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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북리뷰]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너무나 위험한 그 이름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김진석 지음│개마고원│2009│303쪽
2009년 04월 27일 (월) 13:57:57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김진석 지음│개마고원│2009│303쪽

니체. 서양 철학사 전체를 통해 플라톤에 대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어쩌면 베르그송을 제외하면 유일한 거물. 20세기 지성의 성좌를 수놓은 숱한 사상가들, 곧 하이데거,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의 사상을 배태했고, 그들의 칭송을 받은 철학자. 어떤 문학책보다도 문학적인 아포리즘을 구사하면서, 어떤 철학책보다도 심오하고 미묘한 문장을 구사한 독일인. 그런데 ‘니체’라는 이름은 여타 철학자들과는 다른 무게, 다른 색깔로 다가온다. 그가 히틀러 등에 의해 파시즘 철학의 원조로 읽혔으며, 실제로 지독한 반민주주의, 반페미니스트, 인종 차별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권력과 폭력과 차별과 강자의 숭고함을 격렬하게 외친, 하지만 탈현대 사상가들의 입을 통해선 근대 전복의 선구자이자 새로운 해방 사상의 기수로 평가받는 철학자가 바로 니체다.

근대 전복의 선구자, 그의 두 얼굴


오랜 세월 니체와 함께 해온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가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를 냈다. 책 서두에서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놀라운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니체는 민주주의에 큰 반감을 가졌었다. 지금은 인류의 상식이라고까지 여겨지는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비난하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현대 및 탈현대 사상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니체가 민주주의에 반감을 가졌다니.”대체 니체는 어떤 전제에서 이런 과격한 주장을 할 수가 있었을까. 김 교수는 그 이유로 니체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행위를 도덕의 잣대로 추방하거나 배제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직시하는 인간의 힘” 곧 ‘강함’을 찬양했다는 점에서 찾는다.


이 때 강함은 그것의 유지를 위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격차는 인정돼야할 뿐 아니라 권장돼야”하는데, 바로 이 강함과 격차를 추구하는 정치를 이를 니체는 ‘위대한 정치’라 불렀다고 김 교수는 전한다. 민주주의는 강함보다는 약자에 대한 배려, 약함, 사회적 비격차를 추구하므로, 니체 입장에서는 결국 배제될 수밖에 없는 체제가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니체는 너무나 적나라하고 뻔뻔한 파시스트다. 우리가 독재정권으로 비난한 과거 정권의 수장들도 저토록 직접적으로 강자의 윤리를 주장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체 왜 니체는 민주주의에 반대를 하고 강자의 윤리를 강조하며, 강함, 권력에 대한 찬양을 아끼지 않았을까. 왜 니체는 그 자신이 전복하고자 했던 플라톤의 ‘존재론적 위계질서’를, 격차에 대한 주장을 통해 오히려 재생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일까.


김 교수에 의하면 그 이유는 힘과 강자와 권력을 애써 배제하고, 약자와 비격차와 평등을 주장하는 사상이 현실 속에서 난무하는 냉혹한 폭력을 외면한다는 것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옥죄는 폭력을 정면에서 솔직히 응시하자는 것, 그것이 김교수가 바라본 니체의 현실주의다.다음을 보자. “이상주의는 현실적 권력관계가 드러나는 바닥 혹은 현장을 초월한다. 그것은 일종의 평화주의적 근본주의이다. 니체가 그렇게 강조했듯이, 있는 그대로의 복잡하고 더럽게 잔인한 싸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더럽게 순진한 잔인함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폭력을 비판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폭력에 반대한다면서 근본주의로 떨어지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파시즘 비판은 말할 것도 없지만 폭력 비판에서도 더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와 폭력의 메커니즘


김 교수의 이 같은 전언은 민주주의를 폭력과는 별개의, 폭력의 대척점에 있는 어떤 순수로, 비폭력만으로 구성이 가능한 체제로 보는 모든 근본주의적이고, 기만적인 요설들에 대한 폭로를 의미한다. 그러나 김 교수에 의하면 “니체는 그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거기서 더 나아가, 니체는 전쟁이 필수불가결하다고 그것을 긍정한다.” 여기서 김 교수는 “이 지점에서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머뭇거린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이렇게 니체와 미묘하게 갈라지면서 좀 더 냉정한 모습을 지향한다. 그는 폭력에 대한 용인과 전면적 부정 모두에 반대하면서 “구체적인 상황에서 폭력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보고 행동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서 폭력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힘이면서, 그것을 위협하는 이상야릇한 무엇이다. 그래서 “폭력이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아직도 온전하지 못하지만, 폭력의 힘을 조금이라도 과도하게 빌릴 경우에도 위험하다. 폭력에 전혀 손을 내밀지 않아도 위태롭고, 과도하게 내밀어도 위태롭다.” 바로 여기에 “위험한 증인, 니체”의 진정한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다.


최근 일고 있는 폭력의 양가적 생산성에 대한 논의들을 봤을 때, 김 교수의 이번 저작은 그 시의성이 있다. 더구나 들뢰즈의 니체론에 대한 조야한 독해와 이상한 니체 찬양론이 범람하는 한국에서, 김 교수의 신중한 니체 독해는 참조를 넘어 연구의 가치가 있다. 김 교수는 책의 말미에서, 자신의 니체론을 현실에 응용하면서 짤막한 정치철학적 통찰을 제시한다. 다음을 보자. “정부나 국가가 너무 폭력적이어도 민주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됐지만 거꾸로 폭력적 지배력을 일정하게 갖추지 못한 정부도 민주주의를 만들기 힘들었다.”


민주주의에는 국가의 매개가 필수적이며, 그 과정에서 폭력의 개입도 피할 수 없다는 통찰이다. 국가와 제도의 매개가 함축하는 폭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는 또다른 야만적 폭력을 야기할 뿐임을 시사한다.
물론 이는 합의와 소통을 중시하는 평화주의자들이나 시민운동가들이 보면 불편해 할 대목이기도 하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