입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쪽은 이쪽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