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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최근 세월호 참사에 대해 홍세화가 <한겨레>에 기고를 했다. 홍세화의 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언급을 삼가려다, 또 시간이 지나면 함께 잊힐 듯해서 몇 자 적기로 한다.

  홍세화 특유의 레토릭에 대한 비판은 지나가기로 한다. 문체라는 게 사람의 생각과 삶의 표현이기 때문에, 지적하기로 맘 먹으면 끝도 없겠지만, 논의의 본질을 흐리기 싫으니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겠다.

  홍세화는 말한다. 선장과 선원들을 옹호할 생각도 없으며 비난받아 마땅하고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그러나 곧이어 홍세화는 참으로 기이한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나는 동시대를 사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그 자리에 있었을 때 누구처럼 행동했겠는가?” 나는 이런 유형의 질문과 사고에 대해 가정법적 사고라 명명하며 비판하곤 했다. 유사한 질문은 같은 문단에서 다시 이어진다. 홍세화는 여러 높은 분들에게 다시 묻는다. “그대가 그 선장과 선원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끝으로, 이런 유형의 질문의 말미를 장식하는 전형적 표현이 등장한다! “같은 물음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여기서 홍세화의 연속되며 심화된 세 질문은 정점에 이른다. 또한 이런 질문을 하게 한 홍세화의 무의식도 분명해진다. 홍세화는 답한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자신 있게 박지영씨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답하지 못했다. 그러면 젊은이들에게 배를 벗어나도록 도와준 뒤 자신도 일단 살아남았지만 참담한 상황을 목격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선생처럼 행동할 수 있었겠는가? 이 물음에도 솔직히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홍세화가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은 박지영씨나 교감선생이나 그 밖의 의인들처럼 행동했으리라고 참으로 부끄럽게도” “솔직히” “자신 있게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고백은 독자들에게 전이된다. 독자들이여, 당신들도 참으로 부끄럽지만 솔직히 자신 있게답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해 나는 답할 수 있다고 답할 수 있는 독자는 없으리라. 이 질문은 전형적인 유도심문이고 잘못된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다. 윤리학의 기본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의로운 행동은 숙고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홍세화는 숙고를 요하는, 따라서 그 어떤 숙고 후에도 답할 수 없는, 그런 유형의 질문을 던진 것이다. 행동(실천)의 문제는 숙고의 문제 또는 사변(이론)의 문제와 다른 집합(수학적 의미)에 속한다. 홍세화의 질문은 범주 오류인데, 그가 이런 오류를 범한 까닭은, 잘못된 유도심문을 끌어내려는 무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론은 가정법을 동원하지 않는다. 가정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실천과 관계해서이다. “만약 ...라면, ...리라라는 가정법적 표현법은 이론에 적용될 때(그리고 오직 그 범위에 머물 때)는 아무 해를 끼치지 못한다. 기껏해야 시간 낭비 정도의 해랄까. 하지만 그 가정법적 표현이, 특히 심문의 형태로, 실천과 관련해서 제시될 때, 그것은 사람의 생각 자체를 살해할 정도의 위험을 야기한다. 그 표현 또는 질문 앞에서 누구도 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원리상 답변이 불가능한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면에서 홍세화는 극도로 치사하다. 이런 치사함은 물론 홍세화만의 것은 아니다. 이 치사함이 세상에, 특히 한국 사회에, 더 불길하게는 자칭 진보 진영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신학적-종교적 오류와 맞물려 있는 이런 가정법적 치사함은 사람의 행동을 자꾸만 머뭇거리게 하고 사람을 자책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악하다. 더욱이, 홍세화의 질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고된 글의 그 모든 명시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사적으로는 그런 명시적 내용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가해자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낮추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사실 나라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라는 생각을 독자에게 심는 것이다.

  이런 수법은 한나 아렌트에서 잘 나타난다. 나는 아렌트를 잘 모르지만, “악의 평범성이라는 테제는 너라면 어떻게 행동했겠는가?’라는 가정법적 유도심문과 동렬에 있다. 아무도 확실하게 선인이 아니며, 아무도 확실하게 악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울렁더울렁 조금씩 서로를 용서해야 한다. 신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이다.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악마의 얼굴이 따로 있지는 않다. 허나 악마의 행동은 분명코 있다. 누구나 악마의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아이러니하지만, 비겁하기 때문에 악마의 행동을 하지 않기도 한다. 겁이 나서 악마의 행동을 못하기도 한다. 모든 사회는 논리적이지 않다. 모든 사회는 행동의 영역이다. 사회란 논리의 구성물이 아니라 행동의 제어이다. 겁이 나서 악마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행동의 문제와 사변(논리)의 문제를 혼동하면 사회를 망친다. 외면의 문제를 내면의 문제로 뒤바꾸면 세상을 망친다.

  급하게 단박에 써서 논지를 잘 전달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다. 깊게 생각해 볼 것을 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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